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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Sep 24. 2024

장남의 숙명 2-부양의 의무

40화. 응답하라 1968


아부지, 엄마는 3남 3녀 중 장남인 내게 사랑을 몰아주었다. 나 하나 낳기 위해 위로 셋  딸을 보았다. 혼자는 외롭다며 아들 하나 더 보려다가 딸 하나 더. 그다음 아들. 막내 아들은 실수였다고. 둘째 딸은 병약해 일찍 죽었다고. 여섯을 키우려고 일 년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관심과 중심은 온통 나였다. 나중에 크면 돈 벌어서 돈 펑펑 쓰게 해드려야지. 엄마, 아부지 고생 시키지 말아야지. 수없이 되노이니 자연 내 꿈이 되었다.




ㅡ아부지ㅡ




1984년 7월 19일. 군 전역. 가을 학기 복학 및 개강 9월까지 한 달 22일 시간 있었다. 양옥집을 지어야 했다.




최전방 GOP에서 전보를 받는다. 풍으로 쓰러지셨고 위중하다고. 휴가 신청했다. 군은 허락하지 않는다. 이 정도는 당연히 휴가다. 보안대는 잘됐다, 애 태우라는 듯 나를 엿 먹인 거.   살아서 전역하기로 마음 다잡고 군 복무 중. 이 때문에 소총 갈기고 수류탄 터뜨릴 수 없는 일. 입대 1년 되어서야 정기 휴가 15일. 부대 출발. 꼬박 하루  걸려 집 도착. 아부지는 자리에 누워서 일어나질 못 했다. 지켜볼 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시 1년 후 두 번째 휴가 15일. 준비한 게 있다. 덫으로 오소리 포획. 누런 성견만 했다. 동기 구 상병이 쇠 덫을 놓았고 발이 걸렸다. 쇠 줄로 연결해 끝에 쇠막대를 땅 속 깊숙히 박아서 탈출하지 못 했다. 취사병에게 국 끓이라 했으나 고기 아닌 짐승을 조리한 적 없다. 내가 나선다. 도루칼 면도날. 안면 털 면도용. 하나를 오른 손가락에 날 세워 쥔다. 왼손으로 머리를 잡아 올린다. 인중부터 가른다. 입은 쉽다. 중앙을 가른다. 좌로 가죽을 들어 올린다. 두개골과 가죽 사이를 날로 찢는다. 우도 똑같이. 몸통은 어렵다. 살과 가죽 사이에 기름 덩어리가 두텁다. 머리와 다르다. 면도날 한 다스 버려가며 시간 여. 옷 벗기듯 껍질을 다 벗긴다. 배를 가른다. 손을 배로 집어넣어 간 부위를 통째로 신중하게 떼어낸다. 푸른 색 주머니. 이거다. 이걸 바라서 고참인 내가 직접  나선 거. 취사병이 경험 없는 건 문제 아니다. 까라면 까는 게 군대. 식칼로 껍질 까든, 대갈통을 바수든, 복날 개처럼 털 그스르고 껍찔째 삶든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쓸개가 필요했다. 풍에 곰 쓸개가 효과 있다고 휴가 때 들었다.



아무리 최전방이라도 곰은 없다. 오소리도 처음 본다. 구 상병은 구미 촌에서 농사 짓다 입대. 오소리라 하니까 그런 가 보다지 너구리인지 들개인지 내가 어찌 아나. 사슴, 멧돼지는 흔하다. 허나 이도 보기 어렵다. 오소리 잡은 개활지. 광활하다. 미확인 지뢰지대고 관목 우거져 못 들어간다. 잊을 만하면 쾅. 지뢰 터지는 소리. 멧돼지가 지뢰 밟았군. 다른 개활지. 수색 나갔다 사슴 가족 발견. 뒤쫓아 잡으려고 숲에 뛰어든 사냥꾼. 꿩 대신 닭 아니라 사슴 대신 물고기. 것도 명태만한 김일성고기 네 마리. 삼팔선은 북과 남 각각 철책의 중앙이다. 선 그은 건 아니다. 양 철책 사이가 DMZ 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다. 남측 철책 뒤로 초소. 그 뒤로 첩첩산중. 수 키로 계곡 물 따라 구불구불, 산 넘고 또 넘어 흙 도로를 육공트럭이 달리면 엄중한 초소. 거기까지가 민간인 통제 구역. 그 밖으로 논, 그다음이 천도리. 식당, 다방, 여인숙. 12사단 외출, 외박 군인을 위한 시설 일색이다. 나는 초소를 홀로 세 번 오갔다. 정기휴가 때. 그전에 한 번. 집단 구타로 부상 당해 의무차에 실려서. 훈련 때 오간 적 여러번. 100키로 행군, 한여름 뙤약볕 10키로 구보, 전투 훈련, 유격 훈련. 1년 GOP 철책 경계 근무, 1년 훼바 훈련이라 횟수를 일일이 기억 못 한다. 철책은 산봉우리서 소대 단위, 훼바는 산 사이 터 닦아 대대 단위로 생활한다. 흔히 이걸 통털어 최전방이라 한다.




ㅡㅡㅡ




도시에서 살다 서울서 대학 다니다 느닷없이 최전방에 납치된 나. 썰은 소, 돼지, 닭 굽고 끓이고 볶은 걸 젓가락으로 집어먹은 게 다다. 동물 사체에 칼 대본 일 없다. 굳이 꼽자면 국민학교인가 중학교인가 과학 실험실. 개구리 해부. 것도 지켜보았지 내가 메스 칼 든 거 아니다. 물고기 배야 수없이 따봤지만 차원이 다르다. 어릴적 아부지가 닭 잡는 걸 보았다. 대가리 잡고 들면 체중에 목 길게 늘어진다. 거기까지다. 그다음 본 것은 피 따르는 장면. 아부지는 어린 내게 목 따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복날 새다리 아래서 동네 어른들은 개를 잡았다. 몽둥이로 머리 패 죽인 다음 털 끄스르고 통째 가마솥에 삶는다. 나는 성인 되도록 커다란 동물 사체를 만져본 적 없다. 더구나 껍질을 시간여 벗기고, 내장 꺼내어 쓸개 떼어내고. 아부지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딸 셋 낳은 후 첫 아들. 나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공부 탑 운동 탑, 싸움마저 잘했다. 고 1. 동네 강씨 아저씨가 아부지를 달했다. 욕설, 삿대질. 아부지는 법 없이도  분. 남과 다투는 걸 본 적 없다. 씨바알, 왜 지랄이야. 고함치며 다가서자 강씨 아저씨 놀라 뒤로 물러선다. 그날 나는 동네에서 성인식을 치루었다. 고2 탑2로 고3. 입시 준비 안 했다. 성대 야간 대학 진학. 천당에서 처음 지옥. 1년 후 입시 도전. 고대. 제자리 찾나 싶더니 군 강제 징집.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아부지는 내게 아무말 않으셨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부지는 나를 사랑했고 믿었다. 그런 아부지가 중병으로 쓰러졌는데 장남인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를 위해, 아내를 위해  자식을 위해,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아부지.



오소리 쓸개를 몰래 떼어낸다. 경험 많은 선임하사는 돈 가치 크다는 걸 알 지도. 뺏긴다. 나머지는 취사병 둘이 알아서 조리하라 지시. 내가 근무하는 소초 막사 내 상황실. 쓸개 끝을 쥐어 담즙이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 조심. 실로 끝을 단단히 동여맨다. 딸딸이 전화기가 놓인 탁자. 허리 굽혀 그 아래 왼쪽 구석 모서리에 매단다.



아래 안쪽 구석. 오소리 쓸개.




여기면 아무도 모르고 누구고 건드릴 일 없다. 매일 들여다 본다. 서서히 마른다. 쭈그러진다. 단단하다. 써서 그런가 쓸개는 그늘에 말려도 썩지 않는다. 허공이라 그런가 벌레도 먹지 않는다. 그리 몇 달 쓸개와 나는 정기 휴가를 기다렸다. 집. 바짝 말라 비틀어져 돌 같은 쓸개를 약간의 물에 개어 녹인다. 자리에서 아부지를 일으켜 앉힌다. 숟가락에 쓸개 즙을 담아 아부지 입에 넣는다. 쓸개가 풍에 효과 있다는 걸 아는 아부지. 꿀꺽 삼킨다. 군 복무 중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오소리는 쓸개로 인간에게, 탕으로 저 태어나 자란 나라에 헌신했다. 소대원 40여 명은 그날 아침 군 메뉴 대신 식판 오른쪽 국 칸에 오소리 탕이 담겼다. 잘게 썬 고기와 함께. 구 병장은 그 덫을 계속 놓았지만 더 이상 동물이 잡히지는 않았다. 멧돼지, 사슴은 사람을 멀리 했다. 밤새 오소리 곁으로 한 마리 더 보였단다. 오소리는 겁이 없다. 근처까지 왔다가 잡힌 암컷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다시는 오소리가 보이지 않았다.




ㅡ엄마ㅡ




군 전역. 아부지가 서서 걸었다. 오소리가 그 억센 힘을 나누어 주었는가. 아부지는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 그 사이 혼자 힘으로 앉았고, 일어섰다. 몸을 가누게 되자 걸음을 떼었다. 방 밖으로 나서서 거실을 걸었다. 용기 내어 문을 나선다. 왼쪽 다리 끌다시피. 왼쪽 팔과 손은 마비되었다. 돌부리에도 쓰러진다. 왼쪽으로 자빠지체중 실어 패대기. 큰 부상. 지팡이에 의지해 앞산까지 오르신다. 일 년여. 더 이상 진척은 없었다. 변소가 문제였다. 40여 미터. 푸세식. 겨울에 가는 길 미끄럽다. 넘어지면 큰 부상. 변소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는데 한쪽 다리 힘 없다. 목욕도 문제. 휴가 나오면 부엌 연탄 불에 물을 데운다. 방에 커다란 통에 담는다. 그 안에 쪼그리고 앉혀 씻긴다. 전역 날 아부지 목욕부터. 엄마는 매일 새벽에 시장 나가서 밤 늦게 돌아온다. 누나 둘 시집 갔고 여동생은 외지 가 있고. 남동생 군대, 막내 동생 학생. 어리다. 나 가을에 복학하면 자식이 여섯이나 되어도 아부지 하나 건사할 사람이 없다.



구옥. 구씨에게 산 기와집. 일제시대 지었으리라. 그 집에서 나 나와 자랐다. 한때 보건약국. 세 주었다. 다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수리하면? 연탄을 보일러로 바꾼다. 욕실은 어디에? 변소를 집안에 들이고 수세식 변기? 방과 부엌은 반 길. 방문턱은? 여기저기 턱 투성이. 구옥에 양옥 시설은  공사. 수리 아니라 완전 개조. 후에도 중풍 환자에겐 위험. 엄마에게 넌지시. 슬라브 양옥 짓자. 옆에 땅 있잖아. 돈이 어딨어. 개조해도 안 돼. 돈은 돈대로 들어. 집 짓자. 안 돼. 돈 없어. 너 복학하면 등록금 대야 해. 조르기 며칠. 요지부동. 엄마 말 다 맞다. 헌데 이러다 큰 사고 나면? 다리, 허리라도 부러지면? 중풍 3년. 허약하다. 부상은 명과 직결. 나는 뭐 한 거? 그러지 않아도 죄인인데. 다시 조른다. 이번엔 압박. 안 돼. 더 압박. 안 돼. 엄마 말 맞다. 그럼 아부지는? 미치겠다. 대학 관둘 수도 없고. 애걸복걸. 안 돼.



최후의 수단. 방 앞쪽으로 공간. 약국 매장이었다. 외부 문짝. 유리 두 장, 아래로 합판, 틀은 나무. 밑으로 도르래 둘. 레일에 문짝을 얹으면 드르륵 여닫이. 그런 문짝이  여덟 가량. 집 짓자, 안 돼. 벌떡 일어선다. 방문 나선다. 공간 지난다. 문 밖으로 나선다. 돌아선다. 왼쪽 끝 문짝의 윗 유리를 주먹으로 치고 발로 아래를 걷어찬다. 와장창 쿵. 밑 유리도 와장창 쿵. 손에서 피가 흐른다. 두 번째 문짝. 와장창 쿵 와장창 쿵. 엄마 놀라 뛰어 나온다. 시균아, 왜 그래. 왜 그래. 제발 이러지 마. 팔을 붙들고 말린다. 엄마가 무슨 힘이 있나. 세 번째 와장창 쿵 와장창 쿵. 문짝 유리죄다 박살낸다. 소란에 동네 사람들 구경. 엄마 망연자실.



어거지로 양옥집 짓기로. 알아봤냐고 돈 얼마나 드냐고. 오늘부터 알아볼 거라고. 엄마가 아는 사람 있다고. 믿을 만하다고. 땅 보여주고 설계 도면. 남향. 아부지, 엄마 쓰실 안방, 아부지가 주로 지낼 거실은 빛이 들어야 했다. 겨울 따듯하고 여름 시원. 건자재 따라 건축비 차이 크다고. 건재상 들러 자재 일일이 골라 견적. 적절히 깎고 계약서. 첫 삽 뜨고 철근 콘크리트로 지하 낀 단층. 벽체 붉은 벽돌 조적, 실내, 천장 목재 마감. 바닥 모노륨 무늬 고르고. 외벽 그리고 철문. 가장 신경 쓴 건 역시 욕실이다. 이 건축의 목적이 아부지 좌식 변기, 온수 목욕이니까. 머리 쓰고 말고도 없다. 양옥집은 그건 기본이다. 완공 다음날 첫 목욕. 8월 말 한여름이라 따뜻한 물은 필요 없었다. 선 채로 씻겨 드렸다. 전신 비누칠 하고 쓱쓱 때 밀고. 샤워기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 쏴아아아. 아부지도 나도 함박 웃었다. 9월 복학.




ㅡㅡㅡ




아부지는 그집에서 5년 사셨다. 서울 여의도 쌍둥이빌딩 11층. 나 신입사원 2년차. 퇴근 무렵 따르릉 전화. 위독하단다. 슬라브집 안방. 동 틀 무렵. 온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부지는 평안히 숨을 거두었다. 하늘이 무너졌다. 그날 나는 아부지를 잃었다. 정 박힌 집 떠나던 날. 관 뒤따르며 울부짖었다.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관 내리는 순간. 관 부둥켜안고 피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다시는 못 부를 말. 산이 떠나도록 외쳤다. 나는 죄인이 되었다. 아부지에게 손주를 안겨 드리지 못 했다. 엄마에게도 큰 죄를 지었다. 엄마는 나와 남동생 대학을 위해 아부지를 희생하였다. 별다른 치료법이 없기도 거니와.

 


동생은 영리했다. 나 군에 간 사이 애교. 엄마를 달랬고 마음을 얻었다. 마지막 휴가 왔을 때 예비고사 점수를 보았다. 진학, 대학입시. 두 권을 동아서관에서 산다. 점수별 대학 배치도. 인서울 대학 가고 싶다고. 일주일 집중 정밀 분석. 점수가 낮다. 수도권으로 확대. 아주대학교가 사정권. 수원이면 괜찮다고. 1지망 국문과 합격권. 취업은 어렵지만. 2지망 영문과. 간당간당이나 취업 잘 돼. 3지망까지는 모르겠다. 빈 칸으로 남긴다.  아주대학교. 원서 제출 직전에 동생은 법학과를 적는다. 거긴 왜 쓰냐. 되지도 않을 거. 최고 높아 턱도 없다. 휴가 복귀. 그리고 전역. 합격자 발표일. 아주대 운동장. 합격자 명단을 훑는다. 동생 이름 석 . 위에서 아래로, 옆  열 위에서 아래로. 1지망 없다. 2지망 없다. 이를 어쩌나. 망연자실 천근만근. 속으로, 재수해야지 어쩌겠나. 동생이 3지망 보잔다. 거긴 왜?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잠시 후 그쪽에서 함성. 야아아아, 합격이다, 합격. 동생 목소리. 명단 아래로 훑는다. 없는데? 없는데? 없어. 동생이 저 아래 맨 끝 가리킨다. 있다. 둘이 얼싸안고 덩실덩실. 세상에, 법학과라니. 진학 지도표로 두 단계 위.  점수로 뽑을 수 있는 최대 성과. 동생은 처음부터 법학과 쓰자고 했다. 이번은 동생 입대. 전역 후 법원 공무원 시험 준비. 졸업 때 합격. 평생 공무원. 원주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 수원이 제 2의 고향 되었다. 동생은 지금도 고마워한다. 내가 뭘? 잘못 찍었는데. 아니야. 나를 아주대학교로 이끈 건 형이야. 휴가 나와서 쉬지도 못 하고 방에서 일주일 꼼짝도 안 했잖아. 아부지, 엄마 바람대로 형제는 외롭지 않았다. 우애를 키웠고 다졌다.



허나 엄마는 동생 학비, 생활비, 용돈을 대야 했다. 병원이라곤 모르는 두 분이었지만 병원이 큰돈 든다는 건 상식. 아부지 쓰러진 날 사람들은 풍 맞은 거라 했다. 우황청심원 구해다 아부지에게 먹였다. 소갈증은 당뇨였다. 처음 듣는 병. 부자 병이라 했다. 아프지는 않다. 블편할 뿐. 잘 드셔야 했다. 약 없이 아부지는 그리 2년. 나 전역해 돌아왔을 때 눈치챘다. 이제야 병원으로 모시는 건 때가 늦었다. 말은 못 꺼냈지만 엄마에게 원망의 마음이 있었다. 바로 병원 가지. 죄를 조금이나마 털어야 했다. 해서 양옥집 짓자고 문짝 유리를 다 깬 거. 엄마는 집 지을 돈을 빚을 내었고 혼자 장사해서 다 갚았다. 시장 가게 처마 밑으로 자리를 빌렸다. 한겨울 냉기, 한여름 열기를 온몸으로 견뎠다. 1년 365일 단 하루도 쉰 적 없다. 명절도. 새벽 해 뜨기 전에 나가 밤에 가장 늦게 장사를 끝냈다. 열무를 도매로 사서 다듬어 단을 나누어 쌓는다. 종일 쭈그리고 앉아 감자 깐다. 물 담은 비닐봉지에 서너 알씩 넣는다. 오이지. 집에 오이가 트럭으로 온다. 사람 둘은 들어갈 붉은 통에 오이 쏟고 물 붓고 소금 뿌리고. 트럭 한 대가 통 대여섯에 다 들어간다. 못 다 판 오이지 썩는다. 내 몫. 바께쓰에 담아 퍼다 버린다. 제철엔 대파를 열무처럼. 처마 밑이라 두 칸 길다란 노점. 시장서 제일 가는 목자리 중 하나. 남들은 다라 하나 놓는 걸 이십여 개 양으로 판 벌렸다. 월세 약간.  장사 잘 될수록 엄마의 등은 굽었고 손은 굳은 살로 두터워졌다. 전에 시장서 번듯한 가게 없이 지저분하게 쟝사하는 엄마가 창피했다. 틈 나면 가서 팔다 남은 거 구루마에 싣고 집에 왔지만 친구 볼까 고개 숙여 피했다. 군대 가서야 엄마의 고달픔을 반에 반에 반이나마 겪고나서야 그 고마움에 눈물 흘린다. 양옥집 짓고 나는 마음의 짐을 얼마간 덜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부지가, 내가, 동생이 벌인 일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엄마는 집 지을 돈 빚을 내었고 그 빚을 혼자 다 갚았다.



이뿐 아니다. 나 대학 3년 학비, 생활비, 용돈까지 꼬박 받았다. 2학년 2학기부터 졸업 때까지 5개 학기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외에도 교수님에게 찾아가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반액 장학금 두 번 받았다. 엄마에겐 숨겼다. 이전처럼 학비, 생활비, 용돈을 다 받았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삼성. 연수 첫날 밤 새벽 탈출. 1년 또 생활비, 용돈 손 벌린다. LG 입사. 첫 월급. 아부지, 엄마 내복 두 벌 선물. 이후 한 푼도 드리지 않았다. LG 카드 회사 첫해다. 그룹사 전직원 강제 발급. 신용카드가 외상 카드란 걸 인지 못 한다. 술 값으로 카드 빚. 월급으로 감당 못 해 엄마에게 전화. 엄마, 한 번만 더 도와줘.  엄마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갚자마자 카드 뽀개버린다. 여즉 체크카드 외에는 안 쓴다. 어쩌다 지인 실적 때문에 신용카드 받아도 1년쯤 쓰는 척 어김없이 가위로 잘라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엄마 손은 원래 거칠었다. 자식 여섯을 키워냈다. 남편마저 병석. 첫 아들 군대 간 사이 둘째 아들 대학 보내고. 사람의 것에서 변형된다. 손등은 두꺼비, 바닥 모래, 마디마디 둔덕 불쑥. 내게 계획은 있었다. 나중에 큰돈 벌어서 돈 걱정 없이 살 게, 돈 펑펑 쓰게 해드린다는. 헌데 아부지가 훌쩍 가신 거. 죽음이 이리 빠를 줄 몰랐다. 이제 엄마 혼자. 아부지는 엄마를 참 사랑하셨고 여자에게 사랑은 거친 삶을 헤쳐나가는 커다란 원군이었다. 독거. 겁 더럭. 이러다 엄마마저 가시면? 엄마는 아부지보다 두 살 위. 내년이면 환갑. 테레비 뉴스. 혼자 살던 노인이 죽었다. 며칠 지나 발견. 구더기가 끓었다. 또 뉴스. 이번엔 백골로 발견. 그럼 나는? 지탄 받아 마땅하다. 대죄인. 효도는커녕 불효도 이런 불효는 없다. 내가 서울서 성공하면 뭐 하나. 목표. 엘지 사장 되면 뭐 하나. 난 흉악 무도한 죄인인 것을. 엄마에게 서울로 이사 와서 함께 살자고  년 설득. 싫다고. 아니라고. 내 걱정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라고. 회사에 간곡히 요청. 5년만 원주 보내 달라고. 왜? 이대로면 임원은 보자인데 왜? 속사정 말 못 한다. 3개월 졸라도 안 된다. 사표. 그리 심각하냐고. 소속 회사로는 대리로는 자리가 없다. 그룹 회사 중 타 회사인데 영업인데 괜찮겠냐고. 원주면 된다. 어느 회사건 직무건 상관 없다. 5년이면 65세. 아부지 57세 가셨으니 그쯤이면 아부지 곁으로 가실 거야.




ㅡㅡㅡ




원주 내려온다. 다음해 결혼. 며느리가 밥하고 시중 든다. 이듬해 첫 아들. 엄마는 등에 업고 동네에 아들 자랑, 손자 자랑. 2년 후 둘째 손자. 이 녀석은 자라면서 할머니 졸졸 따라 다닌다. 할머니, 이거요. 고추 텃밭에 고추 대공 세우는 거 보고는 작대기 주워온 거. 시장 장사는 계속하신다. 아부지 이태전 가시어 거른 환갑을 칠순에 더해서 잔치 크게 벌렸다. 해마다 놓친 생신은 온가족이 모였다. 해가 갈수록 손주 수가 늘어 열셋. 자식 여섯까지 열아홉. 먼저 간 남편에게 당신 대가 번성했노라 떳떳했다. 전쟁 중 혼인해 딸 셋 낳고 죄인이었던 건 추억이 되었다. 아들  셋에 손자 다섯. 죽을 만큼 고생이었지만 보람 그리고 자부심. 이제야 마음 놓였는지 은퇴. 맘껏 다니고 즐기신다. 엄마 벌어놓은 재산 세 수입 더하기 나 번 돈 일부. 펑펑은 아니어도 대우 받았다. 홍보관. 노인들 모아 놓고 건강 식품, 기구 파는 곳. 거기서 브이아이피. 그럴 수밖에. 나 일년 연봉을 매년 꼬박 사주니. 큰누나 한 번 따라가더니 다시는 안 간다고. 엄마만 왕 대접, 자기는 개털이라고. 관여 안 하기로. 나 못 하는 효도 거기 가서 받으시라고. 이때쯤 대학 때 장학금 받았다고, 엄마에게 등록금 이중으로 타서 썼다고. 그랬어. 엄마는 아무일 아니라는 듯이 받는다. 그제서야 말 꺼낸 건 충격 받을까봐. 신병교육대 훈련소 끝나고 엄마가 면회 왔다. 인민군 같은 모습에 함께 온 막내동생 중학생. 형, 불쌍해. 눈물 뚝뚝. 엄마는 이북에서 육이오전쟁 때 월남했다. 군사 정권에 찍혔다는 게 무슨 일이라는 걸 안다. 총장실 다 때려부수는 건 정치범으로 감옥 갈 일. 얼마나 위험한 지 북한과 전쟁을 겪어서 익히 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kno37




말 못 한다. 반액 장학금은 집안 사정을 사정한 거. 자랑거리 아니었다. 5년 후 복귀한다는 회사와 약속은 지키지 못 했다. 엄마를 다시 혼자 둘 수 없었다. 50세 사장되는 건 불가능을 깨닫기도. 이전 회사는 5년 지났으니 복귀하라고. 현 회사는 본사 마케팅팀으로 불렀다. 사표 쓰니 엘지 그룹서 전화. 연봉 두 배, 이 계급 특진 중 택일하라 하니 포기. 엄마 5년이면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웬걸, 26년을 사셨다.



늘 그랬다. 엄마는 내가 한 일 옳던 그르던 탓한 적 없다. 단 두 번 빼고. 국민학교 5학년. 태권도 빨간 띠 슬럼프. 사범님이 나만 중학생하고 자유대련 시킨다. 키 코고 발이 길다. 급도 높다. 옆차기. 옆구리를 발 날에 찔리면 그 자리에 폭 주저앉는다. 호흡 정지, 강한 통증. 매일 대여섯 시간 발차기. 놀이 겸 운동. 실력이 부쩍 는다. 초고속 승급. 7급 흰띠, 6급, 5급 청띠, 4급, 3급, 2급 빨간 띠. 1단 검은 띠, 2단, 3단, 4단...두 번 월 급. 한 급수 건너뛴다. 빨간띠. 도장 가기 싫다. 박동선 사범님이 나를 키우려고, 시합 내보내려고 하는 건 안다. 꾀를 낸다. 야아아압, 야아아압. 엄청난 고성으로 어리둥절. 순식간에 몰아차기. 한 번은 통한다. 도장 며칠 거른다. 엄마가 가라고. 안 간다. 처음 모질게 매 맞았다. 엄마가 내게 그리 화내는 거 처음. 남자가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회사 1년차 신입. 소개팅 평택 녀. 엄마가 딱 좋아할 거. 내가 약대 가기를 바랐다. 세 준 보건약국 보니 이거야말로 꿈의 직업. 나. 남자가 쪼잔하게 종일 가게나 지키고. 큰일해야지. 약대 곧 졸업. 녀에게 믿음을 준다. 회사서 상 받은 순금 돼지를 녀에게 맡긴다. 자취 방은 도둑 맞을 거라며. 집에 데리고 간다. 녀 버스 태워 보내고. 엄마, 맘에 들지? 고집 있어. 같이 오래 못 살아. 싫다, 좋다 말 없다. 맞다. 나도 그리 보았다. 알아가는 단계라 다툰 적 없다. 그치만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행히 정 주고 받지 않았다. 정중하게 미안하다고, 인연 아닌 거 같다고. 순금 돼지는 돌려달라 않았다. 쪼잔하다 여겼다.



서울 사는 외숙모가 사정을 알았다. 효장동. 회사와 가깝고 외삼촌이 엄마쪽 유일한 혈육이라 자주 들렀다. 풍 맞는 사촌 큰형이 같이 살았다. 그 아들에게 갈 때마다 용돈 쥐어주었다. 니가 장남이니 잘해야 한다. 외숙모. 아주 좋은 여자 있다고. 꼭 만나보란다. 부담. 몇 번 거절. 성의 보아 만난다. 호텔 커피숍. 이런 저런 이야기. 괜찮다. 르망 차 몬다. 자랑 아니고 어떻게 왔냐니 자연스레. 외숙모에게 사전에 들었다. 딸만 셋. 큰 사위 의사. 병원 차려줬다. 둘째 무역회사 차려줬다. 막내다. 결혼하면 집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그게 부담돼서 거절했던 거. 만나보니 차까지 있다. 것도 르망. 포니 택시가 갓 지난 시절. 현대차 엑셀도 놀라운데. 난 운전면허조차 없다. 가만보니 결혼하면 키 셋 자동이다. 아파트, 차, 건물이든 돈이든. 나 자취. 단박에 다 해결. 인물은 없다. 맘에 안 든다. 결혼하면? 맘에 없는 여자를 돈 보고? 찝찝하다. 겉으론 웃지만 내색 않지만 불편하다. 외숙모 소개라 밥은 먹여 보내야지. 밖으로 나와 나란히 걸으며 우측에 식당 곁눈질. 저 라면 먹어도 괜찮아요. 이 말 한마디가 많은 걸 이야기 한다. 첫째, 내가 싫지 않구나. 둘째, 나를 없이 봤구나. 그래도 대기업 직원인데. 이걸 웃어야 하나. 생각해서 한 말 나무랄 수도 없고. 라면 집. 먹고 나서 배웅하려는데 연락하게 전화번호 달란다. 엥, 이런 건 처음이다. 아하, 작심했구나. 허긴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 아, 정말 죄송해요. 제가 잘 모르겠어요. 저한테 일주일만 시간 주실래요. 제가 고민해 보고 연락 드리면 안 될까요. 혹시 연락 못 드릴 수 있어요. 괜찮으시면 전화번호 제게 주시면... 선뜻 알려준다. 꼭 연락주세요. 기다릴게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집에서도 온통 이 생각. 꼬박 일주일. 신혼이야 뭐가 문제랴. 권태기 오면, 심하게 다투면, 이게 니 집이냐. 이 말 나오면 나는? 애 있을 터. 한 번이야 듣지만 터진 입 세지기 마련. 다시 그러면? 나 백 퍼센트다. 니 말 맞아. 니 집. 짐 싸서 그날 나온다. 애는? 애가 무슨 죄? 나는? 내가 뭐가 아쉬워서. 아파트, 차, 돈. 이거 다 생길 건데. 나 대기업 사장 될 건데. 내가 왜 마누라한테 이런 소릴 들어. 게다가 파탄. 부모님 모시고 살아야 하는 건 상상조차 못 한다. 이건 아니다. 전화한다. 정말 미안하다고. 인연이 아닌 거 같다고. 생각이 바뀌면 연락 달란다.   



아내는 회사 부하 직원이었다. 원주 와서 1년차. 시장을 뒤엎었다. 시장 점유율 2위에서 1위로 등극. 전무후무 마케팅 하나로 지점, 대리점, 딸린 식구들 다들 신났다. 사업부 꼴찌에서 1등. 발령 받았을 때 이전 부서서 다들 꽃밭에 간다고 부러워 했다. 무슨? 화장품 사업부. 과연 그랬다. 본사 구매부 여직원은 경리 하나. 여기 오니 경리야 당연 영업 지원 직원이 다 여자 미혼, 대리점 직원도 마찬가지. 화장품 코너도 거의  여자가 주인. 대개 미혼. 명문대 출신 미혼의 총각 대리. 게다가 만 30세. 결혼 적령 지났다. 서둘러야 할 때. 날이면 날마다 회식 술 파티. 1차, 2차, 3차. 나는 그럴 의도 없다. 헌데 육탄 공격. 방어도 한계가 있다. 무너진다. 헌데 남자 있어. 내가 차인다. 펑펑 운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이건 아니다. 결혼하자. 원주 온 이유. 가정을 꾸려야 엄마 행복. 둘을 겪었기에 정돈은 되었다. 성격이 맞아야 한다.  똥고집이니 받아줄 수 있는. 돈 이런 거 필요 없다. 직원 중 한 여자. 일곱 살 아래. 지역 후배이자 남동생 친구의 여동생. 집안 잘 안다. 평범하다. 오케이. 나랑 결혼하자. 야호, 뒤집어진다. 조건 단 하나. 엄마 모시고 살아야 한다. 엄마 보이니 무척 반긴다. 사이좋게 지냈다. 엄마는 시집살이 안 시켰다. 잘하기도 했거니와, 엄마 당부 하나. 신랑 이기려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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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86세 가셨다. 염. 엄마 손 부여잡고 엄마 얼굴 부비며 목 놓아 울었다. 엄마, 엄마, 엄마. 아내고 제수씨고 조카고 눈치 보지 않았다. 그 귀한 몸 만질 마지막 기회. 평생 염 했어도 이리 슬퍼하는 분 처음이라며 내 두 손 꼭 잡아준다. 아부지 옆에 묻어 달랬다. 아부지 가시고 이듬해. 바로 아래에 가묘를 만들어 달라했다. 25년 벌초하며 가꿨다. 두 분 서로 사랑했어도 죽은 자의 뼈 옆에 눕는 건 두려웠다. 엄마 죽음을 예감하고 넌지시 두 번 확인. 그 자리에 묻어 달라고. 한 달 전. 얘야, 네 아부지 곁에 묻어 주렴. 죽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거, 임박했다는 거를 수긍한다. 그래, 엄마. 그럴 게.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니까 나 매일 갈 거야. 멀리 가는 거 아니야. 엄마가 만든 묘는 내가 쓸 거야. 그럼 우리 다 같이 사는 거야. 엄마. 하관 할 때 관 끌어안고 한없이 불렀다. 엄마, 엄마, 엄마. 다시는 못 부를 말이기에. 아래에서 기다린다. 달구질 소리 어찌나 구성진지 천상에서 울리는 음악과 다름 아니다. 성인된 조카들에게 물으니 처음인데 다들 참 아름답다고 잊을 수 없을 거 같다고. 엄마는 그리 하늘의 부름을 받았고 내 마음속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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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다음달 분 다시 모신다. 화장해 목함에 담아 다시 자리.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시게. 평탄 그리고 잔디. 그 아래 내 자리, 옆으로 형제들. 이제 우리 순서다. 아부지, 엄마, 그리고 나는 그리 살았더랬다. 가매기삼거리는 내 육신이고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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