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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Aug 02. 2020

겁먹으면 죽는다

38화. 응답하라 1968-놀이 편


비가 퍼부은 다음날.

봉천내를 건넌다. 100여 미터 넘게 헤엄쳐서.


집에서 봉천내까지도 100여 미터. 남쪽 삼거리에서 우로 돌아서 부대 정문을 지나면 새다리다. 다리 옆 제방둑은 흙길. 길에 붙여서 쌓은 수송부대 담장이 새동네 입구로 들어가는 길에 이르기까지 일자로 뻗어있다. 담장 바로 뒤로는 학교 교정의 깃대만큼이나 큰 미류나무들이 다 같은 키로, 집 두 채 간격에 한 그루씩 담장과 나란히 일렬로 서 있다. 무성한 푸른 잎들은 실바람에 제각기 날개짓하면서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낮에 보는 밤하늘의 별 같다. 담은 누가 들여다 보지 못 하게 어른 키높이보다 높게 부로꾸로 쌓았다. 그 위로는 전쟁터인 양 아무도 넘어오지 못 하게 크게 회오리로 말은 철조망을 얹었다.


제방둑 길에서 봉천내를 내려다 본다. 폭우로 내가 온통 황토빛으로 물들고 불어서 강 같다. 누런 물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꽉 찼다. 강 이 편은 둑 아래부터 물이 빠르고 깊다. 가운데를 지나면 반대 편 둑으로 갈수록 점점 느리고 얕아진다.


둑은 크고 널따란 돌로 경사지게 쌓았고, 제멋대로 찢은 도화지를 이어서 붙인 거 같다. 그 돌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비탈에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고, 돌과 돌 사이에 작은 발이 끼이지 않게 너른 돌만 찾아서 밟는다.


자리를 잡는다. 목으로 넣어서 허리에 두르고 가져간 주부를 다리로 빼내서 돌위에 놓는다. 그 위에 옷을 벗어 던진다. 옷이래 봐야 반바지, 난닝구가 전부니 홀딱 벗은 거다. 허리를 굽혀 양손을 모아 물을 떠서 가슴부터 시작해서 대충 몸을 적신다. 돌에 걸터 앉아서 다리부터 물에 담그고는 엉덩이를 고인 돌을 양팔로 밀면서 몸을 앞으로 내민다. 물 묻혀서 떼어 낸 수제비 반죽을 국물에 밀어 넣듯 슬쩍 몸을 물속으로 밀어 넣는다.


차다. 몸이 쑥 가라 앉는다. 깊다. 숨을 한껏 들이쉰다. 머리가 꼴락 잠긴다. 다리가 바닥에 안 닿는다. 바닥까지 깊이를 알 필요는 없다. 손, 발을 급히 휘저어서 고개를 물 위로 내밀고 입으로 푸우 물을 털어 내면서 참았던 숨을 내쉰다.


잠간 사이에 벗은 옷이 멀어져 간다. 세차게 흐르는 물에 꼬구라져 젖은 종비배 처럼 몸이 떠내려 간다. 얼른 몸을 물에 둥실 띄우면서 왼쪽으로 기울이고 누워서 헤엄을 치기 시작한다.


옆헤엄이다.


왼쪽 귀는 잠기고 오른쪽 귀를 물위에 두고, 코와 입으로 숨을 쉰다. 이 자세로 눈은 강 아래를 향하게 되고, 쪽에 남은 거리를 잴 때만 고개와 눈을 앞쪽으로 돌려서 본다. 왼팔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굽은 팔을 펴면서 나아가는 쪽으로 내밀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서 몸 아래쪽 물로 깊숙히 집어 넣어 팔이 몸과 일직선을 이룰 때 손바닥을 국자처럼 오므려서 물을 담듯이 몸 쪽으로 당긴다. 오른 팔은 손바닥을 뒤를 향하게 하고 가슴에서 바깥쪽으로 시계 방향으로 왼팔과 같은 속도로 크게 원을 그리면서 수면 가까이에서 물을 뒤쪽으로 밀어낸다. 팔과 동시에 양발은 가위질 하듯 왼 발은 작게, 오른 발은 크게 천천히 흔들어서 물을 찬다.

 

옆으로 누워서 양팔, 양다리를 쉬엄쉬엄 저으니 몸이 앞으로 서서히 나아간다. 칼헤엄보다 느리고 개구리헤엄 보다 빠르다. 힘이 덜 든다. 머리는 처들지 않고 물을 베고 옆으로 누우니 편안하다. 급할거 없고 갈 길이 머니 서두르지 않는다. 급류에 몸을 맡겨서 떠내려 가면서 앞으로 서서히 나아간다.


한참 하면 힘들다. 자세를 반대로 바꾼다. 윗쪽 새다리가 보인다. 이번엔 왼팔, 왼다리를 크게, 반대쪽 팔다리는 작게 움직여서 물을 휘젓는데 드는 힘을 나눈다. 흐르니 물에 떠 있으니 역시 떠내려 가면서 앞으로 간다.


한참 하면 힘들다. 슬쩍 몸을 비틀어서 물 위에 눕는다. 턱을 위로 한껏 치켜 들고, 양팔을 앞으로 뻗어 옆으로 원을 그리고, 양다리를 조금 굽혔다, 폈다하면서 털듯이 찬다. 팔은 천천히, 양다리는 빨리. 앞으로 가지 않지만 가라 않지도 않는다. 머리가 둥둥 떠서 쉬는 거다.


몇 번 자세를 바꾸고, 몇 번 쉬면 강 가운데다. 한참을 왔는데 강 가운데서 남은 갈길을 내다 보면 맨 제자리 같다. 강 폭은 물 가에 서서 본 거보다 수면에서 눈 높이로 본 게 네 배는 넓다. 강 어디쯤 왔는지는 새다리를 떠받들고 서있는 기둥들 순서를 보고 가늠한다. 고개를 처들고 앞을 보는 건 거리보다 방향을 잡기 위해서다.


다시 두어 번 자세를 바꾸고, 두어 번 쉬면 남았던 반의 반을 더 다. 역시나 수면을 내다보면 제자리 같고 갈길이 한참 멀지만 다리 기둥을 보면 거의 다 온거다. 지친다.


옆으로 누운 몸을 세워서 몸으로 깊이를 잰다. 숨을 한껏 들이쉰다. 다리가 바닥에 닿는다. 물이 목까지만 찬다.

조용히 숨을 내 쉰다. 깊은 데는 지났다.


헤엄은 그만. 바닥에서 발끝이 살짝 떠서 두둥실 구름 위를 걷는 둥, 바닥을 딛는 둥 나아간다. 양 팔을 휘저어 중심을 잡는다. 쯤으로 물이 내려오면 몸을 앞으로 숙이고 발로 바닥을 뒤로 밀면서 걷는다. 물이 무릎 아래면 철벅철벅 걸어서 둑에 오른다.


봉천내를 둑에서 둑까지 건넜다. 이쪽 둑 깊은 데서 시작하면 맞은 편 둑 저 아래 얕은 데서 끝난다. 한참을 떠내려간 거다. 쉬엄쉬엄 왔지만 목이 엄청 마르다. 무척 지쳤다.


넷이 가서 셋이 건넜다. 한 명은 저 멀리 건너편 옷 벗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준이다.

 


 


-----


 



셋 다 도착한 곳이 다르다. 물 흐르는 건 같은데 각자 힘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곳에 모여 쉰다.


다 같이 강변을 따라서 다리 쪽으로 가서 둑을 오른다. 다리 끝에서 여자가 오나 살핀다. 없다. 100미터 달리기. 빨개벗었으니까.


주부 옆에서 준이가 기다리고 있다. 또래 중 준이만 헤엄을 못 쳤다. 성깔이 있는데 유독 물을 무서워한다.

우리가 가르쳤다. 고인 물에서 같이 헤엄치러 여러 번 다녔다. 물하고 친해졌다.


이번엔 흐르는 물이다. 꽉 찬 봉천내. 준이에겐 첫 도전이다.


셋이서 강을 건너 보라고 한다. 쉽다고. 준이가 망설인다. 셋이서 건너는 거 보지 않았냐고 말해준다. 준이가 망설인다. 떠내려 가도 된다고, 앞으로만 가면 된다고 말해준다.준이가 망설인다. 다 안 가도 된다고, 중간만 지나서 조금  더 가서 서면 된다고 말해준다. 준이가 망설인다. 고인 물에서 한대로, 배운대로만 하면 된다고 말해준다.


마침내 준이가 옷을 벗는다. 꽉 찬 봉천내를 건너는 건 준이에겐 첫 도전이다.


물에 들어가 헤엄을 시작한다. 한 번도 뒤를 보지 않고 앞으로 간다. 강 가운데를 지난다. 남은 반의 반이 가깝다. 조금만 더 가면 발이 바닥에 닿으니까 서면 된다. 거의 다 건넌 .


갑자기 준이가 우리 쪽으로 몸을 튼다. 쪽을 향해 헤엄쳐 오기 시작한다.


돼!! 돌아가. 조금만 더 가면 돼.

안돼!!! 오지마. 오면 안돼

안돼!!! 겁먹지 


우린 셋 다 양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입에다 대고 바락바락 소리친다. 아무리 고함쳐도 소용없다. 몇 미터만 더 가면 설 수 있는데, 이쪽으로 오면 너무 먼데, 점점 더 깊어지고, 점점 더 물살이 센데, 힘이 남지 않았을텐데, 돌아오다니.....


준이가 겁을 더럭 먹은 거다. 제대로 집어 먹은 거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니까, 우리 쪽을 돌아봐도 끝이 안보이니까, 힘은 빠지고, 이러다 죽겠다고 왕창 겁을 먹고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쪽으로 가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준이는 살겠다고 죽어라고 헤엄친다. 이 편으로 오면서 물따라 흐른다. 오는 게 갈 때보다 더디고, 물살에 떠내려 가는 건 빠르다. 힘이 빠진 거다.


우린 준이를 바라보다 말고 물가에서 준이를 따라서 쫒는다. 준이가 가운데를 넘고 이쪽 나머지 반의 반을 지나서 우리 앞까지 왔다. 젤 깊고 젤 물살이 센 곳이다.


맥아리 없이 떠내려 간다. 힘이 다 빠진거다. 준이 머리가 물에 잠겼다, 떠올랐다한다. 이대로면 죽는다.


우린 떠내려 가는 준이를 보면서 던져 줄 걸 찾는다. 나무, 줄..... 없다. 사방에 박힌 돌 뿐이다. 있다. 주부. 빛의 속도로 날아가 주부를 가져 온다. 거리를 잘 맞춰서 준이 바로 앞에 힘껏 주부를 던진다. 준이가 잡았다. 준이는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났다.


준이는 옆헤엄을 못 친다. 칼헤엄, 개구리헤엄만 배웠다. 거의 다 갔고, 쉬지 않고 거의 다 되돌아 왔으니 준이는 죽을 힘을 다한 거다.


봉천내를 왕복한 건 준이가 처음이다.


아무도 집에가서 엄마, 아부지 한테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강을 건넌 것, 준이가 죽을 뻔 한 것을. 말하면 못 하게 하니까.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세대 통역



주부 = 차 바퀴에 넣는 튜브. 바퀴에서 빼내서 바람을 넣어서 물놀이에 쓴다.






지금은



봉천내 폭은 같다. 다리가 120미터. 다리 표지판에 써있다.

양쪽에 둔치를 만들어서 물길을 한가운데 냈고 좁다.

밤새 폭우가 내리면 둔치 위까지 물이 차서 주차한 차들이 떼로 둥실둥실 떠 내려가기도 한다.  


가매기 신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다.

영원할 것 같다.

이젠 봉천내에서 수영을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준이 따라할 이유도 없다.





팁 1




애들 일이라고 무시하면 당신도 위험하다. 폭은 물 가에 서서 본 거보다 수면에서 눈 높이로 본 게 네 배 이상 훨 넓다. 100미터로 보고 들어 갔는데, 반을 가서 남은 걸 봐도 아직도 200미터. 애들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애들 일이라 무시하면 당신도 위험하다. 물에서 겁먹으면 대책없다. 반을 왔으니 반 50미터 남은 게 맞다.

애들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물을 겁내지 않는 게 가장 위험하다.

 




팁 2




옆헤엄은 장거리에 유용하다.

수영 경기 종목에 배영, 평영은 있으나 측영은 없다.

  

 



잊혀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6.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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