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폭주기관차…입니까?

성해나의 <혼모노>를 읽고(가제본 서평)

by 델마




사람이 꼭 행복이란 상태에 도달해야 할까? 별것도 아닌 일에 과하게 ‘행복해~’를 외치는 사람들이나 어떤 처지를 쉽게 불행으로 격하시키는 모든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다. 애초에, 행복이란 상태는 ‘도달가능미’가 될 수 있긴 한 걸까? 이런 질문을 되풀이하다 보면 훅 치고 들어오는 자기연민이나 신파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내 감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건 그렇다 치고 엉켜버린 머릿속은 풀리지 않는다. 사람은 왜 행복에 도달해야 하나.


때로는 아주 차갑게 벼려진 글에서 답도 없이 추상적이고 낭만적인 키워드의 핵심을 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K문학은 감정의 해설지 같다. 물론 국가별로 문학적 경향성을 묶어서 좋다/싫다 하는 걸 선호하지는 않지만(ex) 나는 일본 소설이 너무 가벼워서 싫더라), k문학이, 특히 여성문학이 어떤 지점에서 나에게 힌트를 주었다, 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작품과 작가가 그런 건 아니지만 K문학은 상당히 차갑고, 그 저점의 온도가 나는 마음에 든다.


성해나 작가님의 다른 작품집은 읽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소설집 속 7개의 단편들은 열정적이면서도 차가웠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 소설들의 ‘냉정과 열정’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2024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혼모노’를 읽었을 때, 소설 초입에서 압도되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나도 욕망의 폭주기관차 같았기에. ‘혼모노’는 흔히 서브컬처의 오타쿠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그래서 이 소설이 아주 현대적이고 생활에 밀착된 느낌을 줄 거라고 예상했지만, ‘혼모노’는 신이 들린 ‘진짜 무당’을 의미한다. 그래서 소설은 현대적이고 생활밀착형이라기보다 지극히 한국적이고 말맛이 살아있으며 통속적이고 전통적인 요소들을 호명했다가 자근자근 밟는 맛이 있다. ‘장수할멈’이라는 주신을 앞집 MZ 신애기에게 뺏겨버린 늙은 무당. 이 흥미로은 이야기의 시작이다. 정치인의 굿도 봐주고, 문화재가 되고 싶기도 한, 징글징글할 정도로 욕망에 절여진 그를 일순 식혀버린 건 무당세계 속에서도 통용되는 기막힌 세대교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재능과 젊음, 삶에 대한 지독한 알레고리로도 읽힌다.


‘재능과 젊음’이라는 키워드로 소설집을 돌아보았을 때,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이하 구의 집) 라는 작품이 눈에 밟혔다. 군부 독재 시절 민주 운동 인사들을 고문하는 고문시설이 따로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구의 집의 배경이 바로 그 시절이며 소설 속 인물들은 ‘그 건물’을 짓는 건축과 교수와 건축학도이다. 나는 이 소설이 두 가지 층위에서 무서웠다. 사람을 고문하는 건물을 짓는 데 자신의 온 열정과 재능을 태우면서 ‘이것은 사람을 위한 건축물’이라고 잘라 말하는 ‘구’의 광기가 소름끼쳤고, 그런 구를 경계하면서도 지지하지는 못하는, 군부독재에 충성했던 교수의 지독한 입체성이 한 편으로는 이해가 돼서 무서웠다. 공간의 내력과 한국 현대사를 부감의 시선으로 내려다 보는 듯한 구조는 박민정 작가님의 걸출한 작품들을 떠올리게 했다. ‘구의 집’은 무언가의 내력을 들여다보는 공포감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혼모노>의 작품들이 모두 한국의 과거를, 혹은 전통을 바라보는 것만은 아니다. 지금 여기의 한국을 보여주기도 하고 한국이라는 공간에만 갇혀있지 않은 보편 감정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예를들어 소설집의 첫 번째 작품이자 2025 젊작 수상작인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어떨까? 소설의 주인공은 ‘나만 알고 싶은’, 권위로부터는 예술성을 인정 받고 대중으로부터는 힙함을 인정 받은 젊은 감독 ‘김곤’의 열혈 팬이다, 소설에는 코어팬들이 모인 단톡방이나 정모방식 등 덕질에 접근이라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문화들이 도너츠 위의 스프링클처럼 무심하게 툭툭 널려있다. 문제는 김곤이 큰 물의를 일으켜 자숙 중이어야 할 유명인 이라는 것. 그럼에도 그를 열정적으로 덕질하고 호위하는 ‘나’의 사랑이, 특별할 것도 없는 길티플레저로 전락하는 걸 보는 건 그것대로 괴로운 일이었다.


그 외에도 길 잃은 한국계 미국인 ‘듀이’를 태극기 집회 한복판에 끌어들이는 노인(스무드), 수평적인 척 하지만 실상 권위로 가득한 스타트업 조직 내에서 고군분투하는 알렉스(우호적 감정), 자신의 딸에 관한 집착을 시아버지와 공유하면서도 그와 반목하는 중년여성(잉태기), 밴드맨의 꿈을 가졌으나 남들과 다름 없이 청춘을 낭비했을 뿐인 우림, 조현, 시우(메탈)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열정과 냉정, 온탕과 냉탕이라는 감각의 차이를 느끼게 했다.


소설을 한 편 한 편 아껴 읽으면서, 나의 욕망이 행복과 일치되지 않아 조급하고 불안했던 모든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째서 욕망은 늘 과녁을 빗나가는 것일까. 그리하여 앞선 질문의 답을 어렴풋이나마 내릴 수 있었다. 행복과 욕망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관계 같지만, 나는 올바르게 욕망하기 위해선 행복의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내 행복도 욕망도 명확하지 않은 날들이지만 7편의 소설을 읽는 동안은 확실히 행복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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