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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안개 Mar 07. 2021

아기강아지를 만나러 가던 날


매일 밤 잠에 드는 것은 너무 쉽다. 아홉 시만 되어도 스르르 잠이 든다. 그러나 쭉 자지 못한다는 게 오랜 어려움이었다. 어제는 의존성이 생길 수 있어 특별한 일 아니면 먹지 않는, 잠 푹 자게 하는 약을 먹었다. 새벽에 두 번 깨기는 했지만 곧 다시 잠들 수 있었고 이 날 아침은 좋은 컨디션으로 외출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강아지를 만나기 위한 길을 나섰다. 강아지들 앞에 쪼그려 앉아도 다리가 발목까지 훅 덮이는 길고 품이 넓은 디자인, 그리고 강아지들이 손톱으로 긁어도 괜찮을 면 소재의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북쪽을 향해 1시간 40분가량 차를 달렸다. 구글 맵상 케널 위치가 가까워졌을 땐 자작나무 숲이 이어졌고 완전히 시골 같은 풍경이 펼쳐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구글맵이 가리키는 곳은 숲 속 한가운데였다. 사방팔방 어디를 둘러봐도 똑같은 길처럼 보이는 숲길을 한 20여 분간 빙글빙글 헤맸던 것 같다.



이 숲길을 빠져나가지 못할 일보다 시간 맞춰 도착하지 못해 브리더에게 안 좋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를 더 걱정하면서 맘속으로 기도를 하던 무렵, 게다가 점점 화장실 생각도 간절해지던 무렵에,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길 끝에서 케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케널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가 보러 온 강아지의 엄마인 픽슬라가 제일 먼저 뛰어나오는게 보였다.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프링처럼 뛰어오르며 반가움을 표현하는 그녀는, 꽤나 목청 좋은 라고또였다. 내가 인사하려고 키를 맞춰 앉자마자 훅 뛰어올라 얼굴에 키스세례를 퍼붓던 그녀. 픽슬라의 파워풀한 인사에 뒤로 넘어지면서도 기뻐서 웃었다. '엄청 사교적이고 활발한 엄마시네. 아이들도 엄마 닮았을까!'



픽슬라의 곱실거리는 몸은 짧게 트리밍 되어 있었고 머리 부분은 비숑프리제처럼 둥글게 숱이 꽉 차 넘실넘실 출렁였다. 전체적으로 회색빛 감도는 베이지 톤의 털색에 군데군데 회갈색 얼룩무늬가 커다랗게 두어 개 있었다.



이어서 강아지 다섯 마리가 한데 모여있는 울타리가 눈에 들어왔다. 다섯 마리 강아지들은 엄마 픽슬라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우르르 짧은 꼬리를 파닥파닥 흔들어가며 옮겨 다녔다. 우리를 맞이하던 브리더가 울타리 안에 한쪽 다리를 넣고서 아이들을 한 마리씩 펜스 밖으로 꺼냈고, 나는 빠르게 눈을 굴려 사진으로 미리 봤던 그 강아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았다. ‘아 저기 있다, 저 강아지인 것 같아!’



우리 강아지가 될 지도 모를 그 아기 강아지는 엄마 픽슬라처럼 눈 주위가 어두운 갈색 털로 덮여 있고 이마 한가운데 우유를 쪼로록 부은 것처럼 하얀색 꼬불꼬불한 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몸은 하얀색 바깥 털 안쪽으로 회색 이중모가 희끗희끗 보이는, 오프화이트톤의 강아지였다. 또, 다른 강아지들이 몸의 얼룩 위치로 구분이 지어지는 반면, 이 아이는 바디 부분에 얼룩이 없다는 게 특징이었다.



우리는 약 두 시간가량 케널에 머물며 브리더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엄마 픽슬라를 따라 뛰기도 하고 계단에 끙차끙차 오르려 애쓰기도 하고 자기가 싼 똥을 먹기도 하고 우리 다리에 올라타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우리는 강아지들을 품에 안아볼 수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포실포실 꼬물꼬물 몽글몽글한 이 아이들을 나는 그저 꿈을 꾸듯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아이들 곁에 있던 엄마 픽슬라가 브리더 곁에 오더니 눈을 지그시 마주 보며 앉는 자세를 보였다. 그런 픽슬라의 말 없는 눈빛에 브리더가 “조금만 기다려, 밥 곧 줄게.” 하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봤을 때, '아 벌써 저녁시간이구나' 하고 정신이 들었다. 아쉽지만 케널을 떠날 시간이었다.



돌아갈 채비를 하는 우리에게 브리더가 아이들의 마지막 건강검진 일정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하며 픽업 가능한 날짜를 안내해주었다. 그 때 알았다. 우리는 면접에 통과했고 곧 강아지를 데려올 수 있게 될 거라는 것을.

일단 안심이 되었다.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만 제외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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