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내를큰개울이라 불렀다. 동네를 흐르는 시냇물은 개울이라 했다. 가매기삼거리 우리 동네만 그리 칭했다. 봉천내라 하지 않았다. 누구부터인지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물을 이유도 없다. 그저 개울보다 크니까 큰개울. 개울의 이십여 배 넓이로 120여 미터, 제방을 5미터 가량 높이로 쌓았다. 개울은 탯줄인 양 큰개울에 합류한다. 큰개울은 이웃 동네들, 다리 건너 먼 동네들과 함께 썼다. 봄이면 서커스, 여름 물놀이, 가을 난장판, 겨울엔 스케이트 빙상 경기가 열렸다. 놀거리. 구경거리 신천지였다.죽는 위험도 함께였다.
꼬맹이가 큰개울 가는 길은 둘이다. 개울 옆으로 난 물길 따라서. 물길은 돌고 휘어서 멀다. 새동네 남의 동네를 지나기 거북하다. 해서 신작로. 사람이 낸 길은 빠르다. 눈치 안 보고 지날 수 있다. 집에서 수송부대 담장 아래로 남으로 30여 미터. 아래 삼거리에서 우로 틀어 100여 미터면 새다리. 원주 1호 다리는 사람, 차 구분해 쌍으로 쌍다리. 2호로 새로 지었다 하여 새다리. 둑방길. 좌로 큰개울, 우로 수송부대 부로꾸 담장. 간격을 충분히 띄워 미류나무가 하늘을 찌른다. 부대가 나 태어나기 전부터 자리잡았다는 걸 알려준다.
ㅡ물놀이
큰개울은 물놀이터다. 세 곳이다. 구정바위. 철다리 아래. 그리고 새다리 아래. 다리 옆 둑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물. 장마나 태풍이면 물이 양쪽 제방 아래까지 채운다. 강이 된다. 황톳물 넘실넘실 세차게 흐른다. 헤엄쳐서 건넌다. 천천히 앞으로 전진. 두둥실 두리둥실. 반대 둑 다다르면 100여 미터 아래. 고추 덜렁 홀딱 벗은 맨몸. 둑 올라 다리 건너 출발 지점. 혼자는 무서워 셋이서. 홀로 건너다가 죽을 뻔.
새다리 200여 미터 아래로 구정바위. 큰개울 중앙에 둥근 바위 셋. 비 온 후면 며칠 여기가 붐빈다. 바위 아래로 물이 잠시 쉬었다 간다. 한 길 넘는 깊이. 우리 동네, 새동네 아이들. 큰개울은 누구 것도 아니어서 텃세 없다. 깊어서 국민학생은 되어야 하고, 발가벗고 목욕하니 중고생은 안 온다. 해 쨍쨍 여름날 가면 열댓이 신나게 물장구. 간혹 너댓 살 꼬마 데려오는 누나. 동생 델꼬 온다. 여자라 옷 다 입고 몸 담그거나 물가에서 모래집 짓기. 이렇게 죽는 거구나. 처음 죽음을 경험한다.
동네 어른들은 복날이면 새다리 밑에서 개를 잡는다. 덩치 큰 똥개 한 마리. 누렁이 아니면 흰둥이, 검둥이. 이름은 없다. 잡아먹으려고 키운 거고 한 해 살이라 이름 따위는 필요 없다. 아이는 다르다. 꼬물꼬물 강아지부터 함께 자라서 정 듬뿍. 해서 아이 눈 피해 다리 밑에서 몰래 사형 집행. 개는 모처럼 주인과 나들이다. 풀어놓고 키우던 개라 잘 따른다. 다리 아래에 튼튼한 밧줄을 건다. 개의 목에 채운다. 주인 하는 거라 저항 없다. 밧줄 끝을 당긴다. 허공에 뜬다. 개는 이때쯤 알아챈다. 숨이 막히니까. 버둥버둥. 몸이 빙빙 돈다. 어른 둘이 몽둥이로 머리를 겨냥해 사정 없이 내리친다. 이런 일에 익숙한 어른은 드물다. 게다가 고정 안 돼서 공중에 떠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에게 몽둥이 찜질. 살려고 발광. 빗맞는다. 수십 대 내리치다 보면 요동이 멈춘다. 맞아 죽은 건지 숨이 막혀 죽는지 숨이 멈춘 거. 밧줄 푼다. 장작불 피워 털을 태운다. 가마솥을 걸고 물 채우고 개를 삶는다. 건져서 개고기 잔치. 맛으로 먹는 거 아니어서 년에 한 번 살코기 배 터지게 먹는 거. 살기 위해 먹는 거 아니지만 여름 뙤약볕에 땀 뻘뻘 매일 일하려면 하루만이라도 고기로 채워야 했다.
서툰 어른. 마음 약한 어른. 기절을 잘못 알고 밧줄을 푼다. 깨어나 줄행랑. 밧줄 아니라 개줄이나 쇠줄. 이음매 끊기기도. 살기 위해, 몽둥이 세례를 피하려고, 막히는 숨을 이으려는 힘은 괴력이다. 밧줄이어야 버틴다. 되찾은 목숨 걸고 줄행랑. 초죽음에서 탈출한 개는 다시는 사람을 가까이 않는다. 동네에 얼씬도 않는다.
ㅡ새다리
큰개울을 가로지른 새다리. 어느날 철근 공그리로 기둥을 세우고 바닥을 깐다. 양 옆으로 아이 키 반쯤 높이로 난간을 수직으로 세워 사람이 떨어지는 걸 막는다. 난간 위는 아이 발바닥 둘 붙여서 꽉 찰 폭. 윗면은 빗물 흐로도록 약간 둥글다. 다리 건너 100여 미터에 학성국민학교. 학교 갈 때 다리 난간에 오른다. 중앙에서 시작해 십여 걸음. 곡예다. 떨어지면 뼈 뿌러지거나 죽거나. 하교 때는 않는다. 정신 집중 안 된다. 패랭이 꽃. 손톱만하다. 자줏빛 띠는 진분홍. 둥근 꽃잎들. 중앙에 원으로 띠 한 줄. 끝이 잔 톱니바퀴 모양으로 털. 씨앗 키워낸 엄마 흙과 헤어지기 싫은 양 낮다. 수송부대는 정문 앞 화단에 패랭이를 심었다. 해가 지나자 바람에 날린 씨가 브로꾸 담장 아래서 자란다. 등굣길 아침. 꽃자루 달린 채 몇 뜯는다. 다리 난간서 손 내밀어 꽃 하나를 수평을 맞추고 떨군다. 꽃이 뱅글뱅글 돌며 물 위로 떨어진다. 두둥실 두리둥실 꽃 배가 떠나간다. 구성바위 지나면 어디로 갈까. 아는 건 그 바위까지고 눈으로 보이는 건 원주가 다다. 저 멀리 아련히 산이 보이나 큰개울이 거기로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는 이 없다. 가을이면 코스모스. 이건 다르다. 커다라서 뒤집히거나 옆으로 기울거나 제못대로. 한 잎 따고 한 잎 건너고 한 잎 따고. 중간을 벌려야 떨어뜨리야 돌며 제 모양대로 수직으로 떨어진다. 패랭이 꽃만이 온전하게 팽그르르 돈다. 그래서 패랭이꽃일 거라고 떨굴 때마다.
ㅡ쌍다리
한겨울이면 쌍다리 아래로 물 가두어 빙상장을 만든다. 한쪽으로 좁게 길 내어 큰개울 큰 물을 급히 흘려 보낸다. 해마다 전국 스케이트 대회. 제방둑에 현수막. 서울 리라국민학교. 매해 참가했고 늘 우승. 노란색 유니폼이 폼 났다. 단체로 빙빙 돌면 줄지어 나는 나비 같았다. 서울 살다니. 잘 사니까 예쁜 옷 맞춰 입고 비싼 스케이트 사서 타고. 버스 대절해 타고 오고. 나는 앉은뱅이 스케이트 타다가 내가 만든 꼬챙이 외발 스케이트인데. 맨날 동네 개울에서 타는데. 부럽다. 말로만 들은 서울 아이들을 직접 보는 건 매년 두번. 다른 한 번은 여름방학이면 동네 친척 집에 놀러 온 또래. 봄이나 가을. 같은 자리에 서커스단. 다리 높이로 천막 치는데 며칠 걸린다. 큰누나가 돈 내고 같이 입장. 줄타기, 접시 돌리기. 어쩜 저리 잘 할까. 얼마나 훈련하면 저리될까. 한 달인가 하다가 손님 끊기면 철새처럼 떠난다. 해 지나면 다시 온다. 좀 커서 천막 들추고 도둑 관람.
그 자리 아래로 큰개울 이쪽 편 봉산동쪽으로 해마다 난장판이 섰다. 온갖 놀이들. 원판. 반은 빈 공간. 꽝이다. 나머지 반은 중심에서 햇살로 칸 10여.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었다. 5원 칸, 10원 칸 두 셋, 100원 칸 하나. 그리고 꽝 칸 여럿. 섞어서 그렸다. 가부좌 틀고 앉은 주인이 부른다. 한 번 해보라고. 원판을 내려다 보고 나도 아저씨도 쪼그리고 앉는다. 중심에 막대기. 끝에 실. 실 끝에 바늘을 달아 늘어뜨렸다. 바늘 끝이 멈추는 곳에서 돈이냐 꽝이냐. 아저씨가 막대기를 꽝 반 부분의 중간에 놓는다. 이렇게 하라면서 톡 친다. 100원. 다시 한 번. 10원. 두 번 다 꽝 아니다. 5원 내면 한 번이란다. 돈 낸다. 승부.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 친다. 휙 한 바퀴 돈다. 꽝. 너무 셋구나. 5원 낸다. 조심 조심해서 톡. 이번은 당첨판 근터도 못 가서 역시 꽝 칸. 5원 낸다. 힘 중간. 100원과 5원 사이에 꽝 칸. 이렇게 돈 다 잃어. 다음해. 난장판. 그 아저씨. 몇 번 실패. 요령이 붙는다. 오오, 100원 당첨. 그래, 바로 이거야. 이거면 그동안 잃은 거 다 복구하고 남는다. 돈을 안 준다. 왜요? 바람이 불었단다. 그런 게 어딨어요. 달래도 안 준다. 바람 안 불 때 두 번 다시 하란다. 돈은 안 내도 된다고. 꼬맹이가 무슨 힘이 있나. 엄마, 아부지에게 이르지도 못 한다. 나만 혼날 거라는 거 정도는 안다. 다시 두 번. 신온 신경 손가락에 모으고 온 힘 다 빼서 톡 쳐도 될까 말까. 억울하고 화 나고 될 리가 없다. 나쁜 아저씨. 두 번 다시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장판은 해마다 열렸다.
ㅡ철다리
기찻길이다. 서로 멀리 보이는 쌍다리와 새다리 사이. 일제 때 지은 그대로. 기둥 아홉인가에 8미터쯤 높이. 아래로 보. 중간 중간 문으로 여닫는다. 서쪽 끝으로 수문. 둑 넘어 물길은 큰개울과 평행 북으로 300여 미터. 광활한 정지뜰에 물 대려고 보를 막은 거. 공그리 구조물이고 아래쪽 평평한 폭 2미터여. 여기서 뛰논다. 다시 낙차 아이 키 높이. 폭포다. 아래로 집 두어 채만한 물 웅덩이. 짬뿌한다. 물바닥이 울퉁불퉁해 다이빙은 어렵지만 깊은 곳 골라서 풍덩. 공그리가 바닥에 닿은 면 여기저기 구멍이 패였다. 물 세찬 곳에서 상어 입 떡벌린 모습. 철근이 드러났다. 엎드려 안으로 기어들어가면 물이 차다. 들락날락. 위로 오르고 내리고. 몇 시간 후딱 간다. 봉산동, 평원동, 우리 태장동 아이들 공동 놀이터.
어른들은 가물어 물이 빠지면 나타난다. 위에 보를 막아 물길을 돌린다. 카바이트를 푼다. 산소 용접 하고 남은 찌꺼기. 희다. 독성. 모았다가 고인 물에 푼다. 상어 입에도 듬뿍. 뿌옇게 물이 흐려진다. 잠시 후 메기가 떠오른다. 수 십 마리. 큰 건 팔뚝만하다. 상어 아가리 에선 장어. 굵고 실하다. 태장동은 멀어서 권한 없는지 동네 매운탕 잔치한 적 없다. 아마도 이웃한 봉산동 주민일 거다. 웅덩이 반대편 평원동쪽은 얕고 바닥이 돌. 졸졸 흐른다. 뚜구리. 뚜구국 뚜구국. 온몸이 시커먼 놈은 손으로 잡으면 이를 가는 건지 겁 주는 건지 소리를 낸다. 손가락 두 개 크기라 지까짓게 위협해 봤자지. 검정 고무신에 물 담아 몇 마리 담는다. 집에 가져오면 금방 죽는다. 한여름이라 금방 상하고 양도 되지 않기에 버린다.
철다리는 모험이다. 큰개울 바깥으로 둑처럼 둔덕을 높이 쌓았다. 세 길 높이. 그위로 철로는 깔았다. 아래로 둑방길로 사람이 지난다. 철길을 기어서 오른다. 머리를 돌려 한쪽 귀를 한쪽 선로에 바짝 붙인다. 진동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기차가 오고 있는 거. 없으면 요이 땅. 120미터. 달리지는 못 한다. 선로를 받친 침목이 간격이 있는데다 허공. 발 헛디디면 몸이 빠져서 아래로 추락. 조심스럽게 그러나 잰걸음. 소리가 귀에 안 잡혔지만 감각일 뿐. 진동은 없지만 멀지 않은 거리에 기차가 달려오는 중일 수도. 비상 대책은 있다. 딱 중간 지점에 대피소. 사람 둘 들어갈 공간을 철골로 만들어 기찻길 밖으로 내었다. 거기 가기전에 기차가 철교에 들어서면 침목을 붙들고 매달린다. 그시간마저 없다면 뛰어내린다. 몇 번 건넜지만 청진기가 틀린 적은 없다. 안전 장치 하나 더. 기차가 철다리를 지나길 기다렸다가 이어서 건넌다. 이 열차가 반대편 역에 도착할 때까지 그쪽에서 기차가 나타날 일은 없으니까. 그 열차 뒤에서 연달아 다음 열차? 그런 걸 본 적 없다. 유사시엔 뛰어내리면 되니까. 뼈 부러지겠지만 죽지는 않는다. 그 높이는 안 해 봤지만 2, 3미터는 익숙하니까 요령은 안다.
ㅡ뚱뚱그지
쌍다리 아래. 봉산동쪽은 뚱뚱그지가 산다. 다리가 지붕, 기둥이 벽이다. 다리 아래와 기둥 사이로 사람 누울 공간은 방이다. 장마에 쌓인 흙더미는 방바닥. 여자 그지 둘을 늘 데리고 살았다. 자식도 있었다. 자리가 부족하자 개울 바닥이 거처. 기둥으로 붙여서 거적대기 둘러 한겨울을 난다.살이 찌고 배가 팽팽하게 동산처럼 불룩 나왔다. 원주거지 중 왕이다. 시민에게도 당당했다. 구걸 아니다.남은 밥 좀 달라 아니고 밥 달라. 그릇 아니고 양푼을 내민다. 거지 녀 둘과, 애들이 크자 가족이 함께 다녔다. 원주시를 순시하며 공물을 받았다. 가매기삼거리는 가끔 얼굴을 보였다. 평원동, 일산동이 부촌이었고 태장동 우리 동네는 그들 가족에게 내어줄 양식이 부족했다. 그래서 더 당당했다.
시민 누구고 뚱뚱한 사람은 없다. 하나같이 말랐다. 어른은 일하느라 아이는 뛰어노느라. 드물게 사무 보는 이 외에는 온몸이 다 근육질이었다. 세 끼 밥 외에는 먹을 게 없었다. 명절 날 배 터지게 먹어도 그날뿐. 소문이 돌았다. 유일하다시피 살이 쪄 전신이 뚱뚱. 보태서산같이 빵빵하게 부푼 배라니. 그 비밀을 원주 제일 큰 기독병원이 밝힐 거라고. 죽으면 배를 열어 볼 거라는.
큰개울은 말 그대로 큰 개울이었다. 북쪽 새다리 아래쪽은 여러 동네용큰 놀이터였다. 다리 아래로는 성자처럼 빈자와 그 가족을 품었다.
1968년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 세대 통역
짬뿌. jump
● 지금은
철로에 열차가 다니지 않는다. 원주시를 관통한 철로 대신 시 외곽으로 새로이 선로를 깔았다. 철다리는 그대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