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주 열사도 투사도 아니었다
109인 대학 신입생 납치 사건-2화
그 흔한 데모 한 번 참가 안 했다. 다만 군부가 정권을 잡은 건 쿠데타, 정권 유지를 위해 독재를 하고 있다는 건 명백히 알고 있었다. 이념 서클 아니고 종북은 더구나 아니었다. 북한이야말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철저한 독재라는 걸 진즉 깨우쳤기 때문이다.
나랏일이나 정치를 생각하기엔 개인적으로 혹독한 청춘의 방황기였다. 고교 졸업 즈음 시작된 그 방황을 고대 입학하면서 2년만에 끝냈다. 나는 대학 신입생일 뿐이었고 대학의 낭만에 흠뻑 젖고 싶었다. 날마다 저녁이면 술에 절었고, 다음날 오후면 본관 왼편으로 활 닮아 휜 라일락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누웠다. 가방을 베개 삼아 중앙도서과서 빌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던 영문학도. 더 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보헤미안이었다.
어느날 군사 정권은 그런 나를 법에 없이 강제 징집하였고, 병영에 갇힌 자유 영혼은 하루 아침에 개만도 못한 한 마리 벌레가 되어 있었다. 온갖 형태의 구타는 길이 들던지 자살하던지 양자택일. 내가 문무대에서 잘못한 게 있다면 셋이었다. 문무대 측의 입소 거부를 따르지 않은 것, 군사 교육 거부는커녕 군사 교육 받게 해달라고 문무대 연병장을 단체로 몇 바퀴 돈 것, 군사 교육 중 태도 불량.
교련 즉 군사 교육 학점을 D를 주던가, 재수강 하라든가면 될 일 아닌가. 느닷없이 강제 징집이라니? 병역법에 그러한 사유로 징집 조항 있는가? 신검도 없이 영장 받고 일주일 후 초고속 입영이라니. 구타에 굴종하는 치욕을 견디느니 자살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내가 무슨 거물이라도 되는 양 입대일부터 전역일까지 군 보안대가 감시하고 사진 촬영해 보고하고. 심지어 휴가 기간마다 군 보안대 상사가 매일 집까지 찾아와서 무얼하는지 누구 만나는지 점검하고. 보안대로 불러서 벌 주고 겁 주고, 제대 직전 일주일은 숙식하며 나의 완벽한 굴종을 강요하고는 제대 시켜주더라. 그리고 문무대 교육 마쳤는데 군 복무 3개월 면제 혜택은 왜 안 주는가?
환갑 넘도록 여즉 군대 꿈을 꾼다. 30개월 만기에다 7일 더 복무하고 전역했구만 다시 군에 가 있다. 30개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란다. 비몽사몽. 현실이라 인정 못 하니 제발 제발 꿈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 군역 마쳤다, 나 군역 마쳤다, 나 군역 마쳤다. 절박한데 정작 말은 튀나오지 않는다. 가위 한껏 눌려 애쓰다 애쓰다 깬다. 꿈마저 강제 징집. 참으로 지랄맞은 꿈이어서 기분 더럽다. 똑같은 꿈이 생애 반복된다.
ㅡㅡㅡ
이걸 왜 쓰냐?
생사람 때려잡는게 독재라는 거. 삶이 으깨지고 방향이 뒤틀린다는 거. 누군가는 생명을 잃거나 스스로 버린다는 거. 멀쩡한 이를 반독재로 내모는 게 독재라는 거. 독재는 필연 피해를 양산한다는 거. 누구든 언제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거. 이런 해괴한 일이 후대에는 결코 반복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거.
통제 되지 않는 국가 권력은 국민을 해치는 흉기다. 그 권력자는 묻지마 범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