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후. 치킨집 주방 창가에 서서 도마 위에 닭을 손질하고 있었어요. 머리에 번개가 내리쳤나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어, 내가 왜 이렇게 심각하게 살지? 웃어본 게 도대체 언제야? 명랑 쾌활 긍정의 아이콘이었던 내가? 이렇게 걱정만 하다가 어느 날 죽는 거야?결혼해 가족 부양의 의무를 다하느라, 사업에 한 번 대실패 해 빚더미에 짓눌려서, 빚과 이자 갚느라 웃음을 점차 그러다 완전히 잃었던 겁니다.
근데 지금은? 우선 건강은? 중풍, 당뇨병 가족력으로 아버지 50세에, 3남 3녀 형제자매 중 다섯이 40세 넘어 쓰러지거나 치료 중인데 나만 아직 사지 멀쩡해 걸어 다니고 치매 없어 정신 온전하고. 가족은? 어머니는? 사랑 독식한 장남으로서 효도 제대로 못하고 아버지를 잃어서 어머니라도 모시고 살려고 25년 전 고향 내려왔고, 결혼해 며느리, 떡두꺼비 손자 둘 보고 다 함께 행복하게 살다 2년 전 보내드렸고. 아내는 말 많은 내 얘기 잘 들어주고, 아들 둘 잘 자라 장성했고. 집은? 아파트 있고. 상가 건물 2층짜리 조그만 거지만 있고, 수입차. 싼 맛에 맨날 중고 똥차들만 몰다가 잘 나갈 때 생애 최초로 산 새 차였지만 지금은 주행거리 20만 키로가 넘어 경차 반밖에 안 되는 시세지만. 내 건물서 하는 치킨집 직업 있고. 그러니까 대충 중산층. 현재 가진 걸 건. 아. 집. 상. 차. 직 일곱 자로 축약해 외워 다니기로 했습니다. 즉 건강, 아내와 아들 둘, 집, 상가, 차, 직업. 돈 욕심나면 단칼에 자르려고요.
내가 없거나 부족한 건? 돈이네. 빚은 다 갚았고. 그렇지만 필요하지. 생활비 좀 부족하고, 학비도 보태야 하고, 아들 둘 장가도 보내야 하고, 노후도 대비해야 하고, 차도 수리비가 부담되니 새 차로 바꾸면 좋고. 헌데 웃지 않으면 돈이 해결되는 거야? 나이가 벌써 57세 환갑이 다가오는데? 아님 웃으면 돈을 못 버는 거야? 나머지 생도 화난 얼굴, 경계의 눈으로 우거지상 하고 살아야 하는 거야? 이건 아니지.
하하하하. 일부러 입 한껏 벌리고 고개 젖히고 호탕하게 웃어보았습니다. 누가 보면 미친 사람처럼요. 이날부터 우그러진 상 펴고 입 벌려 이빨 보이며 활짝 웃기로 작정했습니다.웃는 게 돈이 드나요? 품이 드나요?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기분 좋아지고요. 나이 들어서 일부러 웃지 않으면 웃을 일이 아예 없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