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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May 29. 2024

해안의 기억

25화. 109인 대학 신입생 납치 사건


1982년


너는 대학 다니다 왔으면 육사 가지 그랬냐? 그럼 이 고생 않고 대대장 할 거 아니냐. 짚차 주고 운전병도 달리고.


별 달아줘도 안 합니다.


막내 이등병의 대꾸 한마디가 그날 소대를 발칵 뒤집는다. 병들은 군번 순으로 밤새도록 집합해 구타를 당한다. 군기 빠졌다고. 막내가 왕고참 심기 건드렸다고. 막내만 빼고. 왜 막내는 빼냐고?




'진짜 사나이'에서




유일한 생명선병참 도로 제설 작업 중 휴식. 다들 길가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땀을 식힌다. 순시 돌던 대대장 짚차를 보고 조병장이 내게 던진 말이었다. 그에게는 대대장 중령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던 거. 그는 소대 왕고참이다. 중졸. 키는 제일 작아 160에 모자라다. 면도 볼품 없어 수호지의 찌질이 무대보다 조금 나을 정도. 대학 1년 마치고 갓 훈련소를 마친 막내는 175에 건장한데다 한 인물하여 경양강 숲에서 호랑이 맨손으로 때려잡은 무송급. 무대는 무송이 귀엽다며 강아지처럼 데리고 다닌다. 잘 때도 옆에 재운다. 손을 내복 하의에 찔러넣어 거시기 만지작. 뿌리치지 못 한다. 신병교육대 5주 내내 날마다 매시간 매분 이보다 더한 능욕을 당했고, 거부 즉 항명이다. 정당 부당 이런 건 애초에 없어서 무자비한 구타에 이미 길들졌다. 나는야 개ㅅㄲ. 아니 그만도 못한 버러지. 그렇지 않은가. 미친 개도 몽둥이 찜질이지 성기를 희롱하진 않는다. 게이는 아니어서 그 이상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길 뿐.


소대 40여 명 중 넷이 병장이었다. 둘 고졸, 하나 더 중졸. 이이 또한 말년과 같이 짜리몽땅. 허나 매서운 눈매. 술, 여자 대주는 유흥업소 뽀이하다 입대했다고. 잔인하기로 소문났다. 나머지 둘은 중키에 특별나지 않아. 넷은 군번 한 달 차이고, 그 아래로 짬밥 차이가 컸다. 제대가 멀지 않은 병장들이라 넷이 한통속으로 지낸다. 이들 얕잡아 본 거 아니다. 이등병이 감히 그럴 수도 없거니와.

 



ㅡㅡㅡ




펀치볼


볼 ball 아니라 보울 그릇. punch bowl. 육이오때 미군이 불렀으리라. 주먹을 꾸욱 눌러 찍은 뜻이리라. 딱 그 형상. 딱 냉면 그릇 닮아. 바닥은 광활하고 테두리는 깎아지른 거산. 주민 수 백 명 거주. 감자 농사가 주업. 민통선 안에 자리잡은 민간. 휴전선 남쪽 유일할 거다. 육이오 막바지 동부 전전 격전지. 여기서 밀리면 양구까지 수 십 키로 북한 거. 일대서 최고 높은 산악 지대. 밭 일구다 죽거나 한쪽 다리가 없는 주민 다수. 전쟁 때 심은 대인지뢰, 발목지뢰를 밟아서. 


운해


해뜰 무렵 06시경. 후반부 야간 경계 00시부터  6시간을 마치고 초소에서 철수한다. 산 정상의 막사로 오른다. 쫄따구라 구석에 숨어 은하수 담배 한 대 피우려는데 아니 이런.


운해라 했던가. 과연 구름의 바다. 구름이 바다고 바다가 구름이어라.  들어맞는 어휘. 구름 그릇째 한가득 퍼담은 듯.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그 구름인 건 같다. 그리고 파도. 바닷가 바위에 부딛치는. 구름과 나 거의 같은 고지.  아래로 산과 접한 면에서 찢어지고 부서지고 이내 흩어진다. 허공에 말려들어 흔적없이 사라진다. 간단없다. 극치미라 했던가. 바로 이것 이 순간. 화가라면 붓이 흘렀고 시인이라면 탄사 여구를 토할 수밖에 없는. 온 데를 모르는 파랑은 마침내 산사면에 이르러 시간도 공간마저 잊게 한다. 인간과 관련은 부질없다며 구름은 아래로 모든 걸 묻었다. 지상과 천하가 접하는 지점에서 황홀경은 군에서 상처 입은 영혼의 청춘을 어루달랜다. 단 한 번. 복무 처음이자 마지막 조우였다.




ㅡㅡㅡ




우리는 해안이라 불렀다. 바다 해 연안 안이리라. 펀치볼이라니. 뻔대가리 없게시리. 전쟁 끝난지 20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구만. 이제 미군은 백오십 키로 후방에 있구만. 해안 주민과 지오피 병사 간 거래는 없다. 공식적으로는. 병장 넷은 매일 소주를 밤새 박스째 비운다. 최전방 술 금지이고 살 데도 없는데? 배식과 졸병 군기를 담당하는 식기당번 넷 중 둘 차출. 밤을 틈타 1키로여 민가로 내려가서 소주 두 박스. 길은 없어서 숲을 헤치고. 각 1박스씩 땀 뻘뻘 등짐 메어 오른다. 돈이 어딨어서? 병장 넷 빼고 모든 쫄따구 봉급에서 따박 떼어 상납. 월 2,000원 가량 중 천 원. 30여 명 모으면 꽤 큰 돈이다. 에게 2천 원. 아니. 피 같은 돈이어서 봉급 외 생명 수당이라고 GOP 근무 1일 당 1인 100원을 준다. 전쟁 터지면 국군 최우선 총알받이. 죽음의 일일 적금. 천 원이면 20일치 생명을 강탈하는 거. 안 내면 되잖아. 구타. 지휘관 모르게? 안다. 빈 소주병이 매일 짝으로 나오는데 산꼭대기 도려내어 40여 평 평지에 그걸 어디다 숨기나. 하루 이틀이래야지. 돈 떨어지면 술판 끝. 다음달 봉급날 술판 재개. 다행히 생명 수당은 갈취 . 1년 철책 근무 끝나면 훼바 내려가서 한꺼번에 주거든. 무려 36,500원 거금.


해안에서 술 사오라 해서 넷이 밤마다 퍼질러 먹는 거. 안주는 과자 부스러기. 모두가 취침하는 내무반 구석에서 소주 파티. 출출하면 라면. 한번은 주 병장이 불침번인 나보고 함께 가잔다. 싫지만 따라야. 끓여줘도 나는 안 는 라면은 싫어. 막사 밖 참호로 이어진 길 따라가면 키높이로 사방  칸 면적의 발전실. 콘크리트를 두텁게 타설해 적 포탄에 견딜 만큼 견고하다. 쇠철문 역시 포탄 내성이라 쇳덩이. 응차 힘들여 연다.


안으로 반을 채운 발전기 한 대. 삐삐선은 전깃줄이다. 가는 철선 여러 가닥을 블랙으로 피복. 주 병장은 삐삐선을 한쪽은 발전기에, 반대쪽은 가져간 군용 숟가락 손잡이에 연결한다. 가락을 준비해 간 빠게쓰 물 반 통에 담근다. 그리고 커다란 휠을 손으로 돌려 발전기 가동. 야밤이라 더한 엔진의 굉음과 함께 우르릉 우르릉. 코일의 회전 운동으로 발전기 진동음. 전기에 진동이 더해져 더 빨리 우르륵 끓는 물. 삼양라면 여러 봉다리 까고 반토막 내서 투입. 밀폐된 공간은 금새 짙은 희뿌연 연기로 구석부터 천장까지 빈틈없이 가득 찬다.




ㅡㅡㅡ




느닷없이 주 병장 벌떡 일어서며 철문 쪽으로 움직이는데 허리 굽은 채 휘청. 철문 앞에서 체중 잔뜩 실린 쿵 소리와 동시에 픽 쓰러진다.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이마에 철철 피 흐른다. 철문 강판을 보강하려고 세워서 가로지른 굵은 쇠를 들이받은 거. 주 병장님! 주 병장님! 외치고 흔들어도 꿈쩍 않는다. 바닥에 낭자 선혈. 죽은 거?라면 끓이다 자살은 아니잖아? 큰일났다. 일으켜 세우려는데 양팔에 영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몇 번을 애쓰지만 소용없다. 왜 이렇게 무겁지? 쇳덩이인가 왜 짝도 않지? 참 이상하네. 이상하.....


두어 시간 후.


꿈인가 생시인가. 얼굴 여럿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나 누워 있는 거. 눈 떴다! 깼어! 환호성. 나보고 그러는 거? 내가 왜 바닥에 누웠지? 겨울 찬바람이 더없이 쾌적하다. 호흡은 식초 향처럼 상큼하다. 몸 일으키려는데 의지와 달라 일어나지지 않는다. 춥다. 부축 받아서 앉는다. 일어선다. 한두 발 내딛는데 한여름 엿가락처럼 휘청. 시간여 지나니 제 걸음 제 정신. 속이 메스껍다. 옆에 주 병장은 그때쯤 깬다.


휘발유 가스 먹은 거란다. 라면이 안 와서 발전실 가 보니 둘 다 뻗었더라고. 전신이 굳어 뻣뻣하더라는. 통나무였다고. 아하, 이산화탄소 중독이구나. 이제사 주 병장의 행동 이해. 그는 알았던 거. 가스를 직감하고 철문 열어 환기 하려다가 부상과 실신. 이어서 나. 정신을 잃었던 거. 주 병장은 매일 밤 소주 들이켰고, 쫄따구는 술  울 못 먹고 거친 작업으로 체력 단련 되었고 늦게 반응 왔던 거. 10분 늦었으면 둘 다 죽었을 거란다. 이리하여 해안 능선의 순수 대기는 폐를 핥는 진한 키스로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날 알았다. 죽음아무런 고통 아니고 망각이란 걸.  산 자의 망각은 오래나 죽는 자의 망각은 순간이란 걸.




♤ 입대 7개월까지 스스로  부적응자였다. 얼마이 넷 병장들날 잡아 작정한다. 막내 이등병인 나를 집단 구타. 군 병원에 장기 입원.



♤ 검색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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