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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Aug 12. 2020

똥통의 역사와 구더기의 정체성

응답하라 1968 - 주거편


= 고교 반창 밴드에서 친구와 꼬맹이 때 추억에 푹 빠져서 =




친구의 댓글.




이부분 명확히. 변소에는 오줌통과 똥통이 있었어. 오줌 통에는 오줌만 누었는데 여름날 오줌통에 지린다는 똥통 보다 더 지독해. 구더기 모양도 달라 똥통에 구더기는 약간 동글동글 한 반면 오줌통에 구더기는 뾰족하고 길어서 오줌 속에서 헤엄쳐 다녔. 오강은 주로 방에 있었는데 밤에 오줌이 마려우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기에다가 쌌지.그리고 아침이면 그 오강을 들고 나와서 오줌통에 쏟아 부었던 거야.자칫 실수하면 오강채 오줌통에 빠트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막대기로 휘휘 저서 그것을 건져 올리기가 보통 어려운게 아니었어. 그 오줌이 어느 정도 차면 오줌 바가지로 퍼서 잿더미 위에 부어서 그 재를 거름으로 썼던 거야. 그러면 그것은 농작물의 자양분 역할과 병충해 방지라는 두 가지 효과가 있었지 나도 가매기 덕분에 많은 것을 기억해 내네 ㅎㅎ




내 댓글.




1. 똥통과 오줌통의 역사


ㅡㅡ양 통 분리 두 가지 목적

하나, 오줌통만큼 똥통이 덜 차니 푸는 일 덜고,

둘, 오줌만 수시로 비료로 쓸 수 있다.

ㅡㅡ양 통 차이점

해서 똥통은 커다란 도라무깡을 통째로 땅에 묻고 년에 한 번 정도 퍼내고, 오줌통은 들고 옮기기 쉽게 적절한 크기로 고리가 달린 빠께쓰를 흔히 씀.

ㅡㅡ우리집 양 통

똥통, 오줌통 분리는 고등학교때쯤인 듯. 동네 내 다른 집으로 이사가고 나서.
가매기 삼거리내에서만 이사 다섯 번. 길 양쪽, 개울 이편과 저편, 동네 끝과 가운데니 온동네 다 살아본 셈. 그래봤자 100여미터 이내지만. 97년 처음 아파트 입주전까지. 그 아파트도 동네서 걸어 5분 거리 젤 가까운 태장1동내.

겨울 똥

양 통 분리전 그니까 똥 오줌 통합 변소는, 개울 바로 옆에 지은 초가집에 붙여서 지은 거라, 역시 개울 바로 옆이어서 매년 개울로 퍼낼수 있었어.
여덟 식구 똥, 오줌 합쳐서 일년 모인 총량이 도라무통 하나 분량이었던 셈.
대신 겨울 똥은 산처럼 쌓여 아래가 넓고 위가 뾰족하게 발판 정중앙을 향해서 날마다 쑥쑥 자라니 정상 부분을 수시로 삽으로 잘라 아래로 밀어내려야.

운 없는 자

이건 담당이 따로 없어. 식구들이 서로 미루다 뾰족탑이 발판 위로 고개 내밀고 마침내 똥꼬까지 찌르게 되어 도저히 정상 자세로 똥눟기가 어렵게 될 때 마침 똥 매려운 식구중 하나가 어찌할 도리 없어 삽을 들게 됨. 이때부터 6 형제 자매간 신경전이 시작되는데 난 그래도 남자라 나 쌀 부분만 자르지 않고 가능한 넓게 식구들이 똥 쌀 자리를 마련하는 편.

봄이 오면

장마때 바닥까지 비운 똥통이 가을까지 얼마간 차고 겨울되면서 얼고 그 위로 산 모양으로 쌓이고 한겨울에 삽으로 자르다보면 어느새 봄이 옴 녹아서 평평해짐. 그리고 장마되면 똥통이 가득 차고 아부지가 바닥까지 퍼내고. 이게 똥통에 든 똥의 일생. 한해살이.

허공이 똥통

나 꼬맹이때 이후 울집 역사 최초 변소는 초가집때 개울 위로 허공에 지었다는 거. 아부지는 개울 바닥에 굵은 나무로 기둥을 박고 그 위로 판자로 광을 지었지. 한 켠에 바닥에 길다랗게 구멍을 내니 그게 변소. 똥 누면 바로 한 길 높이 개울로 폭탄 투하.
골 때리는 건 똥 싸면 개울 길이나 다리 지나다 떨어지는 게 보여.
더욱이 겨울엔 얼어서 개울바닥부터 산처럼 쌓이다가 발 디딤까지 치솟지.
챙피해서 변소가기 싫잖아. 해가 갈수록 대가리가 크니까.
식구들 특히 누나 둘이 강력히 항의.
나도 소원이 제발 남들처럼 똥통 있는 변소에서 똥 눟는 거. 남들이 내 똥 떨어지는 거 못 보게.
마침내 아부지가 개울가로 집에 붙여서 도라무깡 묻고 변소를 지음.
그때부터 여름 장마로 개울물이 세차게 흐르면 아부지는 일 년치 똥 푸는 날. 전국 개울가로 변소낸 집들 다 그런 날.

ㅡㅡ정리하면,

우리집 똥통 역사는 6단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

ㅡ초가집때 똥통 없이 허공. 똥 안퍼도 됨.
ㅡ지붕 스레트로 바꾸고 똥 오줌 통합 도라무 똥통 신축. 개울로 퍼내기
ㅡ기와집으로 이사. 변소 안에 오줌통 따로. 다섯 세대 공용. 똥차에 돈 주고 퍼냄.
ㅡ똥 오줌 통합 똥통 세 칸 신축
ㅡ스라브 신축하면서 정화조. 욕실에 수세식. 군 제대 후 가을 하기 복학까지 두 달 사이 내가 업자 선정해서 건축.
ㅡ그다음 아파트


2. 오강의 올바른 이해


ㅡ오강은 겨울밤에 쓰지 않았나? 식구들이 다 함께 쓰고. 춥지않은 계절엔 방 밖에 나가서 변소나 하수구에 누고. 내 기억이 잘못일 수도.

ㅡ울 엄마는 여름 낮에도 오강에 오줌을 모았어. 비료로 쓰려고. 농사, 텃밭 아닌 빈땅에 호박, 가지 정도라 대량은 필요 없었어.  

ㅡ나도 오강 똥간에 빠뜨린 적 있는 거 같아. 똥간에 빠진 오강을 건지는 건 무지 어렵지. 오강이 속 빈 호박같이 둥글 살짝 납작 수박만하고, 터진 덴 위인데 그마저 동그란 원. 위에서 작대기로 암만 건지려해도 걸리는 데가 없어.ㅋㅋㅋㅋㅋ 게다가 쏟는 중에 빠져서 남은 오줌이 들어 있어 무게도 제법. 직선인 작대기는 택도 없고 쇠스랑으로 힘, 각도와 요강의 무게 중심까지 삼박자를 아주 세심하게 맞춰야 가까스로 성공. 장비와 고도의 노하우 필요하니 애들은 빠뜨리고 건지는 건 아부지 몫.

ㅡ오강을 빠뜨리는 건,

가. 오줌 뭍을까봐 터진 입구를 손가락으로 걸지 못 하고 둥근 허리 양쪽을 양손바닥으로 눌러 어정쩡하게 잡고

나. 둥근 오강을 기울여야 오줌이 아래로 쏟아지니까 양 손목이 수평을 유지 못 하고 꺾이면서 오강 잡은 양 손바닥의 마찰력이 떨어지는데다 쏟아지는 오줌이 손에 묻거나 옷에 튈까봐 겁 먹고

다. 쏟을 때 오줌이 보이니 더럽고 냄새가 독해 확 올라오니까 집중 못 하고 얼굴을 돌리거나 하게 되고

라. 겉면이 반질반질 매끄러워서 놓치기 쉽지. 오강 양옆으로 귀나 주전자처럼 손잡이를 달았으면 히트 상품 됐을 거.ㅎㅎ

ㅡ국민학교 가니 요강이 표준어라고 가르침.


3. 구더기의 정체성


ㅡ친구가 구더기 2종과 둘의 차이점 발견한 건 놀라운 관찰력. 이에 자극 받아 심도있게 놈들에 대해서 고찰.

마릿수가 적은 건 수시로 비워서 같고, 길고 뾰족한 건 못 먹어서 아닐까? 똥통은 먹을 게 널렸고 거길 탈출한 구더기가 발판 주위 흙에 보이잖아. 개네들이 오줌통 기어올라 들어간 거? 못 먹고 무식하게 오르고 또 오르기만 하니까 살 빠져 날씬한 거? 그래서 힘 빠져 오줌통에 빠져 허우적? 일부러 다이빙한 건 아닐테고.

헌데 구더기는 왜 죽어라고 기어오르지? 마른 곳을 찾는 건가?

ㅡ구더기 맞추기는 똥눟기의 피날레

똥 눟고 나서 밑 닦은 신문지 뭉쳐서 도라무 똥통 기어오르데 성공한 구더기 중 젤 높게 오른 놈 겨냥해 던져서 한 번에 맞춰 떨어뜨리면 기분 째지지.ㅋㅋㅋ 안 맞으면 똥간에 걸어둔 신문지 조각 뭉쳐서 맞출 때까지. 이건 엄청난 낭비고 엄마가 알면 혼나니까 나만의 비밀. 신문지도 귀했잖아.

ㅡ반세기 전 일이라 기억의 오류는 있을 수 있어~

ㅡ단순히 똥 얘기 하려는 거 아니란 건 알지 대개들~

ㅡ친구 덕에 나도 심오한 고찰~ㅋㅋ

헌데 50년, 40년전 일이 뇌라는 이름의 사진첩에 차곡차곡 쌓여있어.





잊혀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 '응답하라 1968 - 베이비 부머의 기록'에서




2020.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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