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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Sep 02. 2016

다섯 개의 하늘

침선 수필

맑은 하늘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푸른 공간이 그곳에 있다.  하지만 지상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로서는 아파트 단지의 울타리 안에 갇힌, 내 시선이 닿는 만큼만 보일 뿐이다.  아이가 도착할 때까지 쳐다보고 서 있는다.    생각해 보면 하늘을 올려 보는 일이 잦다.  길을 가다가  정말 우연히 눈길을 준다거나 아니면 아주 작정을 하고 하늘을 보러 가기도 한다.  그리고 기억한다.  각각의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따른 여러 가지 모습들을. 


담양

대나무 숲 속으로 들어간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걷는다.  맑은 날의 따가운 햇빛도 이 숲 속까지는 따라오지 못한다.  갑자기 어둡고 서늘한 기운이 든다.  높이 솟아오른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 하늘을 가리고 있다.  차르르르, 바람소리에 댓잎을 보려고 시선을 들어 올린다.  대나무 마디를 세며 위로 시선을 옮기다 고개를 점점 젖혀 위로 똑바로 올려 본다.  하늘을 찌른 대나무는 이제 바람에 춤을 추며 하늘을 마구 휘젓는다.  이제 대나무는 사라지고 움직이는 하늘만 느껴질 뿐이다.  댓잎 사이로 커졌다 작아졌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며 공기를 진동시킨다.  폭풍이 몰아치는 것 보다도, 그 어떤 하늘보다도 역동적이다.  내 몸까지 같이 흔들린다.  젖혀진 고개가 아파올 때까지 그곳에 서서 그 움직임에 집중하니 마음은 오히려 그 어느 때 보다도 고요해진다.   


노이슈반스타인 성

독일의 퓌센에서  숙박할 곳을 구하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고 온 데다가 너무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온 도시를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 겨우 잡은 숙소는 다락방.  가운데 부분이 닳아서 패어있는 나무 계단을 올라 들어간 그 방은 천장이 비스듬하고 원목 마루가 깔려 아주 고풍스럽고 깨끗했다.  방 한가운데엔 모서리에 둥근기둥을 세운 침대가 예쁜 퀼트 이불을 덮고 있었고 욕실에는 도자기로 만든 욕조가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흰 홑이불을 가지고 들어와 천장을 가리키며 알아듣지 못할 독일어로 한참을 말하고 나갔다.  마치 알아들은 듯이 마주 보고 웃어준 뒤 새삼 천장을 쳐다보았다.   비스듬한 천장엔 커다란 창문이 있었는데 침대에 누우면 창문이 정면으로 보이게 돼 있었다.  

'천장에 창문을 내다니 특이하네,  하긴 여긴 다락방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나는 침대에 눕자마자 깜짝 놀랐다.  누워서 바라보는 시선의 정면,  그 창을 통해 보이는 높은 하늘에,  그 깜깜한 하늘에 눈부시게 하얀 성이 떠 있었다.  노이슈반스타인이었다.  게다가 하늘엔 그 성의 그림자가 허공에 찍혀 있었다.  

'아, 아까 그 아주머니의 말이 이거였구나.' 

성을 둘러싸고 있는 조명이 산꼭대기의 성을 향해 위로 빛을 비추어 깜깜한 밤하늘에 흰 성이 홀로 빛나고 있었다.  또 그 성에서부터 그림자가 위로 뻗어, 잔뜩 끼어있는 구름 위에 또 하나의 성이 올려 박혀 있는 그 광경이란.  미국의 디즈니랜드가 이 성을 본떠지었다던가.  하지만 아무리 똑같이 만든다 해도 이런 광경을 연출할 수 있을까.   난 침대에 누워서 마음만은 줄곧 하늘로 올라가 있었다.  그날 하늘엔 아름다운 성이 있었고  구름이 두껍게 끼어 있었고  그 구름을 벽을 삼아 흰 성은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두 개의 아름다운 성들이 그렇게 내 눈을 붙들고 있었다.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한 시간쯤을 달렸다.  

한여름의 알래스카는 시간이 자정이 되었는데도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백야(white night)이다.  이건 그냥 하얀 밤이 아니라 아주 눈부시게 빛나는 밤 아니 낮이라고 해야 맞다.  바닷가에 도착해서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의 강렬한 빛을 만난다.  해가 빛나고 있는 하늘과 그 빛을 반사하고 있는 바다, 그 대단한 밝음에 둘 중 어느 것도 쳐다보기가 편하지 않다.  

'하늘의 색이 저랬던가?'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은색 하늘을 본다.  낮에는 푸르던 하늘이 밤이 되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아주 밝고 하얗게.  새벽 4시경이  되자 다시 하늘에 푸른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지지도 않고 다시 아침이 된 것이다.  하늘은 해를 꼭 품고서 절대로 바다로 떨어뜨리지 않았다.  자신의 등 뒤에 감추고서 자기의 몸 전체를 하얗게 빛내다가 바닷물에 잠깐 적시는 듯하더니 다시 건져 올렸다.  그리고 다시 푸르게 변했다.   그 굳은 의지에,  그 강렬한 빛에 눈이 시려서...... 나는 알래스카의 바닷가에서 눈물을 찔끔거렸다.  


북극 하늘

한밤중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  

기장에게서 조종실로 들어오라는 호출이 왔다.  담배냄새나는 조종실이 떠올라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창문인 조종실은 고요한 북극의 밤하늘에 둘러 싸여 있었다. 

“임 사무장, 오로라 본 적 있어?”  

‘오로라가 뭐였지?’  

예상치 못했던 주제에 나는 잠시 생각이 나질 않았지만 곧 하늘에서 너울대는 오로라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깜깜한 북극의 밤하늘, 빛나는 별, 그리고 보랏빛 오로라가 있었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반짝이는 시폰 커튼처럼, 은은한 반투명의 장막이 하늘에 펼쳐져 있었다.  오로라는 다시 푸른빛으로 은빛으로 알아챌 듯 말듯한 정도로 색깔을 변화시켰다.  음영을 지어내고 빛을 뿌리며 신비로운 말투로 말하고 또 노래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허공에 떠서  날아가면서 나는 분명히 어떤 환상적인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어때, 아주 좋은 음악소릴 듣는 것 같지?”  

‘이런 ,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봐.’  

나는 객실에서 다시 호출이 올 때까지 하늘에 떠 있었다.  음악 감상을 하면서.  


토함산

새벽잠에서 깬 아들을 달래며 일출을 보기 위해 정상에 오른다.  

발아래 감포 바다가 펼쳐져 있다.  어스름이 점점 걷히고 주위는 이미 어둡지가 않다.  근 반시간을 기다려 하늘이 붉게 물드는 걸 보며 졸려하는 아이에게 하늘을 잘 쳐다보라 채근한다.  하늘을 손가락질하며 쳐다본다.  아들은 눈을 크게 뜨고 조용하다.  점점 붉어지는 하늘에서 이제 밝은 불덩어리에 집중한다.  아들의 눈이 점점 가늘게 된다.  그 불덩어리는 마침내 바다에서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솟아오르고 하늘은 붉은 기운을 잃는다.  내려오는 길에 아들에게 어땠느냐 묻는다.  

“응, 하늘이 노란색 이랑 빨간색 이랑 그리고 오렌지야.  응, 그리고  해님이 하얗구..... 예뻤어요.”  

일출보다 훨씬 더 감동적인 다섯 살 바기의 대답에 엄마는 가슴이 찡하다.  진정 엄마는 팔불출이다.   


하늘을 한번 더 본다.  

그러면 생각이 많아진다.  

평면이 아닌 그 무한한 공간 감에 괜히 우울해지기도 한다.  

자유로운 마음을 붙들어 매고 이렇게 땅에 발을 붙이고 서서 겨우 생각이나 하는 것에 지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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