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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Sep 25. 2021

주검

삶과 죽음은 하나

내 주검의 얼굴은 평온할까

일그러져 있을까    


눈은 감고 있을까  

뜨고 있으면 무서울 텐데


입은 다물고 있을까

열려 있으면 실없어 보일 텐데   


손은 너무 움켜쥐지는 않았을까

곧게 펴려면 아플 텐데


마지막 순간


내 생애 단 한 번 남은 숨은 얼마나 길까    

그 순간 수십 년 살아준 고마운 너무나 고맙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못다 한 말이 얼마나 많을까    

그  순간 사랑하는 한없이 사랑하는 아들 둘에게

다 못 준 사랑이 얼마나 후회될까    

그 순간 그리운 꿈에도 그리운 엄마 아부지가 보일까

보면 무어라 하실까 무어라 할까    


아내는 얼마나 울까 나만큼 영원한 이별이 슬플까

아들은 얼마나 울까 나만큼 영원한 이별이 슬플까


주것는가 살앗는가   


내 주검이 목욕할 때

발가벗긴 모습이 추하지는 않을까  

손 대면 차가워서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수염 깎는다고 생채기 내지는 않을까


벌레 파고들까 귀, 코, 입 솜 틀어막으면 숨 막히지는 않을까   

먼길 떠난다 춥지 말라고 삼베 새 옷 겹겹이 입히면서

꽁꽁 묶어 갑갑하진 않을까


머리마저 동여매면 영영 다시는 못 볼 얼굴인데

엄마 아부지 묶을 때처럼 뺨이라도 맞대고

키워준 손 부여잡고 목 놓아 울어줄까    


주것는가 살앗는가    


내 주검의 송별회에서

영정 사진은 어떤 걸 써줄까

젊어서 낡은 걸까 늙어서 새 것일까

웃는 얼굴일까 근엄한 표정일까


친척 친구 한꺼번에 다 보는 건 좋다마는

더는 볼 수 없는 거 아닌가

친구에게 처음 받는 절 어색하진 않을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쑥스럽지는 않을까


모르는 사람이면 누군지 물어볼 수도 없고 어떡하나    

절 하면서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안타까워할까

돌아서서 손가락질하지는 않을까  


주것는가 살앗는가 


나 태어나 3남 3녀 형제자매 같이 자라고

아내 만나 아들 둘 낳고 기르고

엄마 아부지 같이 살다 따로 가신

평생 정 박힌 가매기 삼거리 집

정녕 떠나야 하나

어찌 발길이 떼일래나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영영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건만

엄마 아부지 보낼 때처럼 관 따르며 가지 말라 피눈물을 흘리고

가시는 길 막을 수 없어 잘 가시라 소리쳐 울어줄까  


주것는가 살앗는가    


엄마 아부지 행복하게 함께 살라고 앞산에 합장해 드렸는데

바로 아래쪽에 오순도순 묻어줄까

땅 파고 흙 덮으면 살은 썩고 뼈만 남는데

엄마 아부지 묻을 때처럼 관 내리지 말라 끌어안고

넋을 잃어 울어줄까    


새 집 내 집 흙무덤 다지면서

오~호 다~리 오~호 다~리 구성진 달구질소리는 들을 수 있으려나

장마에 안 쓸리게 멧돼지 못 파먹게 굳게 굳게 밟아 주려나

막걸리 석 잔 받고 절 세 번 다 받으면 다 떠나가고

난생 처음 죽어 처음 적막 산중 홀로인데

시각마다 나누어서 쉬엄쉬엄 따라주면 아니 될까   


이리 삼 일이 지나면 주검이 익숙해질까

다시 칠 일이 일곱 번 지나면 익숙해질까


일 년 지나면 보고 싶어 할까

십 년 지나면 보고 싶어 할까  


그렇게 잊혀져 가겠지

그렇게 내 주검은 썩어 흙이 되고 물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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