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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Sep 04. 2016

Waiting Spring

손 바느질로 만든 그림

내가 미국에서 처음 정착한 곳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맨해튼으로 갈 수 있는 뉴저지.

11월 말,  거센 바람이 불고 

눈이 하얗게 쌓여있는 낯선 곳에서

추위에 떨며 이삿짐을 정리했었다.

정신없이 부엌살림부터 챙겨 

식구들 끼니를 만들어 먹이고,

걸레질을 하고 벽에 액자를 거는 것까지 

일주일 만에 해치우고,

따끈한 온돌 바닥 대신 

전기 히터가 횡횡히 돌아가는 추운 집에서 

미국에서의 첫겨울을 났다.


걸핏하면 눈이 허리까지 쌓이게 내려 

집에서 꼼짝도 못 하게 하더니

내가 갔던 바로 그 겨울에는 

기록적인 블리자드가 불어

마당에 있는 나무가 뿌리째 뽑혀 

지붕 위로 쓰러졌다. 

동네에 늘어 선 전봇대도 넘어가 전기가 끊겼고

식구들은 등교도 출근도 못하고

전기스토브 인지라 밥도 못하고

난방도 안 되는 집에서 스키복을 입고 

손전등을 켜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휴대용 가스버너를 장만했고,

벽난로용 땔감을 상자채 쌓아두게 되었고,

집에 물과 라면을 잔뜩 사서 쟁여두게 되었다.

그 해 겨울 나는, 

한국 생각이 많이 났고,

또 봄을 정말 간절히 기다렸다.


밝은 곳에서 바느질하기 위해

창문이 제일 큰 방을 찜하는 바람에

집에서 젤 추운 방이 내 작업실이었고,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싸들고 온 

비단과 비단실을 

책상 위에 잔뜩 어질러 놓고,

털 달린 실내화를 신고,

의자 밑에 휴대용 전기 히터를 하나 더 끼고 앉아

가로 세로 120 센티미터나 되는 큰 조각보를 

겨우내 손 시리게 바느질 해 만들었다.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분홍색에 저절로 손이 가고

갖가지 초록 초록한 비단실로 바느질을 했었던,

곱은 손에 호호 입김을 불면서 

어깨를 잔뜩 웅크렸었던 

그 겨울을 

그렇게 바느질을 하면서 났다.     


봄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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