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대학 다니다 왔으면 육사 가지 그랬냐? 그럼 이 고생 않고 대대장 할 거 아니냐. 짚차 주고 운전병도 달리고.
별 달아줘도안 합니다.
막내 이등병의 대꾸 한마디가 그날 소대를 발칵 뒤집는다. 병들은 군번 순으로 밤새도록 집합해 구타를 당한다. 군기 빠졌다고. 막내가 왕고참 심기 건드렸다고. 막내만 빼고.왜 막내는 빼냐고?
'진짜 사나이'에서
유일한 생명선인 병참 도로 제설 작업 중 휴식. 다들 길가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땀을 식힌다. 순시 돌던 대대장 짚차를 보고 조병장이 내게 던진 말이었다. 그에게는 대대장 중령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던 거. 그는 소대 왕고참이다. 중졸. 키는 제일 작아 160에 모자라다. 면도 볼품 없어 수호지의 찌질이 무대보다 조금 나을 정도. 대학 1년 마치고 갓 훈련소를 마친 막내는 175에 건장한데다 한 인물하여 경양강 숲에서 호랑이 맨손으로 때려잡은 무송급. 무대는 무송이 귀엽다며 강아지처럼 데리고 다닌다. 잘 때도 옆에 재운다. 손을 내복 하의에 찔러넣어 거시기 만지작. 뿌리치지 못 한다. 신병교육대 5주 내내 날마다 매시간 매분 이보다 더한 능욕을 당했고, 거부 즉 항명이다. 정당 부당 이런 건 애초에 없어서 무자비한 구타에 이미 길들졌다. 나는야 개ㅅㄲ. 아니 그만도 못한 버러지. 그렇지 않은가. 미친 개도 몽둥이 찜질이지 성기를 희롱하진 않는다. 게이는 아니어서 그 이상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길 뿐.
소대 40여 명 중 넷이 병장이었다. 둘 고졸, 하나 더 중졸. 이이 또한 말년과 같이 짜리몽땅. 허나 매서운 눈매. 술, 여자 대주는 유흥업소 뽀이하다 입대했다고. 잔인하기로 소문났다. 나머지 둘은 중키에 특별나지 않아. 넷은 군번 한 달 차이고, 그 아래로 짬밥 차이가 컸다. 제대가 멀지 않은 병장들이라 넷이 한통속으로 지낸다.이들 얕잡아 본 거 아니다. 이등병이 감히 그럴 수도 없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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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볼
볼 ball 아니라 보울 그릇. punch bowl. 육이오때 미군이 불렀으리라. 주먹을 꾸욱 눌러 찍은 뜻이리라. 딱 그 형상. 딱 냉면 그릇 닮아. 바닥은 광활하고 테두리는 깎아지른 거산. 주민 수 백 명 거주. 감자 농사가 주업. 민통선 안에 자리잡은 민간. 휴전선 남쪽 유일할 거다. 육이오 막바지 동부 전전 격전지. 여기서 밀리면 양구까지 수 십 키로 북한 거. 일대서 최고 높은 산악 지대. 밭 일구다 죽거나 한쪽 다리가 없는 주민 다수. 전쟁 때 심은 대인지뢰, 발목지뢰를 밟아서.
운해
해뜰 무렵 06시경. 후반부 야간 경계 00시부터 6시간을 마치고 초소에서 철수한다. 산 정상의 막사로 오른다. 쫄따구라 구석에 숨어 은하수 담배 한 대 피우려는데 아니 이런.
운해라 했던가. 과연 구름의 바다. 구름이 바다고 바다가 구름이어라. 딱들어맞는 어휘. 구름 그릇째 한가득 퍼담은 듯.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그 구름인 건 같다. 그리고 파도. 바닷가 바위에 부딛치는. 구름과 나 거의 같은 고지. 발 아래로 산과 접한 면에서찢어지고 부서지고이내흩어진다. 허공에말려들어흔적없이사라진다.간단없다. 극치미라 했던가. 바로 이것 이 순간.화가라면 붓이 흘렀고 시인이라면 탄사 여구를 토할 수밖에 없는. 온 데를 모르는 파랑은 마침내 산사면에 이르러시간도 공간마저도잊게한다. 인간과 관련은부질없다며흰 구름은 아래로 모든 걸 묻었다. 지상과 천하가 접하는 지점에서 황홀경은 군에서 상처 입은영혼의 청춘을 어루달랜다.단 한 번. 복무 처음이자 마지막 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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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안이라 불렀다. 바다 해 연안 안이리라. 펀치볼이라니. 뻔대가리 없게시리. 전쟁 끝난지 20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구만. 이제 미군은 백오십 키로 후방에 있구만.해안 주민과 지오피 병사 간 거래는 없다. 공식적으로는. 병장 넷은 매일 소주를 밤새 박스째 비운다. 최전방 술 금지이고 살 데도 없는데? 배식과 졸병 군기를 담당하는 식기당번 넷 중 둘 차출. 밤을 틈타 1키로여 민가로 내려가서 소주 두 박스. 길은 없어서 숲을 헤치고. 각 1박스씩 땀 뻘뻘 등짐 메어 오른다. 돈이 어딨어서? 병장 넷 빼고 모든 쫄따구 봉급에서 따박 떼어 상납. 월 2,000원 가량 중 천 원. 30여 명 모으면 꽤 큰 돈이다. 에게 2천 원. 아니. 피 같은 돈이어서 봉급 외 생명수당이라고 GOP 근무 1일 당 1인 100원을 준다. 전쟁 터지면 국군 최우선 총알받이. 죽음의 일일 적금. 이천 원이면 20일치 생명을 강탈하는 거. 안 내면 되잖아. 구타. 지휘관 모르게? 안다. 빈 소주병이 매일 짝으로 나오는데 산꼭대기 도려내어 40여 평 평지에 그걸 어디다 숨기나. 하루 이틀이래야지. 돈 떨어지면 술판 끝. 다음달 봉급날 술판 재개. 다행히 생명수당은 갈취 못 해. 1년 철책 근무 끝나면 훼바 내려가서 한꺼번에 주거든. 무려 36,500원 거금.
해안에서 술 사오라 해서 넷이 밤마다 퍼질러 처먹는 거. 안주는 과자 부스러기. 모두가 취침하는 내무반 구석에서 소주 파티. 출출하면 라면. 한번은 주 병장이 불침번인 나보고함께 가잔다. 싫지만 따라야. 끓여줘도 나는 안 주는 라면은 싫어. 막사 밖 참호로 이어진 길 따라가면 키높이로 사방 두 칸 면적의 발전실. 콘크리트를 두텁게 타설해 적 포탄에 견딜 만큼 견고하다. 쇠철문 역시 포탄 내성이라 쇳덩이. 응차 힘들여 연다.
안으로 반을 채운 발전기 한 대. 삐삐선은 전깃줄이다. 가는 철선 여러 가닥을 블랙으로 피복. 주 병장은 삐삐선을 한쪽은 발전기에, 반대쪽은 가져간 군용 숟가락 손잡이에 연결한다. 숟가락을 준비해 간 빠게쓰 물 반 통에 담근다. 그리고 커다란 휠을 손으로 돌려 발전기 가동. 야밤이라 더한 엔진의 굉음과 함께 우르릉 우르릉. 코일의 회전 운동으로 발전기 진동음. 전기에 진동이 더해져 더 빨리 우르륵 끓는 물. 삼양라면 여러 봉다리 까고반토막 내서 투입. 밀폐된 공간은금새 짙은 희뿌연 연기로 구석부터 천장까지 빈틈없이 가득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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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주 병장 벌떡 일어서며 철문 쪽으로 움직이는데 허리 굽은 채 휘청. 철문 앞에서 체중 잔뜩 실린 쿵 소리와 동시에 픽 쓰러진다.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이마에 철철 피 흐른다. 철문 강판을 보강하려고 세워서 가로지른굵은 쇠를 들이받은 거. 주 병장님! 주 병장님! 외치고 흔들어도 꿈쩍 않는다. 바닥에 낭자 선혈. 죽은 거?라면 끓이다 자살은 아니잖아? 큰일났다. 일으켜 세우려는데 양팔에 영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몇 번을 애쓰지만 소용없다. 왜 이렇게 무겁지? 쇳덩이인가 왜 꿈짝도 않지? 참 이상하네. 이상하.....
두어 시간 후.
꿈인가 생시인가. 얼굴 여럿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나 누워있는 거. 눈 떴다! 깼어! 환호성. 나보고 그러는 거? 내가 왜 땅바닥에 누웠지? 한겨울 찬바람이 더없이쾌적하다. 호흡은 식초 향처럼 상큼하다. 몸 일으키려는데 의지와 달라 일어나지지 않는다. 춥다. 부축 받아서 앉는다. 일어선다. 한두 발 내딛는데 한여름 엿가락처럼 휘청. 시간여 지나니 제 걸음 제 정신. 속이 메스껍다. 옆에 주 병장은 그때쯤 깬다.
휘발유가스 먹은 거란다. 라면이 안 와서 발전실 가 보니 둘 다 뻗었더라고. 전신이 굳어 뻣뻣하더라는. 통나무였다고. 아하, 이산화탄소 중독이구나. 이제사 주 병장의 행동 이해. 그는 알았던 거. 가스를 직감하고 철문 열어 환기 하려다가 부상과실신. 이어서 나. 정신을 잃었던 거. 주 병장은 매일 밤 소주 들이켰고, 쫄따구는 술 한방울 못 먹고 거친 작업으로 체력 단련 되었고 늦게 반응 왔던 거. 10분 늦었으면 둘 다 죽었을 거란다. 이리하여 해안 능선의 순수 대기는 폐를 핥는 진한 키스로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날 알았다. 죽음은 아무런 고통 아니고 망각이란 걸. 산 자의 망각은 오래나 죽는 자의 망각은 순간이란 걸.
♤ 입대 7개월까지 스스로 군부적응자였다.얼마후 이 넷병장들이 날 잡아 작정한다.막내 이등병인 나를 집단 구타. 군 병원에 장기 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