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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Jun 10. 2024

떡붕어 아저씨

29화. 응답하라 1968-놀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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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북쪽죽은 사람 때문에 무서웠다.

뿐만 아니라 산 사람 때문에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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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일고개는 오르막 신작로다. 남사면에서 동쪽으로 소롯길 셋을 내었다. 첫 번째 소롯길은 화장터가는 길이다. 고개 꼭대기에서 능선으로 백여 보. 작은 차 한 대는 지날 수 있다. 두 번째 소롯길은 공동묘지로 이어진다. 삼백여 보.  하단과 평지가 접하는 부분을 길로 삼았다. 우측으로 논. 더 가서 능선을 서 높이를 낮추고 고개를 넘는다. 좌우로 온산이 봉긋 솟은 산소로 가득하다. 지나면 번재 가는 길. 세 번째 소롯길은 영천사에 다다른다. 이백여 보. 가매기 삼거리가 가까워 가매기절이라고 더 알려졌다. 가만보면 셋 다 죽음과 연결된 길이다.


소일고개 정상에서 서쪽은 계곡이다. 위에서 좁고 아래로 넓다. 위쪽에 분뇨장. 공그리로 지은 거대한 사각 탱크. 상부 투입구, 계곡쪽으로 배출구를 여럿 내었다. 나오는 쪽을 보면 수력 발전 댐 같다. . 뒤칸이 눌린 타원형 볼탱크인 트럭이다. 소주병 기의 호스를 차 옆구리에 여러 겹 감아 걸었다. 돈 내겠다 똥 퍼달라 하면 들른다. 변소에 한 빠께쓰 물을 붓는다. 똥바가지로 휘휘 저어 찰지거나 떡진 똥묽게 한다. 진득한 곤죽. 나무, 잔가지 이런 건 건져내고 밑 닦을 때 쓴 신문 쪼가리는 냅두고.


호스를 똥물 안박고 손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붙든다. 차 시동을 걸면 모터 윙 동. 호스를 통과해 차 뒷쪽 탱크로 담긴다. 신문지나 뭐나 뭉치면 꿀렁 꿀렁. 미리 손 봐서 막히진 않아. 이쪽 저쪽 호스를 갖다 댄다. 바닥을 훅훅 빨아들이면 끝. 모터 끈다. 호스 걷어 차에 건다. 내내 구린내 진동. 앞 옆 뒷집, 행인 코 쥐어 막는다. 기를 냄새에 담궜다 꺼낸 듯 워낙 강력해 잠깐 참으면 금방 코 마비. 악취 실은 기가 무거운지 저멀리 퍼지진 않아. 분뇨장에  몰고 가서, 투입구 뚜껑을 열고, 흡입의 역순으로 쏟는다. 어마한 분뇨장이 가득 찰 때면 여름 폭우. 배출구 개방. 꿀럭 꿀럭. 비 올 때만 물이 차는 계곡을 흐른다. 삼백여 미터. 똥 개울이 강물 꽉 찬 봉천내에 합류. 한편, 소일고개 서쪽은 밤나무 밭이다. 산을 밤나무로 일구었다. 숲처럼 높이 빼곡. 철조망 둘러 접근 금지. 동쪽의 논 맞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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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어쩌다 가매기 삼거리를 벗어난다. 그건 원정이고 여름이었다. 사방 100여 미터 동네  놀기 충분했고, 다른 동네면 텃세를 부렸다. 붐비는 시내라면 모르지만 시의 외곽이라 외부인을 금방 안다. 특히 북쪽은 가깝고 놀거리가 있었지만 꺼렸다. 사람 태우는 냄새가 진동하고, 귀신 나오는 공동묘지, 이상한 거 투성이인 절, 그리고 분뇨장. 거기 빠져서 죽었다, 시체를 버렸다는 말이 돌았다. 그럴 법한 것이 몇 길 깊이로 운동장만한데다 늪 같아서 잠기면 헤어나지 못 한다.


처음엔 북쪽 길을 꽤 탔었다. 공동묘지 길. 고개를 거의 오르면 우측으로 못 하나. 내 발 닿은 한 유일하다. 지하에서 배어난데다가  그늘져 엄청 차다. 두 칸 방 면적이라 작지만 깊이는 한 길. 거기에 담근다. 더위 . 좁아서 목욕 즉 수영은 못 한다.  아래 논에 메뚜기 잡으러 가기도. 앞산 쪽 논과 달리 주인 할배가 잡지 말라고. 그  듣고는  논길을 끊었다. 한번은 묘지 길 좌측. 화장터 아래쪽으로 아카시나무 꽃이 유난히 실하길래 송이 따서 먹으려고 나뭇가지를 분질렀다. 헌데 잎에 뽀얀 먼지 두텁다. 흔들어도 털리지 않아. 긁으면 그 부위만 깎인다. 이게 뭐지? 뜨아악, 위 화장터에서 사람 뼛가루가 날린 거구나. 다 보기도 싫다. 악연으로 결국 그 일대는 못 하나 보고 어쩌다 큰맘 먹고 가게 되었다.



ㅡㅡㅡ



어느날 못에도 메뚜기 주인처럼 임자가 나타났다. 못 바로 위 집이 있지만 몆 번 갔어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덩치 커다란 남자가 집에서 어흠 기척을 내며 나온다. 얼른 못에서 빠져나온다. 혼날까봐 긴장. 헌데 무표정에 아무말 않고 저벅저벅 못으로 다가간다. 물 안으로 걸어놓은 망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손으로 잡아 꺼낸다. 입 떡 떡 벌리는 떡붕어. 미꾸라지는 바닥에 살고 미끄럽다. 꺽지는  에 숨고 이동할 때 팍팍 꺾는다. 모래 바닥에 사는 모래무치. 급하면 모래에 묻고. 뚜구리는 뚜구구 뚜구구, 빠가사리 빠가각 빠가각 이를 간다. 겁을 주려는 건지 먹은 건지. 붕어는 녀석들과 확연히 다르다. 크게 자라서 50센티,  1센티쯤 자라 수명 수 십 년. 물속의 임금님. 답게 왕의 띠를 선명하게  양측으로 둘렀다.  비도 피할 뿐 숨는 일 없다. 오히려 역으로 거슬러 차고 오르는 결단과 추진력. 자기 천하를 가마 타듯 붕 떠서 날마다 순시하는 여유와 부지런까지. 인간만날 때 또한 다르다. 따위 좀스러운 잔챙이 물면 대개 낚시 찌가 물속으로 푹 꺼지나, 붕어는 반기듯이 붕 물 위로 뜬다. 잡혀 뭍에 올라도 호들갑 없다. 입 떡떡 벌려 자신의 신분을 떳떳히 밝힌다. 적과 죽음 앞에서도 위엄을 놓지 않는다. 아저씨는 못에서 잡은 건지 떡붕어가 손바닥만 하여 제법 크다. 푸드득 빠져 나가지 못 하게 몸통을 바짝 움켜쥔다. 들고온 고추장에 대가리를 찍어 듬뿍 묻힌다. 그리곤 딱 한 마디. 이거 보란다. 떡붕어 따라서 아가리 떡 벌리고 대가리를 넣는다.


우그적 우그적.


으아악, 붕어를 생으로 먹다니. 잔인. 게다가 대가리는 버리는 건데. 몸통 우그적 우그적. 으아악, 비늘을 먹다니. 붕어 비늘이 얼마나 두터운데. 갑옷이구만. 게다가 비린내. 뼈까지 우그적 우그적. 으아악, 붕어 뼈가 얼마나 억센데. 매운탕 물에 팔팔 끓여도 뼈는 건져내고 살만 먹는데. 연실 우그적 우그적. 입 한 번 안 떼고 씹어서 싹 다 먹어치운다. 꼬리까지 삼킨다. 붕어빵 씹듯이 금새. 살려고 버둥대어 입가, 얼굴에 튄 시뻘건 고추장 피떡. 가려워 손등으로 쓰윽 훔쳐서 날선 핏자국까지. 자다 깨 부스스 산발 머리에 오랜 농사로 흙빛 면상. 귀신? 백 보면 고개 넘자마자 공동묘지. 헌데 밝은 대낮. 더구나 땀 흘리는 귀신은 없다. 미친 사람? 그럴 지도. 뭐든 입에 가져간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면 뱉는다. 자랑하는 거? 휘발류 김씨처럼? 그렇군. 북서쪽 새동네 사는 김씨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 휘발류를 컵으로 마시고 죽었다가 비눗물 먹고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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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 못도 끝이었다. 화장터, 공동묘지, 절간. 분뇨장 넷 다 귀신이 어른거려서 원래 무서웠다. 헌데 메뚜기가 제 것이라는 할배, 뼈 묻은 아카시아에다가, 이제는 생붕어 씹어 먹는 아저씨까지. 그 일대에 마지막 남은 못에 대한 희망마저 무참히 짓밟혔다. 가매기 삼거리를 벗어나 북쪽더욱 꺼리게 되었다. 유일한 북행은 소일연못에 장수잠자리 잡으러 가는 것이었지만 이 길마저 대탈주 사건으로 막히고 말았으니. 궁금하면 편 '잡히면 죽는다' 보시라.


1968년 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하여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 지금은



ㅡ신작로



1~2차선이 6차선 대로로 확장.

경사는 바뀌지 않아서 고개 그대로.



ㅡ동쪽



아무래도 붕어 아저씨는 자랑 아니라 겁 주려고 한 거 같다. 자기 못에 오지 말라고. 메뚜기 잡지 말라는 논 주인처럼. 그렇다면 즉효. 나는 아저씨가 무서워서 다시는 가지 못 했다. 여즉 그 장면이 생생할 정도로 충격 먹었으니까.


진작 못은 메워 밭이 되었고 집은 붕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0여 년 전. 논에 임대아파트 단지를 지었다.


코로나 때 화장터는 시 외곽 다른 곳으로 이전. 작년 그 자리에 태장1동 행정복지센타 새 건물이 번듯하게 들어섰다.


공동묘지는 천연의 공원묘지가 되었다.


영천사는 고려시대부터 그랬듯이 굳건하다.



ㅡ서쪽



분뇨장은 옥외 변소가 실내 수세식으로 바뀌면서 철거되었다.


1990년대 밤나무 밭은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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