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느질로 그린 그림
물고기를 좋아한다.
유선형의 탄탄한 몸뚱이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반짝거리고 선명한 색깔의 비늘과 피부를, 내가 쉽게 가 볼 수 없는 세상인 물속을 헤엄치는 그 유유자적한 몸짓을 좋아한다.
육고기보다는 생선을 좋아하는 나의 식성이, 산보다는 바다를, 고무통 안에 살아 펄떡이는 생선이 있는 어시장과 해풍에 널어놓은 생선이 꼬들하게 말라가는 어촌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되지만, 정작 단번에 나의 시선을 잡아 끈 물고기를, 나는 바다가 아닌 산에서 만났다.
충남 공주에 있는 '마곡사'는 관광지로 이름난, 그런 절은 아니다. 그저 나의 친정이 공주와 인연이 있는지라, 어릴 적부터 자주 가는 지방이었기 때문에 여러 번 가볼 수 있었다. 화려한 단청과 웅장한 석조 계단, 관광객들로 복잡한 사하촌을 거느린 다른 유명 사찰들과는 달랐다. 칠이 벗겨지고 그나마 남은 색마저도 바랜 오래된 목조건물이 처음에는 다소 허름하게 보였지만, 여러 번 방문하는 동안 점점 다정해졌었다.
그리고 그 절집에서, -왠지 '사찰'이라고 부르기 싫은, '절'이라고도 부르기 싫은, '절집'이라고 부르고 싶은- 그 친근함 풍기는 그곳에서 그 '목어'를 보았다. 그동안 숱하게 다녔던 다른 절에서도 늘 봐왔을 텐데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 이상하게 그곳의 그 '물고기'가 나의 눈에 쏙 들어왔었다. '목어', 즉 나무로 만들어진 물고기, 용의 머리와 비늘을 하고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다른 절들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둥글고 친근한 머리에 가지런한 비늘이 촘촘히 박힌 몸, 지금이라도 바로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어댈 것만 같은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 것만 같은, 인형같이 동그란 눈동자를 가진 커다란 물고기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물속이 아닌 산속에 사는 그 물고기, '목어'의 시작에는 역시 전설과도 같은 오래된 사연이 있었고, 잠을 잘 때 조차도 눈을 감지 않고 항상 뜨고 있는 물고기를 절에 매달아, 수행자로 하여금 늘 깨어있어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잖아도 좋아하던 물고기가, 마음에 쏙 박혀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보게 된 계기가 되었었다.
광장시장 원단 가게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빈틈없이 쌓아놓은 비단들 속, 오랫동안 켜켜이 쌓여 있었던 바람에 조명에 노출된 한쪽 면이 빛에 연하게 바래버린 공단 두필을 갖게 되었었다. 바로 그 부분, 빛 때문에 색이 바래 오히려 빛처럼 하얗게 빛나는 그 부분을 잘라 물고기 몸통을 삼았다. 조각보라고 보이지는 않겠지만 조각보 만드는 기법으로 바느질해 만든 나의 첫 번째 물고기.
바다와 강, 해수와 담수를 모두 돌아다니며 사는, 고향을 찾아 후손을 남기기 위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회유성 어류인 연어에서 그 형태를 많이 차용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색의 속살과 온몸으로 물과 빛을 벗 삼는 존재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름을 지어주었다.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이렇게 멀리 떠나 살게 될 줄 모르고, 태평양 건너 새 보금자리에 걸어놓고 매일 보면서, 이 물고기처럼 진한 귀소본능에 사무쳐 살게 될 줄도 모르고, 비단을 바느질해 구름같은 솜을 채워 만들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마치 예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