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un 07. 2024

망우리

26화. 응답하라 1968-놀이 편

불만큼 흥분하는 건 드물다. 새해를 어른은 불 구경, 아이는 불놀이로 맞이한다.



새해 첫날



양력 1월 1일 새벽. 봉산미 정상에 장작불이 타오른다. 산이 받친 거대한 촛불. 북단에 치우쳐 홀로 우뚝 솟았기에 높지는 않아도 시내 어디서고 보인다. 시민들은 어둠을 활활 태우며 하늘 맹렬히 핥는 불길을 바라본다. 불과 함께 지난해를 날려 보내고 더욱 새로운 한 해를 기원한다. 황토 바닥이 버젓이 보이는 민둥산이라서 산불로 번질 일 없다. 봉산의 미라  함은 치악에서 나려온 봉황의 꼬리.



정월 대보름



음력 1월 15일. 꽉찬 달을 보아야 기에 음력. 마을마다 논 바닥에 아이들. 빈 깡통 뚜껑은 버리고 대못으로 원통과 바닥면에 구멍 숭숭. 테두리 양끝으로 마주보게 구멍 하나씩 더. 대개 황도, 꽁치 통조림 깡통을 줍지만 욕심 내어 페인트 빈 통을 쓰기도. 까만 전선줄 양끝을 구멍에 걸어 단디 묶는다. 허리춤 길이. 깡통 안 아래로 마른 풀, 위로 잔가지 얼기설기, 사이사이 발로 우지끈 분지르고 결 따라 쪼갠 판자. 판자가 없으면 남의 집 판자 담. 아래가 썩어 못 뽑혀 너덜한 걸 당겨서 뜯어다 쓰기도. 풀을 벌리고 성냥불을 안으로 넣으면 순서대로 탄다. 얼추 판자에 옮아 붙는다.


줄을 한 손아귀에 고 머리 위로 빙빙 돌린다. 통 처지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공기는 멈췄지만 통을 돌리니 바람이 구멍으로 몰아쳐 판자에 불 활활. 세게 돌린다. 연기 없이 불길이 깡통에 찬다. 더 세게. 불이 넘친다. 화악 화악 대기를 가르는 소리. 휘두는 팔 지치고 손가락에 전깃줄 파고들면 통 논바닥에 내려놓고 잠시 쉬고. 불 힘 빠져 연기가 오르면 다시 들어 휙휙 원을 그린다. 활활 화악 화악. 두어 시간 실컷 불놀이. 통의 반 숯불. 집에 갈 시간. 있는 힘 다해 돌린다. 가장 탄력 받는 회전의 찰나. 앞쪽 하늘 향해 45도쯤 줄에서 손을 놓는다. 포탄처럼 우웅 포물선. 통이 땅에 부딪치며 잿불이 사방 튄다. 


좀 자라서 쥐불놀이라 들었다. 이날 논두렁 쥐구멍에 불을 놓아 쥐를 잡는다고. 쥐와 전혀 상관 없다. 우리는 망우리 돌리러 가자고 했다. 어른은 없이 아이들끼리. 여자 애는 빼고 사내만. 가매기 삼거리 우리 동네는 옻공장 뒤 구씨 아저씨네 논에서 해마다 한 번 망우리를 돌렸다. 불장난 하면 밤에 오줌 싼다며 어른에게 혼났지만 망우리 돌리는 그날 밤만은 맘껏. 뱃속은 종일 오곡밥으로 모처럼 든든했다. 한겨울 달이 꽉 차길 기다린 건 오직 불놀이와 오곡밥 둘 때문이지 양력, 음력, 해가 가건 오건 관심 아니었다.


1968년 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 그후



중학교인가 고교 때인가 봉산의 불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1970년대.



불놀이야



1980년. 옥슨 80 (홍서범)


저녁 노을지고

달빛 흐를 때

작은 불꽃으로

 마음을 날려봐

저 들판 사이로 가며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 팔을 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꼬마 불꽃송이

꼬리를 물고

동그라미 그려

너의 꿈을 띄워

저 들판 사이로 가며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 팔을 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불놀이야


저 하늘로 떠난

불꽃을 보며

힘껏 소리치며

우리 소원 빌어봐

저 들판 사이로 가며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 팔을 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저 들판 사이로 가며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 팔을 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대보름 불놀이






불놀이



1919년. 주요한. 부분 발췌.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 냄새, 모랫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야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차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ㅡ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4월 초파일 대동강 불놀이




♤ 지금은



ㅡ쓰고 보니 봉산미 불놀이가 대보름날이었나? 어사무사


ㅡ정월 대보름날 밤 곳곳 민속놀이. 원주 매지리 회촌마을. 장작을 한 길 높이로 쌓고, 두어 길 집채만하게 타오르는 불놀이, 논에서 망우리 돌리고. 전국 산림청, 소방서 비상 발령.


ㅡ오늘에야 망우리 뜻 아네요.


어학사전


망우리


1.달맞이의 비표준어

2.달맞이 (달이 뜨는 것을 구경하거나 맞이하는 일)


망우리 돌리러 가자 했으니까 망우리 즉 불, 불 담은 통인 줄 잘못 알았어요. 망우리 하러 가자 또는 망우리 가자가 올바른 표현이겠네요. 사어급이라 이런 글에서나마 숨을 이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가리파재 기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