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조심해라

생각놀이ㅡ삶이란

by 가매기삼거리에서


쓰레빠 끌고 담배 피러 아파트 현관을 나선다. 스맛폰 보며 천천히 걷는다. 비온 뒤 물 먹은 바닥 벽돌과 밑창의 마찰이 있어서 그런가, 쓰레빠가 헐렁해서 그런가, 순간 현기증인가 몸이 균형을 잃으며 앞으로 기우뚱.

엎어지지 않으려고 양발을 급히 번갈아 서너 걸음 크게 떼어 앞쪽으로 내디디며 저항. 전날 운동으로 대퇴근이 뻐근해서 그런지 양다리가 유난히 묵직하고 느리다는 걸 느낀다.

거대한 통나무처럼 바닥에 꽈당.

왼손에 들고 있던 스맛폰이 체중에 눌려 깨질라 휙 내던지며 손과 팔을 수평으로 바닥을 짚는다. 다행히 양 팔꿈치만 조금 긁힌 정도.

확실히 반응이 늦다.


전같으면 엎어지는 속도보다 내딛는 발걸음이 빨라 넘어지지는 않는데. 건강 검진 삼아 3년전 찍어본 뇌 CT 사진에 검게 쪼그라든 게 운동 신경도 확 늦춘 거다. 근력을 키워도 신경 반응 속도는 어쩌지 못 하는 거다. 나이든 거 실감한다. 노인 낙상 사고가 마냥 남의 일이 아닌 걸 처음 깨닫고는 놀란다.


서글프다.


허긴 예전이면 노인 인증 환갑 잔치할 나이 아니던가. 40대면 픽픽 쓰러지는 중풍 가족력 있지만 내게는 아직 오지 않아서 사지 멀쩡해 잘 걷고, 치매 아니어서 머리 쓸 만하니 이만하면 다행이지. 그러면서 혼자서 내가 나를 위로해 본다.

스맛폰.


화면이 평평한 채 바닥에 세게 부딪쳤다. 깨졌겠구나 체념하며 살펴보니 보호 필름이 가장자리로 서너군데 콕콕 찍혔다. 벗겨내니 액정은 멀쩡해 빛이 번쩍번쩍. 깨졌으면 새 거 사는 기쁨보다 기종 고르랴, 요금제 선택하랴, 계약서 작성하랴, 보험 청구하랴 엄청난 번거로움을 덜었다는 게 마음 놓인다. 몸뚱아리 패대기치는 와중에 스맛폰을 건지다니 맛이 간 건 아니구나, 걸음만 주의하면 당장 별일은 없겠군. 반 억지로 안심해 본다.

시력만 나이를 거꾸로 먹나 스맛폰 펼친 손을 멀리 내밀 뿐 자판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건 전혀 지장 없다. 건강 검진서도 전보다 좋게 나오고 이리 글 끄적이니 큰 복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했나. 벌써 가셨건만, 여즉 큰 고장 안 나고 잘 쓰고 있는 몸을 주신 어무이, 아부지께 새삼 감사드린다.


"길 조심해라. 다친다."


수 없이 듣던 부모님 잔소리가 유난히 그립다.


2020.09.09




o 그후



1년 반 후



2022.02.21. 분당서울대병원 건강검진 결과.


좌측 추골동맥 폐쇄 발견. 우측 중대뇌동맥, 우측 추골동맥, 양측 내경동맥에서 협착을 동반한 죽상경화성 변화 발견


2022.02.29.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심근경색으로 관상동맥에 세 곳 스텐트 시술.


뇌혈관 막힌 거나 심혈관 막힌 거나 원인은 같아서 당뇨, 고지혈증.


2023년. 7월.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위암 진단. 다행히 초기라 ESD. 위 절제 않고 내시경 박리 시술.


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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