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인 유머

by 델마

"아, 나 이 사람 좋아하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그의 두 번째 책이 출간됐을 때였다. 그와 프로젝트 하나를 끝낸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으며 연락이 끊긴 기간이기도 했다. 책 잘 읽고 있다고 불쑥 연락이라도 해볼지 고민하다가 3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그만뒀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유서를 업데이트하는 사람이기도 해서 사랑의 메시지를 구구절절 쓰는 게 스스로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그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고 내세울 직업의 세계에서 내쳐져 정병의 한가운데에 있던 나는, 그와 연락이 끊긴 지 7년이 흐른 올해, 그의 네 번째 책이 출간됐을 때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떻게 봐도 상황이 더 안 좋아졌는데도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야만 했던 건, 그의 저서들을 따라가며 그가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저서. 그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의 절절한 사랑의 감정들, 그리고 그 계절을 보내는 그만의 방식이 담긴 것이었다. 그는 메시지에 친절하게 응답해 주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한때 함께 일했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에 가까웠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그의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신청했다. 북토크 당일, 너무 떨어서 들고 간 음료를 잘 삼키지도 못했다. 오랜만에 본 그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할 줄 알았다. 그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 파트에 관해 사회자가 그간 몇 명의 연인을 만나온 거냐고 물었을 때, 그는 “저요? 저는 언제나 한 명이죠”라고 대답했다. 난 그런 식의 농담을 좋아한다. 언젠가 비슷한 상황이 닥칠 때 그의 대답을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난처한 질문에 거짓으로 응수하는 능청은 아주 달콤하다.


사인받는 시간이 됐을 때, 그는 사회적 예의를 다해 나를 반겨주었다. 북토크는 재밌었냐는 그의 말에 “저 오백 년 만에 북토크를 와보는데 너무 재밌었어요”라고 대답했고, 그는 아 그래요? 라고 대답한 뒤 사인을 해주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가 다른 지인들을 반기듯 나를 반기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그 오백년 어쩌고의 농담을 한 걸 후회한다.



7년 전 함께 일했을 때 그가 나의 이야기에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전공 수업에서 만난 이상한 ‘한남’이야기를 할 때였다. 그는 나에게 말을 너무 웃기게 한다고 했다. 그땐 그에게 웃긴 사람이 되는 게 귀한 경험인 줄 몰랐다. 아직은, 먼저 연락해서 술을 마시자고도 할 수 있는 사이라는 걸 몰랐다. 그의 책이 네 권이나 출간된 지금은 내 의도가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도 않고(나의 연락은 어떤 협업 제안을 위한 밑밥으로 보인다) 그를 웃길 수 있는 능력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좋아하는 내 감정은, 단 하나의 플러팅도 없었으므로 그의 눈치가 닿는 사정거리 안에 있지 않고, 그러니 나는 수상한 사람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그에게 주는 내 유머가 그 시절의 찰나로 남은 것은, 그땐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자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사람들은 좋아하는 이의 앞에서 자주 삐걱거리고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마냥 유머를 잃어버린다.


그의 네 번째 책 첫 번째 챕터. 그의 실패한 사랑이야기들을 읽으며 북토크 내내 질문하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다. 작가님은 사랑이라는 판에서 이긴 적이 많나요 진 적이 많나요? 저는 작가님이 많이 이겼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나를 웃긴 적이 많다. 그가 툭툭 내뱉는 유머가 너무 웃겨서 숨넘어가게 웃은 적도 있다. 그런 사람이 나처럼 많이 실패했을 리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유머는 권력이지 않을까? 난 언제나 재밌는 사람은 아니어서 다른 쪽으로 노력해야 했고 7년 만에 만난 그에게 작은 웃음도 주지 못했다. 아니, 외려 쪽팔림을 얻었다. 지금도 그걸 쪽팔려 하는 내가 너무 재미없다는 생각이다.



같이 일할 때 트랜스 여성 학자를 강사로 초청한 적이 있었다. 그 강의 기획은 내가 한 것이었는데, 그는 처음부터 극렬히 반대했었다. 강사님께 입금해야 하는데 명의가 사회적으로 규정한 남성성에 가까운 이름이었다. 그는 우리끼리 있는 단톡방에 강사님의 이름 세 글자가 나오자마자 어떤 유머를 구사했고 그 유머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웃었다. ㅋㅋㅋㅋ들의 향연. 그 경험이 내가 그를 좋아할 수도 있다는 인식 자체를 막아버렸다고 생각한다. 그가 휘두른 유머에 나는 아팠지만, 어쨌든 나는 그를 좋아한다. 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인 스누피를 닮은 귀여운 인상도, 귀여운 인상에 그렇지 못한 또렷한 가치관과 강한 실행력도, 활동가와 예술가의 중간 지대에 있는 특이한 위치도, 모두 사랑할 만한 것들이어서 그와 한 번 더 마주 앉아 웃어보고 싶다. 거기엔 적절하고도 톡 쏘는 유머가 준비물로 기능할 것인데, 지금의 나에겐 그게 없다. 어쩌면 이 상황 자체가 하나의 질 나쁜 유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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