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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un 08. 2024

영악한 머릿니

27화. 응답하라 1968-곤충 편


회충이 사람 몸 안에 점령군이라면 이는 몸 밖의 그것이었다.


꼬딱지보다 작지만 어마한 수로 밀어붙였다. 남자보다 여자, 어른보다 아이, 여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한다. 겨울에 여자 아이는 머리카락이 길고 머리를 여름처럼 감지 않으며 내복을 껴입기 때문이었다. 쌀알 모양과 크기. 어두운 밤색. 앞쪽으로 작게 머리와 발, 뒤는 커다란 배. 피부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다. 머리, 몸에 각 몇 십 마리. 성체 한 마리가 수 백 알을 낳는다. 머리카락에 붙인다. 서캐라 부르며 좁쌀보다 작고 희며 윤 자르르. 머리칼 한 가닥에 일이십 개. 알 까면 머리통에 싸락눈 내린 듯 점으로 허옇다. 눈 녹으면 스물스물.


이는 손으로 머리카락 숲을 뒤져서 잡는다. 녀석들도 안다. 나무 기둥 벌리니 빛인가 진동인가 느끼고 피한. 빠르진 않지만 다시 가르마 타 번거로움. 엄마가 참빗 동원해 작정하고 훑는다. 틈이 안 보일 정도로 솔 가닥 촘촘하여 여자 머리 곱게 빗는 용도. 중앙을 축으로 양쪽으로 잘게 대나무 살. 네모나고 손아귀에 잡힌다. 서캐는 찰딱 들러붙어서 참빗 보강. 밀가루 포대 묶는 굵은 흰 실을 살 사이로 꿴다. 듬성듬성. 위에서 아래로 빼고 다시 위로 다시 아래로 다시 위로 예닐곱 번. 얼기설기 구불구불 물결 모양. 실을 빗의 척추 쪽으로 바짝 당긴다. 저인망 그물 완성. 빗을 두피에 대고 위로 천천히 머리칼을 훑는다. 전구역 샅샅이. 흰 뒷면을 위로 해서 방바닥에 깐 달력. 방석만한 그 종이 위에 턴다. 이는 도망치니 손톱 등으로 눌러 바로 죽인다. 서캐는 모아 버린다. 볕 따스한 겨울에 처마 아래면 족족 땅에다 털어 귀한 종이 아낀다.


박멸? 어림없다. 빼곡한 밀림에서 새알 마지막 하나까지 찾을 순 없다. 싹 다 밀어내지 않고선. 이 한 마리, 서캐 알 하나만 남아도 수 백 알 깐다 하지 않나. 하나 아니라 상당수 생존. 얼마간 머리 덜 가려울 뿐. 사람 몸에도 이. 겨울 내의는 솔기가 있다. 천을 잘라서 이은 부분. 양끝을 모아 시침질해서 불쑥 솟았다. 그 솔기 접힌 부분에 이 은신. 털은 없지만 솔기가 대신해 숨을 곳. 서캐는 보이지 않는다. 허리춤 솔기에 많이 모인다. 떨어지지 않도록 솔기가 받쳐주고 피부에 닿으니까. 몸 이는 손톱으로 쥐어잡는다. 네 살 터울  찔찔 여동생은 서캐가 특히 심했다. 아부지는 담배 보루 반만한 국방색 사각통을 흔들어 디디티라는 하얀 가루를 머리칼 골고루 뿌렸다. 

 

겨울 도롯 남향 처마 밑은 양지가 바르다. 어른 거지나 미친 년이나 놈 쭈그리고 앉는다. 허리 바지춤 뒤집는다.  놈부터 고른다. 빵빵한 쌀. 손톱 끝으로 쥔다. 어금니 위에 얹는다. 깨문다. 툭 소리와 함께 터진다. 삼킨다. 왼손 엄지 손톱 위에 이 한 마리 얹고 다른 엄지 손톱 등으로 누른다. 툭. 배 터지며 핏물이 튄다. 손톱이 빨갛다. 한참을 그런다. 그런 이들 동네마다 한 명이거나 없거나. 이 동네 저 동네 떠돈다. 나는 어른도 그런 이상한 사람도 아니어서 일삼아 입에 넣지 않는다. 한번 해보곤 끔찍해서. 그치만 손톱으로 툭 툭. 심심할 때 재미 쏠쏠.


회충은 상한선이 위장 아래, 하한똥구멍이다. 위산 강산이라 못 오르고, 똥 눌 때 구멍으로 꾸물꾸물 산 채 져나온다. 똥이 식으면 죽는다. 이는 머리에서 심지어 머리칼부터 아래로 내복 솔기가 있는 가랭이까지다. 허벅지 아래로는 보이지 않았다. 국민학교 때 회충으로 죽은 사람 사진을 학교에서 보여주었다. 창자를 꽉 막았더라. 이는 머리, 몸에 끓어도 불편을 모른다. 잠결에 어쩌다 가려우면 긁을 뿐. 든 사이 피로 배 채우는 거. 이로 인해 병이 생긴다 들었지만 그 병을 앓거나 죽은 이를 본 적 없다. 병이 옮았다 해도 이라는 증거가 없다. 감히 사람 머리 꼭대기에서 감히 사람 희롱하면서도 오래  비결이다.


1968년 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 그때는



머리에 알 낳고 자라서 허리로 옮겨 사는 줄 알았다.


비하 아니다. 거지, 정신 나간 이를 돌볼 돈이 나라에 없었다. 거리에 떠돌면 그지, 미친 년, 미친 놈이라 불렀다. 구걸하면 거지, 아님 미친 .


아이는 빤스 없이 내의 하나와 바지 하나, 여름은 나이롱 반바지 달랑 한 장으로 두어 해를 난다.




♤ 지금은?



짐작.


발에 안 보였던 건 털도 양말에 솔기도 없어서이리라. 게다가 동작, 중력 낙하와 악취 때문이리라. 겨드랑이유사. 그러고보면 녀석 조용하고 깔끔.


사실.


보일러 탱크가 이 보병 군단을 깔아뭉갰다. 난방하면서 따뜻한 물. 실내서 수시로 머리 감고 목욕하고. 전 국민이 이러니 이 발 붙일 곳 잃어. 이들끼리 하는 말. 더러운 세상. 멸종은 아니어서 뉴스에 뜬다. 아이 머리에서 이 발견했다고. 영광의 부활 호시탐탐. 오늘도 어디선가 게릴라전.


검색.


의외다. 머릿니는 인간에게 특화된 종이라서 사람 머리에만 산다고. 더구나 머릿니와 몸 이 다른 종이라고. 원래 같은 종이었으나 인류가 털이 없어지면서 머리에 고립되었다고. 허긴 이에게 사람 몸뚱이는 바다고 항해고, 머리는 갈라파고스 섬. 거리뿐 아니라 털 있고 없고 서식 환경이 완전 다르다.


그렇다면 몸 이는 내의가 살색 밝은 색이라 서캐가 안 보였던 거. 또는 화성섬유라 안 들러붙어 솔기에 떨어져 자란 거. 혹시 난생 아니라 태생 아닐까. 몸에 박힌 털 대신 들뜬 옷에서 살아남으려고 돌연변이? 한편 머릿니 서캐는 생존에 불리한데 왜 굳이 흰색? 머리털 새카만데? 게다가 윤 반질반질. 눈에 확 띄는데? 그만큼 접착에 자신만만? 허긴 서캐는 손톱으로 박박 긁어도 엥간해선 떨어지지 않는다. 몇 간신히 떼어도 머리 가득 수 천. 미물 하나도 들여다 보니 오묘하구나.




♤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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