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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Sep 27. 2024

장남의 숙명 3-동생 셋

42화. 응답하라 1968


30세 귀향 귀소해 대기업 그만두고 고향 정착한 건 내 인생 가장 잘한 결정이다. 이로써 장남으로 부모 사랑 몰아서 혼자 다 받은 나는 부모 부양의 의무를 할 수 있었다. 부모님 당부대로 동생들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아니었다면 나는 죄인이 되어 죄책감으로 살고 있을 게 틀림없다. 대기업 사장의 목표는 버렸지만 다이내믹 한 삶, 내 삶을 나답게 살았다.


아부지는 어린 내게 말했다. 니가 동생들 돌봐야 한다. 그 말을 어릴적부터 듣는다.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귀에 못이 박힌다. 아부지, 엄마 책임지라는 말은 았다. 온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었다.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아부지 고생 안 시키는 게 꿈이었다면 동생 돌보기는 의무였다. 부모님은 나를 믿었고 동생 셋을 맡겼다. 글이 긴 건 그럴 만하다는 거, 나아가 시대상을 기록하고자 함이다. 자랑 아니다. 첫아들 태어나 17년 천국서 놀다가 대입 폭망해 지옥에 떨어졌으니 못난 거다.




ㅡㅡㅡ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과목 생물. 첫 수업. 개구리가 많이 살아. 다른 동물 뭐가 살까? 조용. 나 손 번쩍 든다. 뱀이요. 맞아. 근데 왜 뱀이 있을까? 개구리 잡아 먹어요. 성적 나온다.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아부지와 나를 앉힌다. 공부, 태권도 둘 다 뛰어나요. 둘 중 하나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아부지와  상의. 공부하기로. 태권도 접었지만 정기적으로 시범. 전교생은 나를 따라 품세 기본을 익힌다. 


공기총 사격부가 새로 생겼다. 선수로 키울  선발. 장총. 무척 비싸 보인다. 매끈 날렵해 더 단단해 보이는 나무 받침. 그 위로 쇳덩이. 길게 뽑은 총구. 왼손으로 총 잡고 오른손으로 쇠막대 잡아서 몸쪽으로 당긴다. 드르륵. 약실이 드러난다. 삽탄. 총구에 절구 모양 납탄 한 알 넣는다. 콩알 만하다. 뒤가 뚫렸다. 쇠막대 원상태. 드르륵 철컥. 총알과 함께 약실에 공기. 장전 완료. 표적 10미터. 정사각 10센티여. 흰 바탕에 까만 줄 동심원 여럿. 중심점. 총구를 정면으로 거치대에 누인다. 삽탄. 장전. 사격 자세. 왼 손바닥 가운데 위로 장총 중앙을 얹는다. 가벼이 쥐되 오므리지 않는다. 총 고정해야. 몸을 표적과 일직선으로 옆으로 돌린다. 양다리 어깨 넓이. 양발 자연스럽게 팔 자. 허리를 좌로 한껏 내민다. 골반 위로 팔꿈치를 얹는다. 총 거치 완료. 오른손. 개머리판 밑을 어깨에 밀착 시킨다. 강한 힘. 손가락으로 방아쇠 건다. 솜털처럼 부드럽게. 왼손으로 총구 들어 오르락 내리락. 눈과 총구로 표적을 찾는다. 가늠자 위에 얹는다. 동심원의 중심점을 가늠자 끝 선에 살포시 앉힌다. 미세 좌우상하로  초점을 맞춘다. 호흡 정지. 온세상이 점 하나로 압축되는 순간. 방아쇠를 살포시 당긴다. 덜컥하면 가늠자가 표적 중앙을 벗어난다.


태권도는 격투기. 체력과 기술 필수. 방어에만 써라. 입문할 때 정신 교육. 사격은 다르다. 시력과 정신 집중. 세계를 점 하나로. 맨날 종이만 쏘면 지겹다. 선생님 자리 비운 사이 총 들고, 총알 챙겨 실내에서 학교 운동장으로. 아카시나무 한 그루. 옆으로 물 마른 수로. 이어서 너른 딸기 밭. 도로 쪽 끝으로 지용주 권투 구락부. 국제대회 첫 메달. 온나라가 뒤집어졌다. 은메달로 나라의 영웅, 원주의 명사가 되었다. 우리집 근처 봉산동 제방둑에서  칼 맞아 죽었다. 시대의 영웅이 졌다고 신문 대서특필. 흑백 테레비 아직 귀했다.


나무 위로 새 한마리 폴짝 앉는다. 크다. 주먹 둘 크기. 울긋불긋 화려하다. 처음 본다. 딱 봐도 귀한 새. 날기 전에 조준 대충. 이거야 거저먹기. 가깝다. 크다. 발사. 푸드득 떨어진다. 아래서 쏴서 배에 맞았다. 한창 딸기에 벌레 먹으려 나무와 밭을 오가다 내 총 맞은 거. 내가 가까이 도 경계 않은 건 총이란 걸 몰랐던 거. 두 발로 걷는 짐승은 날지 못 한다는 걸 진즉에 알았다. 접근해도 겨눠도 룰루랄라. 헌데 겁 더럭. 마음이 앞서 쏘기는 했는데 막상 주검을 보니. 무서워서 아니다. 까짓 새. 혹시 오색딱다구리? 딱다구리 크기 맞다. 깃털에 색 여럿. 천연기념물? 선생님에게 들키면? 구워 먹을 의도 애초 없었다. 꼼짝 않는 종이 말고 움직이는 걸 쏘고 싶었을 뿐. 쥐라면 좋았는데. 대낮이라 새. 건물 밖 귀퉁이에 숨겼다. 도감 보니 오색딱다구리 맞다. 땅에 묻어준다.




고등학교.




고2 종합성적 전교 2등. 담임이 말해 줘서 알았다. 1등은 서울대의대 갔다. 1학년 백혈병 사망. 갑자기 성적 오른 거 아니다. 이대로면 서울대 따놓은 당상. 고3. 기숙사를 지었다. 교실 건물 뒤로 부로꾸 쌓아서. 서울대 보내려고 20명 선발. 난 잠만 실컷 잔다. 난 새벽 공부. 새벽 03시부터 08시까지. 저녁 8시면 잠 쏟아져 잔다. 7반 61명. 교실서 밤 11시까지. 20명 기숙사 이동 밤 12시까지. 00시부터 06시까지 수면.


나. 저녁 8시 옆 교실 바닥에 쓰러져 잔다. 기숙사 이동. 이어서 잔다. 새벽 03시 눈 뜬다. 기숙사 불 못 켠다. 친구들 깨니까. 교실도 불 못 켠다. 수위가 순찰. 허니 친구들 기상할 때까지 계속 잔다. 저녁 8시부터 아침 06시까지 10시간 취침. 국민학교, 중학교, 고 2까지 공부는 새벽에 했다. 밤에 한 적 없다.


이뿐인가.


고3 때 연대장 즉 학생회장. 전에는 체격 좋고 쌈 잘하는 학생이 맡았다. 박정희 정권은 공부까지 잘 해야 한다고. 나 적임자. 매주 월요일 전교 교 조회. 군대 분열 그대로. 1,300명 전교생 최선두 선다. 교련복에 군화에 띠 두르고 칼 차고. 구령, 호령. 군대와 똑 같다. 교장 선생님 훈시를 그리 한다. 교문. 매일 아침 1,2학년 지각, 복장 단속. 어기면 빠따 친다. 주기적으로 교실 전부 순시. 가방 검사. 후배들 나 나타나면 일제히 숨 죽인다. 현충일. 원주에 고등학생 전체. 나 제일 앞. 시내 도로 통과해 4키로 현충탑까지 행진. 도로에 차 못 들어온다. 대한구국여성봉사단. 박근혜 총장. 강원도 대표로 나 1인 표창장. 상 받으러 윤리 선생님 호위해 춘천 3박 4일. 여과서 숙식하며 매일 종일 체육관 가서 상 받는 연습. 행사 당일. 체유관이 꽉 찬다. 내 순서 기다렸다가 단상에 오른다. 방향 전환은 꼭 90도로 틀어야 한다. 박근혜 정면. 사회자 마이크 대독. 성실 어쩌구 학업 저쩌구. 총재는 상 펴고 보다가 끝나자 내게 내민다. 주의 사항 열 번도 더 들었다. 절대 고개 들지 말라고. 눈 마주치지 말라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다. 도대체 이 여자가 뭔데 삼 일 내내 상 받는 연습. 학생들 외에 꽉 들어찬 사람들 누구? 춘천 시내가 대청소한다고 부산. 고개 들어 박근혜 눈. 얼굴 갸름하다. 여성스럽다. 예쁜 편. 헌데 새파랗다. 누나 뻘이지만 아줌마 아니고. 박정희 대통령 딸인 건 알았지만 어린 줄 보고 알았다. 남들 열심히 입시 준비할 때 갖은 뻘짓.


이뿐인가.


이과반. 문과보다 서울대 가기 쉬워서 원고는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이과반 배치. 7개반 중 1개만 문과반. 7반 61명 성적순. 1학년때부터 7반이었다. 일부는 바뀐다. 다른 반으로 쫓겨나고 대신 그만큼 받고. 담임도 2, 3학년 2년간. 다들 싫어했다. 돈을 받았다. 매달 반 61명 모두에게. 당당하게 부모에게 청구. 휴일. 선생님들 출근 안 한다. 교무실로 한 명씩 부른다. 엄마들이 준다. 형편 어려워 못 낸 친구들 불려가는 거. 30여 분 괴롭힌다. 교실 들어오면 다 쳐다본다. 씨바알. 다 공감. 2년 이랬다. 아니다. 1년 선배부터다. 2학년 7반, 3학년 7반 담임은 고정이었고 한 사람이었다. 학교 근처로 이사 온다. 나 포함 여럿 동원. 가보니 양옥집. 다 안다. 우리 돈 뜯어서 집 산 거. 별명 돈두. 돈의 머리이자 돼지 머리 중의. 돼지처럼 침을 질질 흘린다. 말할 때 침 튀긴다. 구강 구조 이상해서. 선배 누가 돈두라고 지었는지 딱이다. 화학. 팔뚝 길이 몽둥이를 항상 든다. 수업 시간에 질문 받는 친구는 돈 안 내서다. 몽둥이로 머리를 치거나 쿡쿡 쑤신다. 나 딱 한 번 맞을 뻔. 자습 시간 통제는 내게 맡긴다. 반장 있었지만 나 학생회장. 친구들 땡땡이. 학교 밖 나가서 바람 쐬고 온다. 우리 생각보다 일찍 온 돈두. 다섯. 옆 3학년 교무실. 휴일이라 아무도 없다. 나 제일 먼저 벽 짚고 서서 뻗쳐.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친구들 나가는 걸 나보고 어쩌라구요? 너는 저리 가. 하나씩 빠따 친다. 돈두는 반에서 성깔 있는 친구 몇도 건드리지 않았다. 만만한 친구들이 타겟이었다. 승승장구. 과학고 교장. 우리에게 스승은 없다. 반 친구들 몇 빼고 선생이라조차 않는다. 우리에겐 영원히 돈두다. 수 년 전 돌아가셨다. 수치고 일부에겐 트라우마. 이런 교사도 있었다는 거 후대에 교훈으로 적어 둔다. 유족 항의하면 삭제하겠다.


샛길로 샜다. 쪼잔하게 남자가 이과. 해서 문과. 짝이랑 둘이서 이과반에서 문과 공부. 이과 시간. 책상 아래 몰래 책 펴고. 1년 후 전교 30등. 돈두는 서울대 농대 원서 쓰라했다. 문과 공부했다. 뭐라고? 이과 공부 안 했다. 고대 정경대 쓰겠다. 안 돼. 선생님 시킨 거 다 했다. 기숙사, 연대장, 자습시간 통제. 3학년 전부 머리 빡빡 미는 거까지. 원서는 내가 원하는 대학 쓰겠다. 낙방. 


두 번째 연대장 헛바람, 세 번째 이과반에서 문과 공부. 이건 문제 안 된다. 기숙사가 치명타였다. 11년 새벽 공부 습관을 바꿀 수 없었다. 그해 13명 서울대. 원고 역사 이래 최고 성과. 나는 완벽한 패배자가 되었다. 이후 극심한 청춘의 방황. 스스로 성대 야간 대학 진학. 처음 지옥 맛을 호되게 본다. 1년 후 고대로 갈아탄다.




ㅡㅡㅡ




막내 동생




8살 차이. 남. 나 귀향한 이후 늘 사업 같이 했다. 함께 살거나 근처 살았다. 삶을 함께 한다.


고등학교 졸. 스무 살 결혼. 신혼 집 월세. 주류 영업. 힘들고 박봉. 나 귀향. 어머니 모시고 산다. 아버지 위해 지은 집에 산다. 1층과 다르지 않은 반지하. 함께 살자고. 살림 집으로 개조. 세 안 나간다. 식비, 난방비, 전기세 등 내가 다 내니 절약 크게 된다. 나 퇴직 및 화장품 가게 개업. 판매 직원으로 제품, 판매 기법 가르친다. 1년 경험 쌓고 근처에 시내 제일 목자리 가게 얻어 준다. 투자비 전액 내가 대고 무이자 상환. 3년만에 거액 갚으니 다 동생 소유. 한 재산 모은다. 실수. 인터넷 유통 사업. 자금 부족해 동생 것 끌어다 쓴다. 나 파산. 동생 원점. 내 매장으로 다시 복귀. 월급 넉넉히. 최고 잘 나갈 때 대기업 부장 대우. 나 은퇴. 부업 삼아 치킨집 오픈. 월급이 적다. 무인매장 차려준다. 월 100만 원 가량 수입. 첫째 딸 대학 등록금 대준다. 스스로 그만둔다. 자식 셋 중 둘 시집가고 막내 아들 취업해 용돈 벌이. 자가 소유 아파트. 내 거 큰 아파트와 교환해서 살다가 본인 아파트가 좋다고 거주. 매장서 같이 일할 때 40세 넘어 중풍. 집안 내력이라 전조 증상 바로 알아채서 즉시 조치. 금세 회복 되었으나 한쪽 힘 없어 취업 불가. 이후 서서히 악화되어 풍이 눈에 띈다. 무인 매장은 할 수 있다. 자식 셋 중 둘 출가. 막내 아들 취업해 함께 산다. 부모 자식 걱정, 돈 걱정 없다. 고향 온 직후부터니까 33년 함께 사업한 셈. 더 해주지 못 해 마음의 짐이다.  




둘째 동생. 




다섯 살 차이. 대졸. 수원 아주대학 법대 좉. 법원 공무원. 아주대학교 앞 짜투리 경사 땅 매입. 10년 세월 투자, 각고의 노력. 개발해 상가 건물 소유. 40대 후반에 당뇨, 협심증. 50대 중풍까지 온다. 조기 은퇴. 애 둘 성인. 부자다. 내 도움 없이 스스로 이루었다. 대견하고 늘 고맙다.



ㅡ회초리



국민학생 남아. 나 고교 생.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다. 형아, 잘못했어. 안 그럴 게. 부모님 안다. 영리하고 나도 동생도 금방 커서 몇 차례 아니다.



ㅡ대학입시



동생은 영리했다. 나 군에 간 사이 애교. 엄마를 달랬고 마음을 얻었다. 마지막 휴가 왔을 때 예비고사 점수를 보았다. 진학, 대학입시. 두 권을 동아서관에서 산다. 점수별 대학 배치도. 인서울 대학 가고 싶다고. 일주일 집중 정밀 분석. 점수가 낮다. 수도권으로 확대. 아주대학교가 사정권. 수원이면 괜찮다고. 1지망 국문과 합격권. 취업은 어렵지만. 2지망 영문과. 간당간당이나 취업 잘 돼. 3지망까지는 모르겠다. 빈 칸으로 남긴다.  아주대학교. 원서 제출 직전에 동생은 법학과를 적는다. 거긴 왜 쓰냐. 되지도 않을 거. 최고 높아 턱도 없다. 휴가 복귀. 그리고 전역. 합격자 발표일. 아주대 운동장. 합격자 명단을 훑는다. 동생 이름 석 . 위에서 아래로, 옆  열 위에서 아래로. 1지망 없다. 2지망 없다. 이를 어쩌나. 망연자실 천근만근. 속으로, 재수해야지 어쩌겠나. 동생이 3지망 보잔다. 거긴 왜?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잠시 후 그쪽에서 함성. 야아아아, 합격이다, 합격. 동생 목소리. 명단 아래로 훑는다. 없는데? 없는데? 없어. 동생이 저 아래 맨 끝 가리킨다. 있다. 둘이 얼싸안고 덩실덩실. 세상에, 법학과라니. 진학 지도표로 두 단계 위.  점수로 뽑을 수 있는 최대 성과. 동생은 처음부터 법학과 쓰자고 했다. 이번은 동생 입대. 전역 후 법원 공무원 시험 준비. 졸업 때 합격. 평생 공무원. 원주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 수원이 제 2의 고향 되었다. 동생은 지금도 고마워한다. 내가 뭘? 잘못 찍었는데. 아니야. 나를 아주대학교로 이끈 건 형이야. 휴가 나와서 쉬지도 못 하고 방에서 일주일 꼼짝도 안 했잖아. 아부지, 엄마 바람대로 형제는 외롭지 않았다. 우애를 키웠고 다졌다.



ㅡ결혼



나. 아부지 역할. 여자 나무랄 데 없다. 엄마와 함께 상견례. 얼마간 지원.



ㅡ상가 건물 건축



아주대학교 정면 도로 건너. 길게 짜투리 땅. 위로 고지대 아파트. 아래로 인도.  급경사. 이걸 개발한다면 대박. 여럿 공동으로 구입. 공무원 돈 없다. 빚 내 이자 내며 버틴다. 제수씨 영양사로 가계 근근히 지탱. 개발 불가능 판단한 공동 소유자 빠지자 인수. 빚 부담 가중. 어렵사리 법적 요건 갖추어 건축 허가. 법 지켰어도 아파트 주민들 단체 항의 시위. 현수막 걸고 민원 찌르고. 한 명은 도끼 들고 위협. 전액 대출 받아서 완공. 1층 스타벅스. 동생은 영리했다. 형, 우리는 엄마 피 받았어. 한 번 정한 건 반드시 이루지. 과연 그랬다.




● 여동생




하나뿐인 여동생, 하나뿐인 오빠. 세 살 아래. 고졸. 어긋난 건 아부지 풍으로 쓰러지면서. 동생이 아부지 밥상 차린다.  귀향해 함께 산다. 내게 욕설 대든다. 엄마 머리끄덩이 잡는 패륜까지. 나 군대 가 있을 때 아부지 돌봤다고. 집에서 해준 게 뭐냐고. 취업 않고 집에만 있으니 히스테리. 집 나간다. 포기할 밖에. 40세 넘어 풍. 혼자 살다 조치가 늦었다. 그때부터 지금껏 요양원. 둘째 누나가 보호자. 그러다 허리 아파 병원. 이때부터 내가 보호자. 딱했다. 병들었다. 척추 수술. 하반신 마비. 꼼짝 못 하고 대소변 기저귀. 의료 사고다. 병원과 싸운다. 다행히 서서히 신경 조금씩 살아난다. 재활병원. 다시 요양원. 하반신 움직이나 침대서 못 내려와. 누나와 상의해 소송 않기로. 미혼에 중병이라 국가가 다 대주었다. 병원이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다. 소송 포기가 동생 권리 팽개치는 거 같아 씩씩대다가 누나 말 일리있다. 따르기로. 집 근처 요양원. 매달 한 번 면회.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4시간 외출. 휠체어 타고 밀고 공원, 시장, 봉천내. 피자, 국수, 닭갈비, 게장정식. 여름엔 열무국수 특히 좋아한다. 순대도 같이 시키고. 커피숍 가서 죽 치기도. 둘 다 아메리카노. 가끔 차 드라이브. 횡성, 신림 쪽. 휴게소서 믹스커피. 병 나면 병원 데려가고. 명절 때 집으로 데려왔다가 자식,  조카들 다 커서 이젠 않는다. 모르는 사람들 부부안다. 아내 끔직히 사랑하는 남편쯤. 건네는 말 보면 안다. 너댓 시간 쏘다니며 놀다 요양원 입소. 허리 굽혀 휠체어 탄 이쁜 동생 얼굴에 내 얼굴 댄다. 동생은 잊지 않는다. 오빠 사랑해. 나도 사랑해.




ㅡㅡㅡ




이번 추석. 봉분. 아부지, 엄마 합장을 화장하기로 내심. 그 자리 평탄 작업해 모시고 그 아래로 자리 여섯 두기로. 큰매형이 혈혈단신 외롭다. 누나 자리까지. 작은누나 잘 살아 걱정 없다. 엄마, 아부지, 형제 다시 모여서 사는 거다. 때가 다가오고 있다. 장남인 내가 할일이다. 죽어서도 부모 모시고 동생 돌보련다.




ㅡㅡㅡ




나 아들 둘. 차별 없이 똑같이 키웠다. 나, 엄마 부양하란 말 않았다. 동생 돌보란 말 한 적 없다. 장남의 커다란 무게를 큰아들에게 지우고 싶지 않았다. 다만 어려울 때 서로 도우라고. 형이건 동생이건 가장 난관일 때 재산의 5%만 내주라고. 딱 한 번만. 훗날 후회 않으려면.  하나뿐인 형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우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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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랑 아니다. 자랑거리 못된다. 시대 생활상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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