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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Sep 08. 2016

바보들의 영혼

침선 수필

기분이 이상하다.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등에 닿는 서늘한 기운에도 불구하고 땀이 난다.   

내 표정이 어지간히 이상했던지 옆에서 손을 꼭 잡아 준다.   

그 기운에 잠시 가라앉는가 싶던 심장이 다시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옆에서 내 귀에 대고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   

“지금 배를 열었어.  생각보다 많이 자른다.”

“……”

“금방이네, 조금만 참아.”  

“……”  

“아프지 않지? 이제 곧 꺼낼 것 같아.  조금만 더 기다려.”

“……”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왕왕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이상한 냄새도 난다.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는 채로 눈을 뜨고 있다.  시선을 모으니 허공에 매 달린 내 영혼이 보인다.    


“임신중독증이야. 어쩌니 얘.”  

코끼리처럼 퉁퉁 부어 오른 몸으로 씩씩 거리며 앉아있다가 이 말을 들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리 심각하게 들 리지 않았다.   친근하고 허물없는 그 말투 때문이었을까?  누르면 푹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살과 높은 혈압으로 어느 정도 예견된 진단이었다.   벌써 뱃속의 아이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있었고 예정일이 아직 두 달 남았으니 출산을 해도 인큐베이터 신세를 질 터였다.  인큐베이터가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그로부터 한 달을 혈압 측정기를 끼고 꼼짝없이 누워서 버텼다.     


다시 중계가 계속된다.

“지금 꺼낸다.  이야, 나왔어”

펄쩍 뛰어 일어나 탯줄을 자르러 간다.  뭘 하는지 시간이 한참 걸린다.  아기는 계속 ‘아앙 아앙’하며 울고 있다. 심장은 달리기라도 하는 듯이 쿵쿵거린다.   아기의 울음소리와 내 심장 뛰는 소리에 귀가 다 멍멍하다.   곰 같은 덩치의 남편이 2.5 킬로그램의 조그만 아기를 내 얼굴에 들이민다.   아기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져 있다.  허공에 매달려 있던 내 영혼이 그 손가락 사이로 삐죽이 나와 있는 게 보인다.   이 아이가 내 영혼을 가져갔다.   “울지 마, 아빠, 엄마야.”  

이 말을 듣는 순간 놀라움과 긴장감은 다 어디를 갔는지 ‘피식’ 웃음이 나 온다.  매일 연습이라도 한 사람처럼 아빠, 엄마란 말이 잘도 나온다.  


이렇게 해서 내 아들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 새빨갛고 조그만 아기로 인해 모든 것이 변했다.   혼자만의 생활은 없어졌다.   항상 함께가 되었다. 사람 많은 식당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밥을 떠먹는 얼굴 두꺼운 여자가 되었다.   변기에 앉은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힘을 주는 동안은 코가 막힌 여자가 되었다.   설탕 한 포대도 낑낑 대며 들어 올리던 아가씨는 몸무게 18킬로그램의 아이를 한 팔로 번쩍 안아 올리는 천하장사가 되었다.   


흔히들 하는 말들이 있다.

‘남들도 다 키우는 자식, 어쩌고 저쩌고’ 또는,  ‘애는 낳아만 놓으면 다 지가 알아서 큰다’ 거나  ‘지 밥그릇은 다 지가 갖고 태어난다.’는 등…… 그런 말들이 다 진짜인 줄 알고 있던, 나는 정말이지 바보였다.  잠든 아이 옆에서 뜨개질을 해 옷을 입히는 극성을 떨었고,  손바느질해 만든 비단 베개에 조그만 아이의 머리를 누이며 흐뭇해했으면서 내 부모님을 위한 베개 한쌍 만들어 본 적 없는 바보였다.   ‘너도 자식 키워봐라’라고 왜 들 말하는지, ‘지 자식 키워 봐야 부모 마음 안다’는 말도,  이제는 알겠지만 행동이 변하지 않는,  나는 아직까지도 바보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내리사랑’이라는 말은 진정 맞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태어날 때,  엄마의 영혼은 그들의 두 손에 쥐어진다.   엄마의 영혼은 바보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영혼을 지켜주고 키워 준다.  그리고 그 바보가 어른이 되면 자신의 영혼은 또 그 자식에게 내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받은 영혼만은 그 바보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다.   나는 내 영혼이 내 아들의 손에 쥐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아이 안에 내 영혼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을 안다.  내 영혼은 내 것이 아 니라 내 아들에게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올 때 받은 엄마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내가 엄마의 영혼을 움켜잡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살아오는 동안 그 영혼이 내내 함께 했다는 것을 그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내가 내 것을 내 아들에게 내어 주고서야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이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직접 겪고서야 큰 것을 알아차리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 밖에는 변하지 못하는,  나는 진짜 바보이다.   나는 전부터 바보였고 지금도 여전히 바보이다.  하지만 달라진 것도 있기는 하다.  전에는 내가 바보라는 걸 모르는 바보였지만 지금은 내가 바보라는 걸 아는 바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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