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집 세 사내들

Chapter 4. 은빈 당신은 말이야.

by 설규을

Chapter 4. 은빈,, 당신은 말이야.


승현은 유부남이고 자식은 딸 하나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에 그는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을 한다는 사실이 멋쩍긴 해도, 그는 친구의 여자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았다. 커플이 주선자인 전형적인 소개팅이었다. 소개팅 장소에 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문쪽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소개팅을 하려고 하니, 긴장이 덜컥 됐다. 상대방이 싫어하면 괜히 주눅도 들 것 같았다.

문쪽에 어떤 여자가 나타났다. 승현은 그 여자를 보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었다. 소개팅 상대가 그녀이기를 기대하면서 계속 쳐다봤다. 그녀의 검은빛 단발머리, 큰 눈망울, 그리고 밝고 당당한 미소가 좋았다. 그리고 행운이 따라주었는지, 그녀는 카톡에서 미리 일러줬던 옷을 입고 있었다. 승현의 소개팅 상대이자, 여자친구이자, 아내가 될, 엄마가 될, 그리고 두 남자를 사랑한 은빈이었다.


처음 만난 어색한 커피숍을 지나서, 긴장이 조금은 더 풀어진 파스타집까지의 시간이 지나면서 승현은 은빈을 정말 궁금해했다. 은빈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궁금한 청춘이었다. 그녀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땐, 큰 눈으로 그를 힘껏 담고 있었다. 두 청춘이 여름처럼 뜨거웠던 때, 겨울처럼 쓸쓸할 때를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사계절을 알려주는 순간이었다.


승현은 기침을 하듯이 감정을 툭 말했다.

“저는 은빈 씨가 좋네요.”

“엄청 직설적이네요.”

“그만큼 당신이 좋다는 뜻이에요.”

은빈은 그가 당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쿨하게 말했다.

“그럼 술 한잔 하러 가죠. 대신 제가 살게요.”

“그럼 술집은 제가 고르죠.”

영화 속의 청춘남녀처럼 그들은 밤하늘 아래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조급하지 않은 속도로. 대화 중에 그들은 어쩌다 눈도 마주치고, 손도 살짝씩 스쳤다. 걷다 보니 어느새 승현의 단골 가게가 나왔다. 가게이름은 “두발네발”이었다.


“가게 이름이 “두발네발”이에요?”

“뭐였더라, 제가 아는 한 두 발로 들어가서 네 발로 기어나간다 라는 의미인데, 저도 잘 모르겠네요?”

“뭐예요~어쨌든 맛있어 보이네요.”

“들어갈까요? 경사가 좀 있어서 조심히 내려가죠.”

멀지 않은 미래에 딸 하나의 부모가 될 그들은 계단을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밟아가면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남자가 여자의 손을 살짝 잡고 천천히 내려갔다. 여자도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같이 걸음을 맞추면서 내려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가게 문까지 다 내려가자 남녀는 멋쩍은 듯 웃으면서 손을 뗐다.

“어때요? 가게 분위기 좋아 보이죠?”

라고 승현은 은빈에게 물어본다.

“여긴 무조건 맛있겠네요.”

승현은 은빈의 대답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가게 문을 옆으로 밀었다.

“누나~”

“어~ 왔어? 뭐 줄까?”

“누나 그 비빔면이랑 참이슬 하나만 주세요.”

“어 그래, 그래 좀만 기다리면 떡볶이도 줄게.”


은빈은 이 가게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조선시대의 주막 같은 컨셉이었지만 어린 대학생들이 많이 오가다 보니, 강제로 개항당한 주막 같았다. 막걸리, 동동주가 주력이 아니라, 홍초소주, 깔라만시 소주를 팔고 고갈비, 두부김치를 파는 괴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 괴리감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게 은빈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승현 씨는 원래 아무한테나 누나라고 해요?”

“아~하하. 원래 이곳은 누나라고 하는 거예요. 여자도 저분을 누나라고 부르고 남자도 저분을 누나라고 불러요. 이곳만의 전통 같은 거예요. 원래 몇 년 전에는 진짜 누나라고 부를 만큼 한, 두 살 차이 나던 분이었어서 선배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내려와서 지금까지 부르는 거예요. 신기하지 않아요? 가게만의 전통이나 관습 같은 게?”

은빈은 자기도 모르게 속을 들킨 게 멋쩍었다. 그리고 안도와 함께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누나 물 좀 주세요!”

그렇게 은빈도 전통에 참여했다.


승현은 자기만의 공간에 와서 정말 신이 났다. 마치 자기 방에 와서 편한 옷차림으로 술을 먹는 것처럼, 긴장이 한껏 풀어진 모습이었다. 은빈은 아까는 정중하고 늘 존댓말 쓰던 승현이 단골 술집에 와서 가게 주인을 누나라고 하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그리고 지금 가게 주인이랑 친한 모습과 단골 가게에 오니 한껏 풀어진 모습이 꽤 귀여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 남자에게 빠졌다.


그들은 그날 이후로 여러 번 만났고 시간이 몇 주 정도 흘렀다. 은빈은 애가 타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순수해서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그날 은빈은 결심했다. 승현과 공원을 산책하다가 고백 아닌 고백을 하기로 그녀는 결심했다.

“오빠, 잠깐 앉았다가 가자.”

“다리 아프지? 내가 그러니까 구두는 산책할 때 별로라고 했잖아. 신발 바꿔 신을까?”

“아니야 괜찮아. 잠깐 풀 벌레 소리나 듣자.”

“그래 은빈아.”

찌르르… 찌르르…

멀리서 들려오는 풀 벌레 소리는 이 순간의 두 남녀에게 기분 좋은 떨림을 주었다.

오만할 정도로 콧대 높은 밤하늘은 별빛만이 찬란하게 빛났다.

“전 별이 좋아요.. 별을 보면 세상사가 작아 보여요. 그거 알아요? 우주 비행사들 중에서 환경 운동가가 많대요.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보면 숨 막히도록 아름답고, 까맣고, 무감각한 우주에 생명이 가득한 지구가 소중해진다고 하네요. 그렇게 소중한 지구를 지키려고 환경 운동가가 되는 것이죠.”

승현은 은빈에게 툭, 툭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는다. 순간 떠오르는 감상을 은빈에게 말하면서도 그녀가 이런 말을 싫어하나라는 걱정도 든다. 승현은 평소에 특이하다는 말만 자주 들었다.

‘오빠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

‘오빠는 바람처럼 훅 떠나버릴 것 같아.’

라는 말을 이전의 그녀들이 곧잘 하곤 했다. 은빈에게 잘 보이고 싶었지만 이젠 더 이상 가면을 쓰고 사귀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 연극은 끝나기 마련이니까.

“푸하핫. 오빠는 가끔 그렇게 시인 같아진다니깐. 어떤 때 보면 나그네 같아. 방랑하면서 툭툭 시조 읊고 떠나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기억되고 싶은 사람. 무모하고, 현실감각 없어 보이지만, 난 그런 사람이 좋아. 낭만 있는 어른이 되고 싶거든, 세상에 찌든 어른들보다. 우리 부모님처럼 너무 일만 한 사람은 어떤 때는 싫어. 취미도 없고, 취향도 없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진 않아. “

그녀의 말에 승현은 놀랐다.

이전의 그녀들과는 달랐다. 같은 말에 다른 반응, 이것이 사랑이 아닐까.

그녀는 그에게 민낯을 보여도 괜찮다고 웃는 것 같았다..

그는 그의 눈에 그녀를 힘껏 담았다. 승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빈아,키스 해도 돼?”

그러자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응, 기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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