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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마 Jul 05. 2021

파킨슨씨의 병

은은한 투병일기1

파킨슨병 환자를 처음   2010 여름이었다. 가뜩이나 비싼 서울 3 병원 입원비를 감당하다가, 6인실 창가자리가 나와서 흔쾌히 옮긴 차였다.  맞은편, 6인실의  다른 창가자리에 파킨슨병 환자가 누워있었다. 그는 나와 대화를  수도 없었고 언젠가 이곳에서 나갈  있다는 가능성도 갖고 있지 않았다.   넘게  입원해 있다는 사실도, 나이가 60 넘었다는 것도, 그의 간병인으로부터 듣게  사실이었다.


실내 생활을 하도 오래해서 보통의 노인들보다 뽀얀 피부,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몸, 손가락과 발가락이 점점 곱아들어 발에는 수면 양말을 씌워놓고 손에는 항상 무언가를 쥐고 있던 모습, 말티즈 같은 강아지에게나 꽂아줄 것 같은 머리삔을 양 옆에 꽂은 모습이 첫 인상이었다. 이렇게 좋은 6인실 창가자리가 나오다니! 하며 기뻐하던 순간 맞은편 침대의 윗부분이 끼이익 하고 올라오며 낯선 인상의 파킨슨 환자를 마주했을 때, 나는 아주 오래 전 읽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한 챕터인 ‘클라인씨의 병’이 떠올랐다. 그 순간은 제목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 소설의 제목이 ‘파킨슨씨의 병’이었던 걸로 기억이 왜곡됐다. 그래서 간병인이 “여기 할머니는 파킨슨 병 환자야”라고 대리 인사(?)를 했을 때도, 속으로 파킨슨은 소설책에서 본 적 있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난쏘공 책 전반에 드리운 비현실적인 말투와 차라리 초현실적이라고 할만한 끔찍한 상황들이, 난생 처음 듣고 보게 된 질병에 내가 내린 어떤 이미지였던 것 같다.


그는 아침 저녁 시시때때로 가래침을 뱉고 기저귀에 볼일을 봤다. 가래가 걸려 컥컥거리다 썩션을 하고 똥을 지리며 냄새를 풍기는 일은 상황을 봐가며 하는 게 아니어서, 내가 밥을 먹고 있는 중에도 맞은편에서 그의 간병인은 척척 기저귀를 갈아댔다. 내가 별다른 짜증을 내지 않아도 간병인이 민망해하며 학생 앞에서 별 꼴을 보인다고 농담을 했지만 정작 그는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다. 그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곱은 손을 휘휘 저어대거나 옹알이같은 소리를 내며 의사 표시를 했다. 그마저도 대부분 먹고 싸는 일이 전부였으므로 그가 말을 할 줄 모른다해서 불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끔 그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는데,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거나, 손주같이 예쁘다거나 하는 이유때문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그저 맞은편에 있어서 바로 눈이 가는 무언가를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또렷이 보는 것 뿐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렇게 하듯이. 그러면 나도 그의 눈을 분석하듯이 쳐다보곤 했는데, 곧 못 견디겠다는 감정에 휩싸여 먼저 눈을 내리깔았다. 그도 그럴 게, 나는 파킨슨병 환자가 아니었지만 비슷한 조직의 문제로 같은 병동에 입원한 상태가 아닌가. 그때 이미 나는 왼손과 발이 마비된 상태고 이게 호전된다는 희망도 흐릿해서, 아픈 몸과 정신으로 오로지 날것의 상태에 놓인 인간을 보는 게 괴로웠다. 김애란의 비행운이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의 정조라면, 나에겐 그것이 “나는 겨우 저렇게 되겠지”의 감정이었다. 그 시절, 병원에 있는 내내 나를 지배했던 두려움이기도 했다.


간병인이 50대, 그는 60대. 그러나 간병인은 그를 철없는 어린애 대하듯 했다. 내가 다 수치심이 느껴지는 말을 6인실에서 큰 소리로 했고, 강아지한테 해줄법한 머리삔도 계속 하고 있었다. 그해 겨울까지, 재활치료를 하며 그런 광경을 몇 번 목격했다. 정신이 흐릿한 신경계통 환자를 마구 구박하고 자기 멋대로 대하는 간병인들. 나보다 두 살 정도 많은 어떤 언니는 오토바이 사고로 신체 일부가 무뎌지고 머릿속이 어린아이 상태가 됐다. 간병인은 언니의 머리를 빡빡 밀고 사람들 앞에 세워놓고 흉을 봤다.


절대로 아픈 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한가닥 목표도 놓아버리고 산다면, 그래서 그냥 무아지경으로 그게 고통스러운지도 모를 정신이 되어 아픈 몸으로 산다면, 나는 저런 대우를 받겠지. 머리 모양 하나 온전치 못하며 내 뜻대로 되는 것 하나 없이, 수치스러운 취급을 받겠지. 매일 주는 식판의 밥이나 나에게 허용된 침대 하나의 공간, 하루 10분 정도 휠체어에 앉아서 하는 외출에 목숨걸면서, 그걸 붙잡고 살아가겠지.


그 정도의 중증 파킨슨병 환자가 요양원에 끌려가 하루하루 죽어가는 게 아니라, 서울 병원에서 위생적인 처치를 받고 살아간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존엄성을 갖고 살 순 없을까. 그와 6인실에서 마주보며, 가래를 뽑고 기저귀를 가는 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던 시절보다 지금이야말로 존엄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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