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1) 잎이 지지 않는 나무
129화. 대한민국 출산혁명
낙엽이 지지 않는 나무가 있었어요. 가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뻗었어요. 무럭무럭 자랐어요. 누가 1등 하나 의쌰의쌰. 열심히 가지를 쳤어요. 빨리빨리 으쌰으쌰. 쉴 새 없이 새 잎을 키웠어요. 사시사철 으쌰으쌰. 여름은 물론 동지 섣달에도 푸르렀어요. 하늘 찌를 듯 나무는 거대하게 컸어요. 가지는 참빗 살처럼 빈틈이 없었구요. 잎은 엇갈릴 새 없이 층을 이루었지요. 훌륭했어요. 늦게 씨 내린 숲에서 다른 나무들 제끼고 우뚝 솟았으니까요. 숲 어디서나 보였고, 신기하고 부러워했어요. 키 작은 나무들은 따라하려 했어요. 이웃에 엄청 큰 나무 하나는 미워했어요. 자기보다 더 커서 가릴 거 같았거든요. 헌데 나무 모양이 이상했어요. 역삼각형.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슬쩍 밀면 쓰러질 거 같았어요.
어느 해부턴가 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어요. 변함없이 해는 떴지만 시름시름 앓았어요. 척척박사. 바람은 온세상 다 돌아다녔어요. 모르는 게 없어서 뭘 물어도 척척 알려쥤어요. 박사에게 물었어요. 자기도 이런 병 처음 본다고. 다른 나무들도 아프긴한데 이렇게 심하지는 않다고 했어요. 조상대대로 듣지도 전해진 바도 없답니다. 굳이 묻지 않아도 뻔히 알 일이지만, 혹시 신통한 수를 바랐던 거지요. 아랫 잎이 햇빛을 받을 수 없게 된 거예요. 먼저 난 윗 잎이 나중 잎을 가렸던 거지요. 그 아래로 다시 어린 잎의 빛을 막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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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정한 원칙을 지켜야 했어요. 숲에서 그 원칙으로 성공했기에 바꾸지 않았어요. 낙엽이 지지 않기로 했잖아요. 잎을 떨구지 못 했어요. 거꾸로 자라는 가지라서 새 가지를 꼭대기로 올릴 수가 없었어요. 원칙을 대수술 한 번하면 다 나을 병이었어요. 위 구석에 늙은 이파리 하나가 깊이 파고들어서 수술법을 찾았고 알렸어요. 다들 대수술은 안 된다고 했어요. 아픈 게 싫었거든요. 진통제도 준비했는데 말이죠. 핑계는 있었어요. 척척박사도 모르는 걸 너 따위 이파리 하나가 어떻게 아냐고. 든든한 우리 나무가 병도 고쳐줄 거야. 나무가 정한 원칙대로 성공했으니까 낫게 해줄 거야. 설마 죽기야 하겠어. 정작 나무는 듣지도 않는 약을 찔끔찔끔 먹으며 미루었어요. 약으로는 안 된다는 건 알았지만 대수술 하자 하면 반대할 게 뻔했거든요. 가지, 잎, 나무 모두가 수술법을 모르기도 했지만요.
가엽게도 어린 아래 잎부터 말라 죽었어요. 제일 아래로 새 가지가 돋았지만 어쩌다 듬성. 새 잎이 너무 귀해서 햇빛 왕창 받으려고 띄엄띄엄. 하지만 위가 가려서 소용 없었어요. 그러는 사이 윗잎들도 나이가 많이 들었어요. 빛을 받아도 나무의 밥인 녹말을 쓰기만 할 뿐 만들지 못 했어요. 중간 잎들은 자기 살 거만 간신히 만들거나 그마저 포기했어요. 잎이 타들어 가고 새순이 희귀한 나무는 점차 땅속 물을 빨아 올릴 힘도 희망도 잃었어요. 꽃도 피지 않게 되었어요. 새도 벌도 찾지 않았지요. 뿌리마저 썩어들어 갔어요.
어느날 밤. 꼬마 태풍 하나가 숲을 지나갔어요. 역삼각형. 나무는 위가 무거운데다 종잇장처럼 힘을 잃었어요. 가지고 잎이고 빈 데라곤 없어서 바람과 빗물을 빗기지 못 했어요. 층층이 겹겹이 온몸으로 받아야 했어요. 나무는 무게를 이기지 못 해 뿌리째 뽑혔고 쓰러졌어요. 그날 나무는 처음 낙엽이 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