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늘 듣기만 하던 군인 아저씨들. 군인 한 명이 급경사를 급히 기어오른다. 주르륵. 마사토. 모래가 성분이라 손이든 군화든 미끌어진다. 철조망까지 3미터여. 뒤로 무르더니 속도 붙여 오른다. 경계선에 철조망을 붙들려다 실패. 아래가 허술해 통과는 어렵지 않다. 그 지점을 노리고 달려든 거였다. 다시 뒤로 몇 걸음 더 무른다. 경사를 가속도로 오른다.
앗, 잡히면 죽는다.
냅다 산 위쪽으로 튄다. 아저씨 보폭은 내 두 배. 철조망 붙들고 통과하면 시간 문제. 오르막 산을 죽을 힘 다해 달리며 뒤돌아 본다. 30여 미터. 아저씨가 철조망 통과해 몸을 일으킨다.
죽었다.
심장 쿵쾅. 죽어라 뛴다. 오르막이고 뭐고 뛴다. 돌아보니 역시나 그가 나를 쫒는다. 쿵쾅 쿵쾅. 젓 먹던 힘에다 엄마 배 나오는 힘까지 다 합쳐서 뛴다.
ㅡㅡㅡ
가매기 삼거리를 에워싼 군부대 셋. 그중 하나인 이 부대는 답지 않게 폭이 좁고 길었다. 30센티 자 모양. 가로 200여, 세로 30여 미터. 남쪽 봉산동과 경계인 한쪽 끝은 뾰족하기까지. 앞산과 신작로 사이. 도로 편으로 안이 보이지 않게 브로꾸 담장, 산쪽은 어차피 내려다 보이니 철조망. 중앙에 정문. 가매기 아랫 삼거리 도로를 북측으로 접했다. 부대 앞쪽으로 초소 넷. 야간 경계. 부대 양 귀퉁이 하나씩, 정문과 양 귀퉁이 사이로 하나씩. 정문은 위병이 24시간 지켰다. 여러모로 이 부대는 별도 부대 아니고 수송부대 예하인 거 같다. 도로 건너로 훨씬 큰 수송부대. 작은 부대에 의무대, 군의관이 있다는 건 사고 때문에 알았다. 우리집은 부대 북쪽 끝 초소 맞은편. 도로 건너 수송부대 담벼락에 붙어있었다.
어른 자전거가 나를 치었다. 집 옆에 붙은 개울 다리 위에서 고개 돌려 아래쪽 보는데 가슴을 친 거. 난닝구 들어보니 가슴살 움푹 패어 흰 속살에 잔 돌기. 찢어진 게 아니라 살점을 포 뜨듯이 길게 뜬 거. 앞이 창끝처럼 날카로운 삼천리 자전거 표지. 앞 바퀴 덮개 위에 그것이 어린 내 가슴을 팠던 거. 부대 안으로 실려갔고 군의관이 마취 않고 열두 바늘 꿰멨다. 어린 애가 아플텐데 울지 않는다고. 큰일날 뻔 했다고. 일 미리만 더 들어갔으면 심장이라고.
ㅡㅡㅡ
앞산 계곡 경사면에 훈련장. 남자 아이들은 거기서 놀았다. 부대 뒷경와 비슷하다. 마사토 경사면 오 미터. 소나무에 밧줄을 걸어 늘어뜨렸다. 그걸 잡고 오르고 내리고. 부대 위로 산동네 아이들과 패싸움. 짱돌 던지며 쫒고 쫒기고. 학교 갔다 오면 12시경 저녁 해질 때까지 동네와 산을 들고뛰며 노는 게 일. 아이들은 군살 하나 없이 말랐다. 보이진 않으나 온몸은 근육으로 단련되었다.
거리가 좁히지 않는다. 산 오르막에서 어른이고 아이고 보폭 차이는 없다. 살려고 죽을 각오로 뛰는 나를 화 잔뜩 났지만 못 잡아도 그만인 그가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산꼭대기 넘어 부대서 안 보이면 탈영으로 벌 받을 수도.
군바리! 군바리! 군바리!
날마다 부대를 내려다 보고 군인들에게 소리쳤다. 막사 뒤에 쓰레기 버리러 온 군인은 그 외침을 들어야 했다. 달포. 부대에 소문 났을 거고 나를 잡기로 했던 거. 탈영의 위험 무릅쓰고 실전에 옮긴 거. 군바리가 군인을 낮추는 말이란 걸 알게 되었다. 배운 말을 써먹고 싶었을 뿐 별다른 뜻 없었다. 한두 번은 장난이겠지만 한 달을 날마다 듣고는 폭발한 거. 군바리. 그게 그리 화 돋우는 말인줄 그날 알았다. 이후 다시는 그러지 않았다.
● 고등학생
튀자!
자전거 타고 넷의 길을 막는다. 우택이, 봉구, 그 형 성구, 그리고 나. 낯이 익다. 또래. 가매기 삼거리 우리 동네 지나는 걸 봤다. 놈이 연못 옆 도로가에 모인 자기 동네 세력을 믿고 깝치는 거. 자전거를 밀어 넘어뜨렸다. 짝. 짝. 짝 짜작. 검정고무신 한짝 벗어 뺨을 거세게 후려쳤다.
ㅡㅡㅡ
소일연못. 봉산미 북쪽 능선 따라 신작로를 내었다. 높지 않은 능선 끝날 즈음에 마을. 그리고 연못. 도로 아래로 보를 쌓아 물 가두었다. 산 낮아 계곡이 따로 보이지 않으니 산물보다 빗물. 축구장 크기, 한 길 넘어 팔 접으면 꼬르륵 잠긴다. 연못 아래로 논. 보를 열면 봇물이 도랑 타고 흘러 벼를 키운다. 그 주변으로 마을.
한여름 두세 번 원정. 날마다 봉천내 바위 아래서 물놀이거나 태풍 다음날 꽉 들어차 이룬 강을 건너거나. 장마전 물 귀하면 소일 간다. 고인 물이라 달랐다. 특히 장수잠자리. 일반 잠자리 두 배 크다. 가슴과 꼬리를 잇는 부분에 굵고 선명한 하늘색 띠. 체구로 보나 용모로 보나 장수답다. 인근에선 여기 연못에서만 잡는다. 이름 모르지만 전용 풀이 있다. 빗자루의 빗보다 풍성한 풀잎과 자루보다 얇으나 튼튼한 대공. 풀을 두세 그루 합친다. 자루 끝 잡고 못 가에서 몸을 담근다. 풀 자루 쥔 팔과 머리는 내놓고. 장수잠자리 접붙어 한 쌍. 물 위로 삐죽 내민 죽은 나무 가지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미리 겨누고 있던 풀을 내리쳐 덮는다. 아래쪽 헤짚어 잡는다. 물 밖으로 나와 수컷은 놔준다. 암컷 앞 다리 한 쌍을 굵은 흰 실로 묶는다. 실을 늘어뜨리면 푸드득 날아오른다. 나는 힘 보태주려 망우리 돌리듯 머리 위로 원을 그린다. 주변을 날던 수컷이 암컷에게 달려들어 붙는다. 암컷에 눈이 먼 녀석은 사람이고 뭐고 사람 손이고 뭐고 신경 안 쓴다. 손가락으로 날개 잡아 암컷에서 떼어낸다. 몇 잡다 싫증나면 연못에 풍덩. 중앙까지 쉬엄쉬엄 헤엄. 몸 뒤집어 푸른 하늘. 엎어 개구리 헤엄, 칼 헤엄, 옆 헤엄. 응차, 솟구쳤다가 궁둥이 위로 머리 아래로 바닥에 손대 본다. 별거 없다. 몸 세워 팔 접고 수직 잠수. 발로 바닥을 꾹꾹 누른다. 애써 찾지만 역시나 없다. 우렁이는 신대리연못 가야 흔하다. 거긴 뻘 바닥, 여긴 모래. 거긴 원주 남쪽, 여긴 북쪽. 반대편이라 너무 멀어서 한 해 한 번.
ㅡㅡㅡ
소일연못은 소일마을 것. 다른 마을 아이들이 연못서 노는 걸 어른은 괘념치 않으나 아이들은 다르다. 엄연히 자기들 것.감히 가매기 삼거리 놈들이 와서 놀다니. 텃세. 해서 터줏대감이 있나 확인 하고 없으면 잠자리 잡고 목욕하고. 보이면 되돌아 온다. 이 날 못에 들어갈 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실컷 놀고 나와서 신작로 모퉁이.
아뿔싸.
여남은 명이 느티나무 아래 모였다. 길은 이거 하나. 돌아서자니 잘못한 거 없는데? 지나는데 부른다. 고등학생이다. 중학생도 있고 아이들 다수. 제일 큰 학생이 우리 넷에게, 여기 길 옆에 수박 따갔냐고, 도둑 잡고 있다고. 우린 건드린 적 없다. 밭이라 뻔히 보이고 누가 볼 지 모르는데 그걸 왜? 장수잠자리 잡으러 왔다, 수박은 관심 없다고 한다. 증거도 없으니까 잠자리도 잡지 말라고 오지 말라며 괜히 툭 친다. 다른 애들도 덩달아 낄낄대며 놀린다. 동물원 원숭이 된 느낌. 가란다.
더러운 기분. 터벅터벅 길을 잇는다. 자전거 타고 오는 한 녀석. 우리 가는 쪽을 이리 막고 저리 막고. 돌아보니 백여 미터. 우리 동네까지 2키로. 반 오르막, 나머지 내리막. 동네 산에서 다진 체력과 달리기. 해볼 만하다. 순간 판단 내리고 자전거째 녀석을 자빠뜨리고 고무신으로 낯짝 후려친 거.
ㅡㅡㅡ
튀자!
넷이 뛴다. 나무 아래서 멀리 지켜보던 떼거리. 상황을 눈치채고 쫒아오기 시작. 넘어진 녀석 쫄아서 합류해 달린다. 자전거는 문제 안 된다. 오르막에선 바퀴보다 발이 빠르다. 잡히면 매 맞는 거 뻔하기에 다 죽어라 뛴다. 고개 정상인데 셋 다 안 보여. 달리면서 추리. 잡혔나? 잡혀도 때린 건 나니까 좀 봐주지 않을까? 나만 살면? 나도 잡힐까? 돌아보니 멀다. 잡힌 거 같지는 않다. 그럼 어디로 간 거? 내리막 후다닥. 우리 동네. 먼저 문 활짝 열린 방앗간부터. 우택이 아부지에게 급히 상황을 알린다. 잡혔는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덧붙이고. 그다음 봉구 아부지에게. 두 분 바로 출동. 나도 함께.
한 명이 잡혔고 매 맞았다. 집에 돌아오니 둘은 신작로 옆 산으로 튀었고 안 잡혔다. 그날 잡힌 집은 뒤집어졌다. 아부지에게 혼났다고. 시균이는 때리기라도 했는데 왜 그러지도 못 하고 잡혔냐고. 미안했다. 육이오전쟁 후유증이 남았고,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들으며 자랐다. 웬만해선 애들 싸움에 어른 끼어들지 않는다. 그래도 미안했다.
● 할아버지
셋이 치악산 쪽 갔다가 되돌아 온다. 산길 양 옆으로 옥수수 밭. 옥수수가 영글어 팔뚝 같다. 어른 키 넘어 몇 걸음만 떨어져도 보이지 않는다. 올커니, 각자 옥수수를 딴다. 우두둑, 우두둑
누구냐!
화들짝. 주인이 밭 안에 있었던 거. 가려서 몰랐던 거. 셋은 튀자 말하고 자시고 없이 듣는 즉시 튄다. 뒤돌아 보니 다행히 노인. 생쥐 모냥 잽싼 아이를 잡을 수는 없다. 옥수수는 밭에 내던졌다. 따라오지 마시라고.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하여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 그때는
다 놀이였다. 놀 게 없으니 만들어서 논 거. 엄청 짖궃었던 거.
♤ 지금은
그때 그 군인 아저씨. 죄송합니다. 70대 후반. 살아계시겠지요. 잡혀드렸어야 했는데ㅎㅎㅎ
군부대는 터 모양대로 이 열로 길게 민가로 바뀌었다. 앞 열. 도로가 단층 상업. 뒷 열. 산에 축대 쌓고 빌라
소일연못 그대로. 소일마을 일대는 최근 개발 중 아파트 단지 들어서고 있다. 흥양리 이전 원주 최북단. 시내 가깝고 드넓은 평지인데도 개발은 가장 늦다. 가매기 삼거리와 중간 지점. 그러니까 경사 도로 정상에 화장장이 다른 외곽으로 옮기면서 그 자리에 동사무소 그리고 마침내 집단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