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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Sep 25. 2021

친구 여섯

삶과 죽음은 하나

내게는 친구가 여섯 있어

동갑내기 셋과 나이 차이 셋  


곧 60세 한 바퀴 돌면 다시 한 살인데

나이가 무에 그리 중요할까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

내가 아는 사람들

100년이면 다 사라지고

다시 100년 지나면 다 잊혀질 거

같이 살며 사랑하며 서로 알아주면

그게 다 친구지   




하나    




언제 처음 만났는지 기억은 없어  


어느 날 난 그의 씨가 되었지

씨는 피를 받아 몸이 되고, 얼굴이 되고, 그리 열 달 되고

처음 만나는 날

그는 나에게서 생명의 기적을 보았고 삶의 이유를 찾았어

그는 내게 주기만 했지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고, 가르쳐 주고

그리고 온전히 믿어 주고, 한결같이 사랑해 주고

평생 받지는 않고 주기만 했어

그러다 어느 날 영영 날 떠났지

영원한 이별 후에야 뼈저리게 부재를 느꼈어    


아부지, 어무이 말일세    


내 나이 57세

아부지, 어무이도 57세 때가 있었어

내 나이 첫돌, 10세, 20세, 30세, 40세, 50세

아부지, 어무이도 첫돌, 10세, 20세, 30세, 40세, 50세 때가 있었지    


나이 들어서 돌아보니

시차만 있을 뿐 같은 나이를 살았던 게야

부모의 삶이 이해되고 공감되는 거야

그렇게 노년을 살아가것지   


우정이란

서로의 삶의 동심원을 공감해 주는 것이어서

다른 삶이지만 같은 추억에 뿌리를 두고 평생 키워가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제 부모야말로 친구 중에 친구 아니것나  


내게 생명을 선물한

그리고도 바보같이 받지는 않고 주기만 한

심지어 목숨까지도 아까워 않는

나와 한두 세대 같이 살다가

나보다 한 세대 먼저 갔을 뿐인

그리운 사무치게 그리운 나의 친구    


사람들은 부모라 하지만

난 이제부터 감히 친구라 부르려 하네    




두울    




30살에 처음 만났어    


이듬해 어무이, 형제, 지인들 모신 앞에서 굳게 약속을 했지

서로 사랑하며 자손 낳아 기르고

어무이 모시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아내 말일세 


내 나이 57세

아내는 51세

내 나이 첫돌, 10세, 20세

아내도 첫돌, 10세, 20세 때가 있었지  


나이 들어서 돌아보니

공간만 다를 뿐 같은 나이를 살았던 게야

그리고 살 섞고 부대끼며 같이 산 지 25년

아내의 삶이 이해되고 공감되는 거야

그렇게 함께 늙어가것지    


우정이란

서로의 삶의 동심원을 공감해 주는 것이어서

다른 삶이지만 같은 추억에 뿌리를 두고 평생 키워가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제 아내야말로 친구 중에 친구 아니것나    


내게 자식을 둘이나 선물한

바보같이 자신보다도 나와 아들 둘이 전부인

어무이를 나보다 더 잘 모셔준

나와 한 세대 가까이 살 붙이고 살고 있는

너무나 익숙해져 이제는 그녀의 부재를 상상조차 하기 어렵고

나 없는 그녀가 걱정되어서

내가 딱 하루 먼저 세상을 뜨길 바라는

사랑하고 고마운 너무나 고마운

나의 반쪽인 나의 친구    


사람들은 아내라 하지만

난 이제부터 감히 친구라 부르려 하네




세엣    




32살, 34살에 각각 처음 만났어   


어느 날 녀석은 나의 씨가 되었어

씨는 내 피의 반과 아내 피의 반을 받았고

몸이 되고 얼굴이 되고 그리 열 달 되고

드디어 서로 처음 만나는 날

녀석의 첫 울음소리에

나는 생명의 기적을 보았고 삶의 이유를 찾았지

내 눈을 마주 보고 처음 압빠 라 하며 날 부르고

처음 뒤집고, 처음 기고, 첫걸음 떼고, 첫 학교 가고...

하나하나가 기적과 같아서

고단한 삶에 희망의 횃불이 되었지    


자식 말일세  


내 나이 57세

자식은 20대 청년

내 나이 첫돌, 10세, 20세

자식도 첫돌, 10세, 20세 때가 있었지    


나이 들어서 돌아보니

시차만 있을 뿐 같은 나이를 사는 게야

20대 청년 되니 아부지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시작하는 거야

그렇게 나처럼 삶을 살아가것지    


우정이란

서로의 삶의 동심원을 공감해 주는 것이어서

다른 삶이지만 같은 추억에 뿌리를 두고 평생 키워가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제 자식이야말로 친구 중에 친구 아니것나   


내게 삶의 이유와 환희와 희망을 선물한

내 목숨 하나쯤 바쳐도 아깝지 않은

나와 두어 세대를 함께 살다가

내가 한 세대 먼저 갈 뿐인

사랑하는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분신인 나의 친구  


사람들은 자식이라 하지만

난 이제부터 감히 친구라 부르려 하네    




네엣    




알수록 알 수 없는 녀석이 있어    


녀석은 지킬과 하이드처럼 두 얼굴을 가졌지

정신과 육신, 선과 악, 감정과 이성, 사랑과 증오, 신뢰와 배신,

배려와 이기심, 긍정과 부정...

둘은 툭하면 다투지

오죽하면 녀석 때문에 철학이라는 학문까지 생길 정도지만

그래 본들 종잡을 수 없다네


나도 모를 나라네    


내 나이 57세

녀석 나이도 57세

내 나이 첫돌, 10세, 20세, 30세, 40세, 50세

녀석도 첫돌, 10세, 20세, 30세, 40세, 50세

나와 똑같이 나이를 먹었지    


나이 들어서 돌아보니

잊고 지냈던 녀석이 보였고

녀석의 삶이 이해되고 공감이 되는 거야

그렇게 함께 살아가것지


우정이란

서로의 삶의 동심원을 공감해 주는 것이어서

다른 삶이지만 같은 추억에 뿌리를 두고 평생 키워가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나야말로 친구 중에 친구 아니것나


내게 나를 선물한

녀석이 있기에 세상이 존재의 의미가 있는

하나의 몸뚱이로 태어나

둘로 살다가

한날한시에 이승을 떠날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귀하디 귀한 나의 친구    


사람들은 나라 하지만

난 이제부터 감히 친구라 부르려 하네    




다섯    




철들기 전에 만난 녀석들이 있어


녀석들과는 10대 청소년 때 추억이 있지

결혼하고 사회로 나가고는 가족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사느라 뜸했어

녀석들에겐 의무가 없지. 권리도 없고

비교는 쉽지만 배려는 꺼리지

그래서 멀어지는 건 한순간이고, 다시 가까워지는 건 어렵지

성격도 가지가지, 생긴 거도 각양각색

녀석들은 참 다양하지

착하거나 못되거나, 정이 넘치거나 까칠하거나,

영리하거나 어리숙하거나, 용감하거나 신중하거나, 잘 생기거나 아니거나.....

그래서 녀석들은 글쟁이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지  


친구 말일세    


내 나이 57세

녀석들도 비슷한 나이

내 나이 첫돌, 10세, 20세, 30세, 40세, 50세

녀석들도 첫돌, 10세, 20세, 30세, 40세, 50세

나와 같이 나이를 먹었지    


나이 들어서 돌아보니

녀석들 삶에 공감이 가고, 어떤 녀석은 내 삶에 공감도 해 주더라고

그렇게 길지 않은 삶을 함께 늙어가것지


우정이란

서로의 삶의 동심원을 공감해 주는 것이어서

다른 삶이지만 같은 추억에 뿌리를 두고 평생 키워 가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제 녀석들이야말로 그야말로 친구 아니것나    


내게 추억을 선물한

많은 거 같지만 막상 세어보면 얼마 되지 않는

없어도 될 거 같지만 막상 없으면 아쉽고 외로운

만나서 웃고 떠들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고

늘어나는 주름살을 보면 혼자만 늙어 가는 게 아니라는 위안을 주는

이래저래 필요한 꼭 필요한

같은 나이로 살다가 다른 나이로 떠나갈

소중한 나의 친구    


사람들은 친구라 하지만

난 이제부터 감히 소중한 친구라 부르려 하네    




그리고 마지막    




언제나 내 곁을 지키는 녀석이 있어


내가 생명의 씨로 잉태되는 그 순간에 녀석은 홀연히 나타났지

특이한 녀석이야

얼굴을 본 적도 말도 없지만 마음의 눈으로 뻔히 다 보이지

어둠의 그림자

그러기에 삶의 빛을 돋보이게 하지

때로 희망에 가득 차면 화들짝 놀라 등 뒤로 숨기도 하고

때로 삶이 허망하면 슬며시 고개를 내밀어 아는 척하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언제든 반드시 한 번은 마주쳐야만 하지   


죽음 말일세    


내 나이 57세

녀석 나이도 57세

내 나이 첫돌, 10세, 20세, 30세, 40세, 50세

녀석도 첫돌, 10세, 20세, 30세, 40세, 50세 나와 똑같이

녀석은 껌딱지처럼 늘 들러붙어 다녔지 매일 매 시각 매 순간  


나이 들어서 돌아보니

죽음은 삶의 종착역이 아니어서

삶과 함께 태어난 쌍둥이고

매 순간 삶과 함께 한 동반자였지

그리고 삶의 마지막 파수꾼이 되것지

그러고 보니 녀석이 이해되고 공감되는 거야


우정이란

서로의 삶의 동심원을 공감해 주는 것이어서

다른 삶이지만 같은 추억에 뿌리를 두고 평생 키워 가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제 죽음이야말로 친구 중에 친구 아니것나  


내게 삶의 빛을 선물한

나와 같이 태어나

언제나 내 곁에 머물며

마지막 단 한 번의 숨까지 나를 기다려 주는

껌딱지 같은 나의 친구    


사람들은 죽음이라 하지만

난 이제부터 감히 친구라 부르려 하네  




내게는 친구가 여섯 있어

같이 살며 사랑하며 나를 알아주고 내가 알아주는    


사무치게 그리운 친구

나의 반쪽인 친구

나의 분신인 친구

귀하디 귀한 친구

소중한 친구

껌딱지 친구  


이처럼 남들에게는 없을 법한 친구가 여섯이나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네                





후기  





친구와는 공감하고 배려하려 노력하고

때마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왜 부모, 아내, 자식, 나, 죽음에게는 함부로 하는 것일까

친구 중에 친구니까 더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친구에게는 무례하면 안 되는데

때마다 미안하다 말하면서

왜 부모, 아내, 자식, 나, 죽음에게는 함부로 하는 것일까

친구 중에 친구니까 더 삼가야 하는 것 아닌가  





죽음의 나이     



죽음은 삶의 종착역이 아니어서
삶과 함께 태어난 쌍둥이이고
매 순간 삶과 함께 한 동반자이고
삶의 마지막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삶과 죽음은 선과 후가 아니어서
같이 태어나 같이 살다가 같이 죽는다.
죽음은 삶의 곁을 항상 지키니
삶과 죽음은 한 몸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삶을 두려워 말고 죽음을 낭비 말라.
죽음을 두려워 말고 삶을 낭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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