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령님은 개를 사랑하신다
응답하라 1968ㅡ종교 편
엄마는 어릴 때부터 틈만 나면 말했다.
“앞 산 바위 아래에 촛불 켜고 산신령님께 빌어서 널 낳았어. 그러니까 절대 개고기는 먹으면 안돼”
그래서 개고기는 냄새도 못 맡았다.
1968년경 꼬맹이때. 그땐 그랬다.
그 후
철 들고 개고기를 먹었다.
딱 두 번.
어무이는 모른다.
- 한 번은 1983년 경 -
군대 고참 때 새벽에 누가 잠을 깨운다.
머야?
불침번이 아닌데 감히 고참을 깨우다니.
모포 속에서 짜증을 내니까
“소대장님이 부르십니다”
할말 없다.
소대장실.
중대장, 소대장, 선임하사, 훈련소 동기인 구병장이 뭘 맛있게 먹고 있다. 큰 쟁반에 고기 덩어리들이 수북히 쌓인 게 진한 구릿빛에 맨질맨질 먹음직스럽다.
“이게 웬 고깁니까?”
“그냥 먹어둬. 맛있어”
주먹만한 두툼한 덩어리 하나를 건네 준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받아 들고서 한입 물어 뜯었다. 어라! 고기가 뽀들뽀들하다. 처음 먹는 맛이다. 돼지고기도 아닌 것이, 소고기도 아닌 것이 아주 맛나다.
최전방 철책 GOP에서는 가끔 야밤에 몰래 중대장실, 소대장실에서 고기 파티가 벌어진다. 쫄따구들이 보면 안되니까. 소대 40여 명, 중대 160여 명을 먹이기엔 양이 턱없이 부족하니까. 간부 몇이 먹기에 고기가 남을 정도면 그때는 병고참 두엇을 부른다.
GOP에서는 덫이나 올무에 걸린 오소리, 드물지만 멧돼지, 계곡에서 잡은 팔뚝만한 김일성고기라 불리는 열목어, GOP 올라갈 때 강아지를 데려가 짬밥으로 일 년 키워서는 훼바로 철수하면 바로 잡아서 개고기... 희한한 거, 웬만한 거 다 먹는다. 근데 노루는 먹으면 피본다고 재수없다고 안 먹는다. 최전방에서 피 본다는 말은 소총 자살, 내무반에 총기 난사나 수류탄 투척, 산더덕 캐다 지뢰 밟기.....잊을만 하면 뻥 뻥 터진다. 노루는 절대 못 먹게 한다.
지휘관들에게 캐물을 수도 없고 동기 녀석은 묵묵부답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먹었다. 다 먹고 물었다.
“되게 맛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고깁니까?”
“개고기야 개고기! 어때 맛있지? 하하하”
선임하사, 동기 녀석이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리고 선임하사가 한마디.
"어차피 먹었으니까 이젠 개고기 먹어도 괜찮아"
아뿔싸, 속았구나! 선임하사는 내가 개고기를 안 먹는다는 걸 전부터 알고 있었다. 짜고 친 고스톱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뱃속에 들어간 것을. 밖으로 나와서 남쪽을 보고 산을 향해 빌었다.
“산신령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일부러 먹은 거 아닙니다. 속아서 모르고 먹은 겁니다. 용서해 주세요, 산신령님!”
그 후론 다시는 덩어리로 개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
- 또 한 번은 1996년 경 -
LG원주지점장으로 근무할 때다. 옆 부서에 새로온 부장님이 개고기광이다. 점심 때 영양탕 먹으러 가자고 한다. 나하고만 안 먹었다며. 공손하게 일이 있어서 시간이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어무이, 산신령님 때문이라곤 말 못한다. 이상하게 볼까봐.
얼마 후 또 영양탕 먹으러 가자 한다. 공손하게 배불러서 못 먹는다고 말씀드렸다.
어무이, 산신령님 때문이라곤 말 못한다. 이상하게 볼까봐.
세 번째는 작정한 듯 이유대지 말라며 영양탕 먹으러 가자 한다.
분위기상 또 거절하면 완전 찍히는 거다.
찍히는 건 겁 안나지만 같이 식사 한번 하자는데 더 이상 거절하기가 참 난감했다.
감히 과장이 부장한테 거절을. 것도 세 번씩이나. 할 수 없이 따라 나선다.
백운식당. 원주에서 영양탕으로 유명한 집이란다. 치악산 줄기 중 하나로 원주 남쪽에 백운산. 그 끝자락에 있다. 먹기 전에 밖에 나가서 백운산을 바라보고 조그만한 소리로 읊조렸다. 남들이 보니까.
“산신령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먹고 싶어서 여기 온 거 아닙니다. 용서해 주세요, 산신령님!”
군에서 먹었던 수육 식감이 특별했지만 탕 또한 별미였다. 먹고나서 부장님에게 안 먹는 걸 먹은 거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후 어쩌다 영양탕집에 같이 가더라도 나만 개고기 대신 삼계탕을 시켰다.
사람들은 왜 내개 개고기를 못 먹여서 안달일까?
개고기를 두 번 먹어 봤기에 참 맛나고 식감이 다르다는 걸 잘 안다. 별미인 걸 알면서 못 먹으니 상상 속에서 개고기는 점점 더 맛있어진다. 한 번 먹었으니까 정말 계속 먹어도 괜찮은 걸까? 하지만 지금껏 덩어리건 탕이건 더 이상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아들 둘에게 말하고 있다.
“할머니가 산신령님께 빌어서 날 낳았어. 그래서 우리집은 개고기를 안 먹어”
아마도 산신령님은 개를 무척 사랑하시는 게다. 그래서 어무이도, 나도, 아들도 개를 못 먹게끔 주문을 건 거다.
아마도 산신령님은 우리를 무척 사랑하시는 게다. 그래서 뭐든지 다 먹으라고 개만 먹지 말라는 거다.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엄마 미안해. 말해봤자 걱정만 하실 거라 일부러 말 안 한거야. 알지 엄마, 어쩔수 없이 먹은 거. 더는 안 먹어 엄마!”
--산신령님이 개를 사랑해서 그런지 집에서 키우는 앤디를 산에 난 산책로에 가서 사람 없을 때 풀어주면 오르막을 힘차게 뛰쳐 올라갔다 되돌아온다. 아주 신이나서 날뛴다. 평지 산책로보다 산길을 훨씬 좋아한다.
산신령님이 개를 사랑해서 그런지 유기견은 근처에 산이 있으면 산으로 가서 산다. 떼를 지어서. 먹을 것도 없을 텐데.
--궁금하다
1.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게 원주 치악산 산신령님만 그런지, 다른 산 산신령님도 그런지?
2. 산 별로 산신령님이 계신 건지, 한 산신령님이 세상에 모든 산을 통치하시는 건지?
3. 절에 가면 산신각에 산신령님을 호랑이가 지킨다. 호랑이가 멸종한 지금은 무엇이?
4. 산신령님에 대한 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누가 성경이나 불경처럼 산신경으로 정리하면 좋겠다. 아니면 이미 그런 게 있나?
잊혀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6.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