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태 묻은 동네 태장동
41화. 응답하라 1968
1486년. 조선 성종은 딸을 낳고 크게 기뻤다. 복란공주. 지관에게 태 묻을 명당을 고르라 명한다.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 공주의 태실(胎室)을 두어서 태장(胎藏). 일제가 태장(台庄)이라고. 조선의 뿌리를 말살하려 함이리라.
봉산 배산 봉천 임수. 풍수지리 근간. 야산 야트막하여 어디고 볕이 잘 든다. 마사토. 바위가 되지 못 해 슬픈 모래. 미세 황토로 뭉치되 굵은 모래라 물 빠짐 빠르다. 파고 봉분 되쌓기 수월. 오르내리기 용이하다. 일대가 묘지로 천하 명당이다.
공주의 태를 담은 항아리. 그걸 묻는 태 장례는 나라의 경사였다. 가히 태평성대. 왕권은 바로섰고 조정에서 이보다 중차대 없었으니. 한양의 육조판서가 일제히 가마에 오른다. 나랏일 지체 않으려면 가맛꾼 서둘러야. 해로 날 세고 달 아래 쉬어 구름처럼 삼거리 도착. 가마에서 내리라 하여 가매기삼거리. 강원감영까지 도보로 반 식경 15분. 도 관찰사쯤이야 저 아래인 신분 최상위 노인들 그리 않는다.
천안삼거리에서 경상, 전라, 경기로 길이 갈린다. 이곳 삼거리는 충청, 경기, 강원으로 나뉜다. 삼국이 왕래하던 시대 이전일 것이 틀림없다. 원주는 강원 최남단, 충청북도, 경기도 접경이다. 한반도 정중앙. 명당일 뿐 아니라 교통과 전략 요충지. 가매기삼거리에서 마을을 이룸은 자연스럽다.
여러 날 앞서 다다른 육조판서. 장례 행사장 가까이서 여독 풀기로. 삼거리에서 동쪽 샛길로 가마를 돌린다. 육판길. 육조판서가 밟은 길이라 각별히 이름하였다. 전무후무. 나라 대빵들 모두가 강원도 촌구석에 동시에 납실 일은 천 년 반 다시 흘러도 없을 거이라. 우로 치악산 끝자락이 봉황 꼬리 닮아 봉산미. 좌로 산 정상 일대가 너럭바위. 산세 살피고 나서 육조판서 바둑을 둔다. 육판바위. 이 또한 명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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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딸만 셋 줄러리 낳고 죄인이 되었다. 육판길 무진고개서 용하다는 점집을 처음 찾는다. 공주 기운 드세어 그런 거라고. 육판바위 아래서 백일기도 드리면 공주가 왕자로 바뀐다고. 엄마는 봉산의 정수 샘물 떠 흰 사발에 가득 담는다. 초와 향 켜고 백 일 치성 다한다. 산신과 삼신 할머니에게 제발 제발 아들 하나 점지해 달라고.
마침내 엄마는 첫딸 이후 8년의 소원을 이룬다. 사랑하는 남과 녀의 씨 자라 귀 빠졌다. 실한 고추 하나가 죄는 사하고 복을 내렸다. 그렇게 시균이는 멀리 조선 왕의 기와 육조판서의 축복, 가까이 봉산과 삼신 할미의 영험을 받아 태 나왔다. 역사의 탯줄이 태장동에서 이어진다. 복란공주 태로부터 475년. 1961년 정월 스무세 번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