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더 만남에 종지부를 찍으며
사랑이 사라졌다.
아니 사람이 사라졌다. 이것은 S와 내가 완전히 쫑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S가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이야기의 다른 버전이기도 하다. 나를 향하던 S의 사랑이 사라졌다. 처음엔 한 2주 전부터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오래전부터 사라져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일이다. 그 사랑은 내게 너무 잘 맞아서 몸 속 장기같은 것이었는데, 나는 간이나 신장 따위를 떨어트리고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얘기다.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 내 몸은 어떻게 그것 없이 살아질 수 있었는지 모든 건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S를 만난 건 데이팅 어플에서였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이미 풀리지 않는 숙제의 답을 찾기도 할 것이다. 어플에서 만난 남자들이란 그렇고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사랑은 없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나는 너무도 가뿐하게 이 가설을 기각시킨다. 데이팅 어플엔 몸 좋고 느끼하고 플러팅 잘하는 남자들만 모여있다고들 생각하지만, 이제는 정말 많은 남자들이 어플을 한다. 스와이프를 할 때마다 놀라는 사실인데, 너무나 범생이 같이 생긴 남자들도 어플에 프로필을 올려놓는다. 게다가 결정사, 심지어 지인을 낀 소개팅에서마저 개매너 진상을 부리는 사례를 들어온 탓에, 어플만의 심각성이랄 것들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S는 너무 오랜 시간 외로움에 시달렸다. 애인이 생길 때마다 자기 친구들을 등한시하고 애인에게만 올인했던 S는 35세, 주변에 친구 한 명도 남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4년을 교제하던 애인은 갑작스런 사고로 사망했다. S에게는 무엇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S는 외로움에 사무쳐 미친 척 데이팅 어플을 시작하게 됐다. 나를 만나고서 그 수많은 외로움이 해소된 게 아니라, 외로워서 당장 손에 잡히는 누구든 만나야 했는데 그게 나였다는 사실이 가끔 섭섭하긴 했지만 연연하지는 않았다. 썸과 연애 초기의 S는 나에게 정말 예의있었으므로. 첫 만남에 나는 S를 보러 ktx를 타고 대전에서 서울로 이동했다. 그 무모함에 화답하듯 S는 그날 저녁 나를 대전에 있는 본가까지 차로 바래다 주었다. 그 거리감, 거리감을 기꺼이 뛰어 넘는 마음 같은 건, 어플로 원나잇을 원하는 남자들에게선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배려가 있었고 나를 볼 때마다 조금은 행복해 보여서 그가 가진 모든 감정을 ‘장난’ ‘섹파’ 이런 단어로 눙칠 수가 없었다.
S가 적어도 초반엔 나에게 진심이었다는 증거를 일일이 열거하는 건 별로 쓸모있는 짓은 아닐 것이다. 우리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나는 많고 많은 위대한 플롯이 그렇듯 이별을 오프닝 시퀀스에 배치하고 싶다. 이별이라는 오프닝 시퀀스를 되감아 보면 그의 모든 행동과 말이 부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만의 맥락 안에서 진심이었을 어떤 요소까지 도매급으로 판단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는 나의 진심을 얘기하고 싶다. S와 썸을 끝내고 연애를 시작하기로 했을 때, 어플을 탈퇴하고 삭제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인데, 남자들은 그냥 섹스하고 싶어서 연애라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솔직담백하게 섹파나 원나잇 fwb를 처음부터 내거는 남자들도 있지만, 자기 안의 어떤 도덕이랄까 마지노선이 있는 남자들은 연애라는 외피를 두르고 섹스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다. 어플을 삭제한 건 내가 고추 달린 섹스마스터 지망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사상이 이러한 탓에 나는 연애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마치 가챠돌리기를 하듯 어플을 해댔다. 그러니까 나는 S를 상처주지 않기 위해 아침 5분 저녁 한 시간 동안 스와이프를 하며 섹스를 원하는 남자들에게 예의없고 무례한 말을 던지며 그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루틴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S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기에 그런 단념이, 스스로의 규칙을 버릴 준비가 된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S는 내가 데이팅 어플이나 각종 연애 모임에서 만난 남자들과 달랐다. 자기의 잘난 모습을 드러내기보다 약점을 먼저 까보이는 용기가 있었고, 그러면서도 보여지는 외모만은 감각 있게 꾸밀 줄 알았다. 약간 우울하고 자조적인 유머감각도 좋았다. S의 최대 단점이 자기비하였지만, 자기를 머리 위에서 내려다 보고 말하는 듯한 메타인지는 때론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한 번은 s의 길쭉한 키와(전남친이 키가 너무 작아서 키작은 남자에게 불만이 좀 있는 상태였다) 쭉 뻗은 다리, 작은 두상이 너무 예뻐보여서
오빠는 8등신이겠네?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냥 어깨 으쓱하라고 한 칭찬 같은 거였는데 s는
아니 나는 그냥 등신이야
라고 대답했다. 이렇듯 s는 가볍든 묵직하든 칭찬 따위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S는 본인의 매력으로 내 삶의 규칙을 깨어준 최초의 타인이었다.
나의 진심에도 불구하고 S는 나를 자주 의심하며 ‘지금 다시 어플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 ‘내가 맛있는 거 사주고 선물 사주니까 좋아하는 것 아니냐’. ‘바람 피우기만 해. 둘 다 죽여버릴 거야’ 등의 말들로 나를 힘빠지게 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집착과 애정은 사귄 지 한 달 만에 사그라 들었다. 그때쯤엔 잠들기 한 시간 전에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는 것으로 서로 만족했고, 가끔 폰섹스나 다름 없는 야한 카톡을 주고 받을 땐 좀 더 길게 대화가 이뤄졌다. 나는 S가 일적으로 받는 피곤함이나 나에 대해 느끼는 지루함을 이해했으나 S는 나의 외로움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S는 한 달간 강원도 원주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됐다. 밤 11시까지 거의 매일 야근하는 노동착취 강행군이 이어졌다. 예전에 알던 남자애가 엄청 뻐겨대면서 연애 필승법을 알려준다고 했었다. 그 필승법이란, ‘이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 나는 그 충고의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S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았고, 그렇기에 S의 사랑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S에게 실망할 일이 많아졌다. 누군가 그랬다. 남자에게 실망감이 든다면 그 즉시 다른 남자를 만나라고.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특별히 도덕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S였으니까. 내가 감히 S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마음이 전쟁통에 부상을 입은 것처럼 아팠던 밤, 나는 S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우리는 왜 데이트를 하지 않고 모텔이나 내 자취방에서 섹스만 하는지, 기념일을 왜 모르는 척 넘기는지, 어째서 콘돔을 쓰지 않는지, 의문을 표하며 이 세 가지를 고쳐줄 것을 요구했다. 그로부터 나흘 간 잠수를 타더니 S는 사랑(이라고 표현될 만한 모든 것들)을 거두어갔다. 줄다리기를 하다 반대편에서 손을 놓아버려 갑자기 뒤로 자빠진 어린아이처럼 쓰라렸고, 억울했고, 슬펐다. S는 그저 일과 사랑 모두에 지쳤다는 말로 일축했다. 나는 좀 추할 정도로 S를 붙잡았고 끈질긴 물음 끝에 시시콜콜 텁텁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 데이트를 하고 기념일을 챙기는 게 싫다는 것. 그동안에도 숙박비와 식비를 본인이 부담했는데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내게 정이 떨어졌다는 것. 모든 게 명쾌해져야 마땅한데, 그래서 S가 미워져야 마땅한데, 나는 S가 너무 보고싶었다. 한 번만 마주 앉아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S의 사랑이 사라진 정확한 시점과, 받을 사랑도 없는 주제에 S를 보고싶어하는 내가 미결로 남았다.
전 애인의 죽음으로 몇 번이나 자살시도를 했던 S. 나는 절대로 S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비로소 내 삶과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바깥의 사랑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니 모든 건 경험이고 아무나 막 만나도 된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비록 아무나 막 만난 적은 없지만 아무튼 그 생각으로 내 삶은 피폐했는데 스스로를 종종 다치게 하는 S를 위해 나는 내 자해적인 생각을 청산한 것이다. 이 지독한 아이러니와, S가 가진 사랑의 깊이, 어디론가 사라진 나의 자존심. 죽을 때까지 이 모든게 궁금할 것이다. 그렇지만 애써 풀이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풀어놓고 보면 너무나 흔한 삼류 사랑이야기일게 뻔해서, 나는 그 삼류 속에 S를 남겨둘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