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지만 느긋하게 앨범 듣기

검정치마 - Teen troubles 을 듣고.

by 설규을

나는 주로 앨범 전체를 듣는 사람은 아니다. 캐쥬얼하게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때로는 타이틀곡이 좋아서, 수록곡들 중 한 곡, 두 곡이 좋아서 빠져듣곤한다. 그러다가 앨범 전체를 감상한다. 어떤 때는 앨범 전체를 다 감상하는게 힘들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더 슴슴하고 깊게 감상한다. 마치 건더기만 건져먹다가 국물까지 마셨는데, 생각보다 더 깊은 맛이 나는 경우다.


군대에 있을 때, 나는 육군훈련소, 흔히들 논산 훈련소라고 부르는, 에서 조교로 복무했다. 당시에는 문재인 정권의 군개혁을 통해서 복무기간도 짧아지고, 휴대폰도 사용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1,2층에서 훈련병들이 있는 공간이나 훈련으로 나가게 될때는 거기서는 사용하지 못 했다. 적당히 짬이 나고 난 후에 당직 분대장으로 근무에 들어갈때 우리 중대 책상에는 CD 플레이어가 있었다. MP3같이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없으니, 앨범 한 장을 계속 들었다. 그때 CD의 매력에 대해서 더 빠졌었다.


군전역 후에는 나는 운전면허를 바로 따고, 엄마가 쓰시던 옛날 소나타를 몰기 시작했다. 옛날 소나타라서 그런가, 후방 카메라도 없고, 기능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CD를 넣는 투입구가 있었다. 군생활때 처럼, CD를 다시 사고, 그 CD를 계속 들으면서 다녔다. 모든 게 짧아지고, 가벼워지는 요즘 시대에서 조금 더 불편하고 느긋하게 음악을 즐겼다.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앨범은 바로 검정치마의 "Teen troubles"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namu.wiki/jump/yUPtwL3XglR9OkhNBxkXsS892fmiDUPWrvDqxC9%2FR0OCYNA1TCyFz6bMZMacs%2Fwaufd5JXwIdu18fRG2GmrXf3byijz04aPhjFIbYvpX%2Bxw%3D)


Screenshot 2025-04-19 at 1.55.22 PM.png 검정치마 정규 3집. Teen troubles.

Teen Troubles는 99년도로 보내는 러브 레터입니다. 빨갛게 치켜뜬 눈으로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아내며 방황하던 어린 시절. 지나고 보니 평범한 건 하나도 없었고, 내 마음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 조휴일


앨범 커버와 Track 1번은 앨범의 첫 인상을 결정한다.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저주가 아닐까하고 생각을 해봤지만 난 그저 열 일곱을 살고있을 뿐이었다. 혹독하고 푸르던 그 계절." - Flying bobs의 내레이션 중

내가 느낀 첫 인상은 십 대 특유의 흔들림이었다. 십 대란 세상을 처음 인식하는 과정과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은 꽤 힘들다. 부모님으로부터의 정신적 독립, 이성을 처음 좋아하는 마음 등등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때 십대들은 깨닫는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뿐이고, 이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한 깨달음은 어떤 이들한테는 과장되는 방식으로, 어떤 이들한테는 억압된 형태로 전달된다.


공룡과 핑크색의 불타는 집과 마당에 쓰러진 사람들 모두 십대 특유의 혼란스러운 물체들을 배열한 것 같다. 실들이 꼬여버린 실뭉치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 조휴일은 이민자로 미국에서 십대시절을 보냈으니, 가치관들의 충돌과 그 충돌로 인한 자아의 혼란등이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앨범에 담겼다. 이성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트랙들 (Sunday girl, Friends in bed, Jersey girl, Powder Blue), 마약에 관한 은유 ( Powder blue, friends in bed), 세상과 사랑에 대한 감상 (Ling ling, 어린 양, Jeff and Alana), 심지어 동성애에 관한 트랙 (Min)등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마치 이 앨범 전체를 들으면, 인간 조휴일의 십대 시절을 훔쳐본 것 같다. 그의 십대 시절은 나와 비슷한 것들이 있어서 좋았고, 동시에 나와 다른 것들이 있어서 좋았다.


매미소리와 오토튠과 같은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앨범은 중반에는 여러 사건을 겪는다. 교회에서 어떤 소녀를 만나기도 하고, 자기는 침대 위에 자고, 친구는 침대 아래에서 자거나, 자기 동네에서 사는 여자한테 고백아닌 고백도 내뱉었다. 친구가 죽어가기도 했다. 어떤 때는 순수하게 사랑에 대해서도 속삭이던 하루에도 백번이고 흔들리던 뉴저지의 조휴일은 여름이 끝나감과 어떤 대답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Our own summer에서는 꽤 어른스러운 사운드인 색소폰 소리가 나오면서, 매미 소리가 길게 늘어지면서 끝난다. 여름방학이 끝났나보다. 여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매미소리는 수미상관을 이룬다.


여름방학이 그가 원하는 방향이었던, 아니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던, 하나 확실한 것은 그가 여름방학을 겪기 전의 그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몸에서 안 지워지는 화상도 있는 것처럼, 1999년의 여름은 그의 기억에, 영혼에 지워지지 않을 터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여름은 존재할 것이다.


추천곡 : Powder blue, friends in bed, Ling Ling.
두 줄평:
어린 시절의 뜨거움과 그로 인한 지워지지 않는 화상(火傷)이 담겼다.
앨범을 듣는 내내, 그의 십대 시절이 나와 달라서, 동시에 나와 비슷해서 좋았다.


다음 앨범은 내가 좋아하던 시티팝 아티스트인 유키카의 "서울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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