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할머니 장례식
일찍 퇴근을 하여 샤워를 하고 나온 나는 휴대폰을 보고 아버지에게 전화가 오는 것을 봤다. 이상했다. 보통 아버지가 일하는 시간에 나한테 전화를 자주 하진 않으시는데, 갑자기 전화가 온게 기분이 이상했다.
전화를 받고, 아버지는 말했다.
외할머니가 오늘 오전에 돌아가셨다. 엄마랑 외삼촌은 장례식장으로 이미 출발했고, 아빠는 광주 출장 중인데, 대전으로 가는 버스표 끊었고, 대전 정부청사에서 만나서 가자.
머리가 쿵 했다. 일단 알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누나들이 걱정할까봐 나에게 누나들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다. 바쁜 누나들 그리고 특히 매형들과 같이 내려오는게 자식들이 바쁠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나는 터울이 큰 누나들이 있다.), 젊었던 부모님을 대신해서 외가댁과 친가댁에서 누나들을 많이 돌봐줬다고 한다. 둘 다 애착이 클테지만, 큰 누나는 외가댁에 더 외가댁에 애정이 컸다. 내가 이걸 알게 된 거는 큰 누나 결혼식 피로연이었다. 큰 누나가 테이블마다 돌면서 인사드리면서 웃고 그러다가, 외할아버지가 큰 누나 이름을 부르자 큰 누나가 울던게 생각났다.
여자친구한테 바로 전화를 해서 이런 상황이 있는데, 내가 고민된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내 얘기를 듣더니, 나중에 누나들이 서운해할꺼라면서, 무조건 연락하라고 했다. 그래서 작은 누나한테 먼저 전화했고, 작은 누나는 외할머니 부고 소식에 놀랐고, 언니한테는 자기가 말한다고 했다. 소식을 전하고, 나는 내가 연락을 드려야할 사람들한테 연락을 돌리고, 나도 아빠를 배웅하고, 며칠 있을 짐을 쌌다. 그리고 최대한 어두운 옷을 골라서 갔다.
아빠를 대전 정부청사에서 만났고, 아빠를 픽업하고,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차로 약 2시간 걸리는 곳에 있다. 아버지는 옆에서 사람들한테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다. 아버지 연구소에서 제공해주는 장례 서비스를 연락하고, 연락오는 사람들과 통화, 카톡을 하시다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내 인생 첫 장례식장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젊을때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정정하시기 때문에, 이번이 첫 장례식장이었다. 들어갔더니 어머니는 울음을 이미 쏟아내셔서, 생각보단 괜찮아보이셨다. 할머니는 아흔 세 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보니, 나를 불러주시던 목소리가 생각이 났다. 나도 좀 울컥했다. 연세가 있으셔서 언젠가 돌아가실 줄은 알고있었지만, 막상 받아들이니 마음이 힘들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오시자, 할머니 영정사진을 보며, 엄마가 엄마가 좋아하는 사위가 왔다면서 우시고, 아버지는 장모님, 그동안 정말..정말 감사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우셨다.
아버지 따라서 할머니께 절을 두 번 올린 후에 저녁을 먹었다. 육개장과 수육을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생각보단 맛이 있었다. 저녁을 못 먹고 계속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에서 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 아버지도 급하게 배를 채우고, 장례 서비스나 이런 것들을 조율했다. 오랜만에 뵙는 외가쪽 친척분들께 인사드리면서 나에 대한 근황을 알려드리다가 누나들이 내려왔다.
특히 큰 누나가 빨리 왔는데, 오는 길에 이미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누나가 장례식장에 오자, 외가쪽 어른들이 다들 반겼다. 외가댁에서는 첫 번째 딸인 엄마가 낳은 딸이어서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고 한다. 누나도 계속 울었다. 누나는 외가 어른들과 이야기하고, 나는 매형이랑 이야기하고 있었다가 작은 누나네도 내려왔다. 그렇게 가족끼리 이야기하다가, 부모님께서 작은 누나네는 조카도 있고 해서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나는 계속 남기로 하고, 큰 누나는 이미 근처에서 숙소를 잡았다고 하면서 남기로 했다. 3일장이라서 2일만 더 있으면 장례가 끝날 예정이었다.
그날 밤, 나는 아빠와 엄마랑 같이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친할머니댁으로 갔다. 거기서 친할머니께 오랜만에 인사드리고, 소파에서 휴대폰을 하다가 잤다. 의외로 푹신푹신하고 자기 좋았다. 다음날이 됐고, 외할머니가 입관을 하고, 천주교에 따른 장례를 진행했다. 어른들께서 나는 입관할때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엄마가 할머니께 편지를 써서 입관할때 같이 드렸다고 한다. 그런 후에 기도를 다 같이 외우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점심을 먹을때 쯤 큰 누나는 다시 돌아왔다. 매형 말로는 밤을 계속 샜다고 했다. 점심까지 먹은 오후가 되니, 조문객분들도 거의 다 오셨고, 시간이 붕떠서 잠깐 밖에 나가서 쉬기로 했다. 카페에 가서 일을 처리했다. 다른 학교에서 합격 연락이 와서 답장하고, 곧 가는 제주도 출장관련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고 나서, 다시 장례식장을 돌아왔다.
누나들과 내가 외가쪽 손주들이라서 화장하고 그런 곳까지 안 가도 된다고 했다. 부모님과 친척분들도 가라고 하셔서 결국 누나들과 나는 2일차 저녁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가 3월 21일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8일후에 외할아버지 부고를 다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