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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Apr 19. 2024

대통령 특별 관심 사병

109인 대학 신입생 납치 사건-3화


자유, 평화, 낭만의 영문학과 신입생은 국가로부터 노란 종이 쪽지 한 장을 받는다. 입영 통지서. 입대일자 일주일 후. 급거 상경해 대학에 알아보니 직권 휴학. 나는 휴학을 신청한 바 없는데 대학이 강제로 휴학 처리. 나를 잡아 군에 가두려는 전두환 정권에 대학이 부역했던 거. 나라든 대학이든 반항, 소송의 시간 여지를 안 주려고 입대일자를 일주일 후로 못 박은 거. 입영 안 하면 병역 거부, 체포, 감옥. 입대할래 감빵 갈래. 목에 들이댄 날선 칼날. 문무대서 교육 받게 해달라고 요구한 걸 이렇게 법에 없이 보복하는 거. 그렇게 나는 계획이고 뭐고 없이 강제 징집 당했던 거.


금새 입영일. 아침 일찍 시청 공무원인 동네 형이 집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감시인. 친절하게도 나를 데리고 시외버스터미날. 춘천행 버스 표까지 사준다. 103보충대 정문 들어가는 거 확인하고는 사라져. 이처럼 나의 입영은 부도 모도 형제도 친구도 아니었다. 일대일 호위무사. 그날 이후 늘 나를 쫒아다니는 무엇. 내 눈에 뜨이지 않았으나 확실히 존재하는 그 무엇.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중졸도 입대하고, 대학 진학은 열에 두셋인 시절. 큰 부대건 작건 어딜 가나 나를 붙들어 둔다. 큰 키, 다부지고 날렵한 몸의 태권도 유단자, 이목구비 뚜렷한 호남. 고교 때 연대장 즉 학생회장으로 전교생을 호령했다. 열병식, 분열의 최선두에 서서 지휘 칼을 휘두르다. 삼짱 즉 뇌짱, 몸짱, 쌈짱. 학력으로는 육군본부, 영어 전공이라 카츄사, 체력으로는 특수부대가 제격인 자가 강원도 춘천에 떴다.


거치는 곳마다 나를 행정병으로 쓰려고 했다. 103보충대, 신병 교육대, 사단 본부, 연대ㆍ대대 각 며칠씩 대기. 어디고 야, 넌 안 되겠다며 짐 싸란다. 어디고 이유는 말 않는다. 마지막엔 산 속에 자리잡은 중대 본부도 며칠 대기. 끼니마다 까마귀떼가 반긴다. 쓰레기장에 버린 짬밥 먹고 사는 이십여 마리. 깍 깍 까악. 가 가 더 가아. 역시나 니꾸샤꾸 룩색 백 꾸리라 한다. 이번에도 천막 두른 군용 트럭 뒤 칸에 태워서 이동. 한참 달리고나니 트인 뒤쪽으로  지뢰, 지뢰, 지뢰. 흙길 도로 옆으로 쌓인 흰 눈. 그 위로 새빨간 글자. 무릎 놉이 철조망에 매단 역삼각 지뢰 표지판. 아, 최전방이구나. 그렇군. 여기가 목적지였군. 설마 북으로 보낼 건 아닐 테니까. 거쳐온 부대 본부마다 행정병으로 쓰려고 빼놓고는 넌 아니라고, 가라고 하더니만. 나를 지켜보며 부대를 조종하는 게 확실하다. 누굴까? 누구긴. 전지전능하신 전두환 대통령 각하시지. 나라, 군대가 지꺼니까 지멋대로 군 보내고 군에 가두고 군이 감시하고 복무지도 지 맘대로 정하고.




ㅡㅡㅡ




이렇게 군 전투력 강화에 기여할 자원은 주특기 100 일빵빵 소총수로서 GOP 철책 최전방 경계병으로 배치되었다.


집에서 전보. 아버지 중병으로 쓰러지셨다고. 나 장남. 휴가 보내달라니까 안 된다고. 부모가 중병이면 휴가 보내는데 나는 아니란다. 왜? 대통 스페셜 관심 사병이니까.


훼바로 내려와서 병장 넷이 집단 구타. 뇌 이상 증상. 대대 의무대, 연대, 사단 의무대 거쳐서 군단 병원. 그 다음 원주 1군 병원서 한 달여. 나는 의병 제대 신청. 군의관도 그러라고. 며칠 후 안 된단다. 이유는 말 않는다. 대전 국군통합병원으로 가란다. 거기서 한 달 여. 군의관이 부대 복귀 하란다. 왜? 대특관사


첫 휴가. 고향 집. 군 보안대서 부른다. 그렇군. 이제야 실체를 드러내는군. 중사. 고교 동창의 매형. 조사. 휴가 기간 어디 갈 건지, 누굴 만나 뭐 할 건지. 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집에 할일이 많다. 일주일 내내 집에서 일만 한다. 대청소, 도배하고 수리하고. 매일 아침 집에 들러서 확인. 서울에 대학 친구들 보러 간다고 보고한다. 휴가 복귀날 다시 들러서 확인. 세 번의 정기 휴가. 각 15일씩. 같은 패턴 반복. 나 별 볼일 없는 사람이구만 나라에서 이런 정성을. 왜? 대특관사.


군 전역 직전 일주일. 사단 보안대서 일주일 숙식. 중위 1명이 내 전담. 조사해 봤자 나올 거 없다는 건 그들도 안다. 3년 들입다파서 건진 거 없잖아. 그래도 또 조사. 허망한지 엎드려 뻗쳐,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내일 모레면 제대인데, 사회인인데 항복, 굴종을 강요하고 확인하는 거. 더럽다. 차라리 때리든가. 시키는대로 했다. 모욕을 주었고 치욕을 안겼다. 첫날 순종의 대가인가 일주일 내내 부대 밖 강에 홀로 나가도 된단다. 낚시로 시간을 보내는 권리를 준다. 왜? 대특관사.


나는야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특별한 관심과 무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은 사병이었다. 하해 같은 은혜의 보답으로 나는 면제 3개월 혜택을 헌납해야 했다. 30개월 만기, 아니 7일을 더 복무하고 전역하였다. 물론 이 또한 강제였다.


이렇게 전두환 군사 정권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독재의 수단으로 악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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