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단 Sep 05. 2016

Golden Hills

손 바느질로 만든 그림

아침을 차려 먹이고 도시락을 싸서

식구들을 내보내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집에 혼자 남는다.    

그때부터 오후 세시,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그때 까지가

온전한 나의 시간이다.   

반나절 남짓한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도 빠듯한,  

그 소중한 시간을 아끼느라  

나는 장도 보러 가지 않고,

집안일도 최소한으로 해치운다.   


출근하는 남편의 차 꽁무니를 따라

바로 집을 나서서 동네를 한 바퀴 돈다.   

골목 입구로 나서려면

아침해를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의 해는 특별히 강하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개까지 숙이니 별수 없이

내 걸음걸음에 눈을 고정시키게 된다.   

그렇게 골목을 나와 물병을 흔들면서

동네 공원 놀이터를 지나고,  

통근, 통학하느라 차들이 들락거리는 집들을 지나

비스듬한 오르막을 씩씩거리고 걷다가

말똥 냄새가 난다 싶으면 길이 끝난다.  

막다른 길, 누렇게 마른 풀이 덮인 언덕.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던

노란 언덕들이다.  


실리콘 밸리는, 말 그대로 밸리……

좌, 우 양쪽의 산들이

울타리처럼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지역.   

한가운데 제일 낮은 곳에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끝자락이 닿아 바닷물이 흘러들고

하얀 소금이 굳어있다.  

처음 고속도로를 타고 이곳에 들어섰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도시를 둘러싼 누런 산들.   

초록이 우거진 산천을 가진 나라에서 살다 온 나에게는

멀리서 바라 본 한 여름의 누런 산은

생소한 황토색 흙산으로 보였다가

기괴한 누런 바위산으로 보였다가, 했다.   

그러다가 산 옆에 와서 살게 되면서

또, 계절이 바뀌고 비가 내리는 겨울이 되어

초록색으로 탈바꿈한 산들을 보고서

풀이 우거진 언덕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내가 나고 자란 곳과는 다른 생소한 풍광이긴 여전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할 텐데,

온통 풀로 덮인 거대한 산자락과 그에 둘러싸인 이곳은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인상을 고스란히 지켜내고 있다.


풀을 뜯어먹고 있는 말들도 나도

거의 매일 만나면서도

절대 서로 아는 척을 안 하는 사이이니

괜히 꾸물거리면서 말똥 냄새나 맡고 있을 이유가 없다.   

반쯤 남은 물병을 꿀꺽꿀꺽 비우고

이제 해를 등졌으니 고개를 들고

땀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보들의 영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