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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매기 삼거리에서
Aug 10. 2020
비가 오면 밖에 못 나간다.
집에서는 놀 게 없다.
그러니 비하고 논다.
처마 물 받기
처마 끝에서 빗물이 줄줄줄.
양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양손날을 딱 붙이고 힘주어 꾹 누른다.
떨어지는 처마 물로 양팔을 뻗는다.
좀 있으면 빗물이 가득.
손바닥을 위로 말면서 붙은 손날을 벌린다.
빗물이 왈칵 땅으로 쏟아진다.
처마 물 받고 쏟고, 또 받고 쏟고, 다시 받고 쏟고.
혼자니 재미없다.
처마 밖으로 밀기
처마 밖은 비가 죽죽죽.
처마 밑에 또래가 있으면 뒤로 슬쩍 다가가서 등을 빗속으로 확 떠민다.
깜짝 놀라서 처마 밑으로 후다닥 돌아온다.
녀석도 복수한다고 날 민다.
서로 민다.
빗속으로 내밀리지 않을라고 버둥버둥.
재미있다.
처마 밖으로 뛰기
처마 밑에서 빗속으로 몇 걸음 휙 뛰어 나갔다가 잽싸게 돌아온다.
한두 번 하곤 끝이다.
많이 하면 다 젖으니까.
둘이 경쟁하면 재미있다.
몇 번 더 한다.
처마 밖 지렁이
처마 밖 신작로 가에 지렁이 한 마리.
젓가락 굵기, 그 반 길이에 고추장 처럼 붉은 색.
구불구불 흔적은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길이 없다.
꿈틀꿈틀 기는데 어디로 갈 건지 알 수도 없다.
녀석은 그냥 젖은 땅 빗속에서 노는 거.
검정 우산을 쭉 밀어서 활짝 편다.
지렁이를 내려다 보고 쪼그리고 앉는다.
작은 나뭇가지로 지렁이를 툭툭 건드린다.
꿈틀꿈틀
건드린다.
꿈틀꿈틀
건드린다.
꿈틀꿈틀
재미없다.
나뭇가지를 지렁이 허리에 걸고 들어 올려서 빗속으로 휙 내던진다.
1968년경 꼬맹이때. 그땐 그랬다.
지금은
애들은 몸으로 안 놀고 눈으로, 손가락으로 논다.
잊혀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7. 07.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