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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마 Aug 23. 2022

민선이에게2

수잔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민선이에게


민선아 안녕. 나는 지금 두 가지 마음을 손에 쥐고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퇴근길에 너와 싸운 후 참 많이 속상했고 네가 준 모멸감을 잊지 못하겠더라. 서운함을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네가 준 펜을 들었어. 비싼 펜이어서가 아니라 거짓말처럼 내 손에 딱 맞게 편안한 펜이어서 감동스러운 마음이 들어. 네 걸 주문하며 내 몫도 챙겨준거라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감동적인, 그런 마음. 어떻게 두 마음이 같은 시간에 공존할 수 있을까? 너에게 고마운 마음과 화가 나는 마음 말야. 이런 내가 너무 모순적이지 않나 싶다가도 어찌됐든 너에게 편지 쓸 힘을 얻었으니 이 모순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둘 다 속상한 이 밤에, 모순된 마음에 대해 말해봤으면 해. 그러려면 우리가 얼마 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어.


너에게 펜데믹과 에피데믹의 차이를 설명하다가(그러고보니 우리는 정말 별의 별 대화를 다 했구나) 미국 대통령이 “총기 사고는 미국의 에피데믹”이라는 발언을 했던 걸 예로 들었지. 미국에는 정말 많은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고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으니까. 올해에도 몇 번이나 총기 사고가 있었잖아. 너와 나는 한국의 학교에서는 총기 난사가 일어나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얘기하며, 정말 미국의 에피데믹이 맞는 것 같다고 했어.


그런데 나는 이국의 낯선 학살 사건을 보면서도 이 악몽이 너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때로는 무언가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 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 그래서 계속 반복되는 사건들에 피부로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됐으면 좋겠어.


4년 전의 나는 비교적 대책 없이 행복한 편이었어. 그때 ‘익숙한 악몽’을 보게 된 거야. 수잔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었을 때, 그날은 추석이었고 침대 위로 햇볕이 들이닥치고 있었어. 더할 나위 없다고 느꼈으나 책 속에는 불쾌함으로 얼룩진 습한 날씨가 펼쳐져 있었어. 2022년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총기 난사 사건과 그간 있었던 유사 범죄들에는 일종의 모델이 있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모방범죄의 원조라고도 하는 끔찍한 사건을 중심으로 감정과 사유가 뻗어나가는 책이야. 시간을 좀 더 뒤로 돌려서 1999년,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저자의 아들 딜런 클리볼드는 친구 에릭 해리스와 학살을 계획했고 실행에 옮겼어. 자신들이 다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13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 사건은 미국에서 총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규제가 도입되는 계기가 됐고 학교 이름이던 콜럼바인은 학살의 대명사가 됐어. 2007년 버지니아 대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그랬듯 미국의 많은 총기난사범들은 딜런과 에릭을 추종했다고 볼 수 있어.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이기도 해. 총으로 누굴 쏴죽이는 백인 남자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 혹은 영웅이 되다니. 그리고 똑같은 비극이 불법복제하듯 수없이 반복된다니. 에릭과 딜런이 학살을 계획하며 바랐던 자의식 가득한 바람대로 된 셈이었어(자기들은 유명해질 것이고 따라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라는 발언). 어쩐지 내가 믿었던 세계가 속절없이 패배해 버린 느낌이었지.


한 편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 사건 이후 시카고에 사는 한 목수가 희생자 13명의 십자가와 가해자 2명의 십자가를 만들어 추모의 의미로 세웠대. 그런데 희생자의 부모 중 한 사람이 가해자들의 십자가를 없애버렸어. 어느 쪽에서 가해자들은 이해 불가능한 영역의 절대악이 되고 누군가에겐 영웅이 되는데, 나는 어느 쪽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힘든 마음이었어. 가해자들을 악마나 영웅으로 취급하는 것 모두 위험한 것 아닐까? 그러니 ‘가해자의 엄마’인 수잔 클리볼드의 글로 패배한 내 세계를 위로할 수 있었다고 하면 너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범죄자의 부모에 관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수잔 클리볼드는 사랑과 상식이 넘치는 사람이야. 딜런이 총기난사범이  과정을 똑바로 알게 된다면  타인에게도 어떤 도움이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사건을 파고들어. 우린 이제 알잖아. 그렇게 파고드는  상처에 소금 뿌리고 손으로 헤집는  만큼이나 고통스럽다는 . 심지어 사건 당시 딜런이 쏜 총에 맞아  부상을 당한 피해자와  부모에게 편지를 쓰고 만나기까지 . 이런  사랑과 상식이 밑바탕이 되어 나타나는 마음과 행동인데, 지극히 평범한 사랑과 상식을 주입받고도 인간이 충분히 악할  있다면, 비극 역시 복불복 아닐까? 특히 취약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가능성이 높은. 수잔 클리볼드는 이렇게 말해.


부모가 그 무엇보다도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 세상에서 나만큼 더 잘 아는 부모가 없을 진실이 있다. 바로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다.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영역. 나는 거기에 가해자와 평범한 사람을 나누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악은 악마도 영웅도 아닌 거야. 그렇게 비범한 것이 아니고 그저 평범하지만 조금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낮의 우울>의 작가 앤드루 솔로몬은 에릭 해리스를 ‘살해성향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딜런 클리볼드를 ‘자살 성향 우울증 환자’로 정의했어. 각각 ‘실패한 히틀러’와 ‘실패한 홀든 콜필드’라고 표현했지. 말하자면 에릭과 딜런은 각자의 가학성과 우울증적 분노로 서로를 추동했어. 전문가들은 이들이 서로를 몰랐다면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평가해.


민선아. 저 책을 읽은 4년전의 내가 그저 충격을 받았을 뿐이라면 최근에는 콜럼바인 사건과 이 책을 떠올리며 두려운 마음이 들었어. 나는 네가 주는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거든. 햇살이 아름다운 날 점심시간에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별안간 눈물이 났어.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겠고 거긴 사람들도 많아서 멈춰야 한다는 생각에 다급해졌는데, 무슨 피가 나는 것처럼 눈물이 처절하게 흘렀어. 그즈음 나는 매일매일 지나치는 사람들 모두가 미웠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이 일분 일초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렸어. 통증은 온몸을 지배해 쇠약하게 했고 고통이 몸으로 드러난 순간부터는 아무 때나 분노해서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지. 나는 콜럼바인 사건이 있기 전, 에릭과 딜런이 만나게 된 것부터를 사건이라고 생각해. 비극을 구성하는 퍼즐이 딱 맞춰지듯 내 앞에도 그런 사건이 조용히 일어난다면? 나라는 인간이 충분히 끔찍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스스로가 가증스러워져.


그러다 이 책의 ‘목적’이 생각났어. 수잔 클리볼드가 자신의 아픔을 꾹꾹 눌러담아 글을 쓸 때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 그는 청소년의 정신질환과 학교폭력 문제, 총기 규제 등 구조를 이야기하고 있었어. 그때서야 나는 이 책이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청소년과 손쉽게 가해의 길로 빠질 수 있는 청소년을 위해 쓰여졌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이 책은 1999년의 딜런이 아닌 21세기에 어딘가에 있을 딜런을 위해 쓰인거야. 나는 바로 여기서 ‘아름다운 모순’을 봤어.


어떻게 비극을 겪고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끔찍한 살인마의 엄마이며 자살 유가족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이 가시밭길 같은 모순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요즘 나에겐 삶에 널리고 널린 모순들을 수용하는 게 큰 과제인 것 같아. 수잔 클리볼드는 이 책의 처음과 끝까지 같은 자세를 유지해. 곧고 바른 자세를 보는 것처럼 너무나 안정적인 그것은, 추모하되 용서하지 않는다는 거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랑할 내 아이와 총기난사범이 같은 인물이라는 걸 기꺼이 인정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추모하고 사랑하는 한편 그의 범죄를 함부로 용서하지 않을 수도 있어.


지금 내 마음 속에 너에 대한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듯 내 인생은 수많은 모순으로 채워져 있겠지. 그 모순들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정신질환 사이를 헤쳐나갈 땐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것 같아. 가령 세상은 고통스럽지만 온통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나 때문에 네가 불행한 순간도 있겠지만 우리는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 이런 모순들을 가만히 끌어안아 보면 내 모습은 끔찍한 사람에서 다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민선아, 나는 앞뒤가 달라 가끔 내 뒤통수를 치는 삶에도 끄떡없는 단단한 마음을 갈망하게 됐어. 나에겐 없는 마음일지라도 너에게는 차고 넘치리라고 믿어. 넌 강한 사람이니까. 그러니 나에 대한 화보다 사랑에 좀 더 힘을 실어주는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펜이 정말 부드러워서 편지가 술술 써졌어. 다시 한 번 고마워.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 밤, 서정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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