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집 세 사내들

Chapter 3. 세 사내의 첫 만남.

by 설규을

Chapter 3. 세 사내의 첫 만남.


상훈은 하늘이 푸르고 햇빛은 쨍쨍하지만 아직도 쌀쌀한 2월 25일에 처음으로 대전에 왔다. 자취방에 넣을 짐을 부모님과 같이 방문 앞까지 옮기며, 상훈은 멋쩍은 듯 말했다.

“이제 내가 청소할게, 가봐요 엄마아빠”

“화이팅하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아빠! 무슨 내가 어린애야? 알겠어요. 조심히 들어가시고 운전 조심하세요. 자주 갈게요.”

상훈은 속으로 민망하고 멋쩍을 때마다 부모님에게 퉁명스럽게 말하는 자신이 별로인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꼭 하려고 한다.

상훈은 고개를 돌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자신의 방을 천천히 본다. 눈앞에 있는 더러운 커튼, 자기 바로 앞에 놓인 냄새나는 신발장, 화장실의 먼지와 마룻바닥에서 굴러다니는 머리카락까지. 사실 이걸 보여주기 싫었었다. 나이 27살을 먹고 나서 처음으로 독립한다고 난리 친 건데, 이런 초라한 모습부터 시작하려는 게 조금 분하기도 했다. 내가 겨우 이 정도급인가. 남들은 정돈된 오피스텔로 가는데 나는 이런 초라한 방으로 가면서 나 자신의 가치마저 그 정도 급인가라고 생각에 잠기려고 했다.


그럴 땐 괜히 크게 혼자 말하면서 자기혐오에 잠기기 전에 벗어나려고 한다.

“청소나 해야겠다.”

좋아하는 힙합 노래를 들으면서 기분이 괜스레 좋아진 상훈은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묵은 때를 벗기며, 바닥을 쓸고 닦는다.

“전에 여자가 산건가. 왜 이리 바닥에 머리카락이 많지”

그저 툭툭 내뱉는 혼잣말과 점점 깨끗해지는 방을 보면서 상훈은 기분이 좋아진다.

“벌써 5시간이 흐른 거야? 미쳤다 미쳤어. ”

상당히 정돈된 자기 자신의 공간에 만족하면서 짜장면을 시킬까, 치킨을 시킬까 고민한다. 치킨이 낫겠지 하면서 가격을 보곤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며 요즘은 왜 이리 물가가 올랐을까를 10초 정도 고민한다. 그러곤 짜장면을 시킨다. 짜장면은 밀가루 풋내가 났으며, 군만두는 튀긴 게 아니라 에어프라이기처럼 찐듯한 만두가 왔다. 상훈이의 마음에 들진 않지만 오늘 하루의 기분의 흐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묵묵히 먹었다. 그러다 마음속 깊이 토해내듯이 말을 내뱉는다.


“서운할 정도로 맛없네.”


그렇게 이틀 밤이 지나고 첫 출근날이 되었다. 마치 새들의 울음소리가 나를 위한 것 같고, 운 좋게 건넌 신호등도 나에게 출근 잘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안경점에 들어갔다. 전에도 면접을 보려고 왔던 곳이지만, 이젠 “내” 공간, “내” 직장이 된 안경점이다. 첫 출근이 9시까지이지만 8시 35분에 이미 건너편 편의점에서 우유를 마시면서 9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단 중간만 하자. 여기서 나의 첫 커리어가 시작되는 거야.’

아무도 모르지만 자기 자신은 확실하게 다짐을 하면서 자신의 멋진 미래를 그리는 월요일 아침의 상훈이었다.

태극안경원, 원래 그 자리에는 처음에 태평양 약국이 들어섰다가 망하고, 곧이어 피자집이 다시 들어섰다가 3개월 지나고 망했다. 수도 없이 망하는 가게들이 거쳐가면서 지금의 태극 안경원은 놀랍게도 5년 동안 순항 중이다. 2017년도에 오픈한 태극 안경원은 대학가에 보기 드문 큰 안경원이고, 학교에 있는 안경점이 작고 낡아서 대안을 찾는 학생들에게 좋은 선택지였다.


2월 28일 구름 한 점 없는 월요일에 태극 안경원은 상훈을 새 직원으로 맞이하게 됐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첫 출근하는 문 상훈입니다. 나이는 96년생이고 많이 모르기 때문에 가르쳐주시면 바로 습득하여 잘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괜찮은 사람 뽑았는데요? 씩씩하고 보기 좋네, 상훈 씨. 어디 사람이야? 서울?”

“제주도입니다!”

“애 기강 잡지 말고, 내가 소개해줄게. 상훈 씨, 여기는 승현, 공 과장님이고 나는 유 해진. 청해진 아니고 유해진. 이제 내 이름 외우겠지?”

“네, 기억하겠습니다.”

“뭘 기억해, 내가 재미없는 사람인 것은 확실히 기억하겠지.”

“아닙니다! 재밌습니다.”

“됐고, 이전에 일했던 경험은 있나?”

“이번이 첫 정규직입니다”

“학교는?”

“B대학교 나왔습니다.”

“오~명문인데, 여기 대전까진 그럼 왜 왔어?”

“독립이요.”

“독립? 너 무슨 독립운동하는 독립투사도 아니고 왜”

“너무 집에만 살아서 좀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냐, 나도 여기서 나고 자라서 몇 년째 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잘 부탁한다. 우리 안경원에 온 걸 환영해. 이름은 태극 안경원이고 이유는 나도 몰라.”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태극안경원의 새로운 직원이 된 상훈은 이제 자신이 배운 것을 알아보는 차례이다. 자신의 지식을 얼마나 잘 익혔는지 손님을 보면서 직접 해보는 것이다. 괜히 들뜬 마음을 가지고 상훈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공 과장님도 좋으신 분 같네. 열심히 해야겠다.’

상훈이 자리에 앉아서 할 것이 없어지자, 조용히 그동안 배웠던 것을 정리한 노트를 천천히 읽으면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경사는 의료목적의 시력교정용 안경도 있지만, 패션으로써의 안경을 추천해줘야 하기에 상훈은 이미지에 어울리는 패션과 안경 브랜드의 역사와 가치를 설명해주고 싶었다.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는 이성처럼 천천히 태극안경원의 안경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비싼 안경이나 선글라스는 창문에 두어 시선을 끌도록 했고, 들어가자마자 있는 테이블에는 학생들이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는 저가용 안경과 선글라스도 비치했다. 그 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시력검사하는 기계가 있고, 왼쪽에는 명품 같은 브랜드들이 비치되어 사장님이 직접 응대했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검은 뿔테 안경을 집어서 착용했다.

‘안경알이 작은 건가’

옆에 있는 투명 뿔테 안경을 써보며

‘너무 안경이 요란법석한대.’

라고 생각했다. 그는 역시 자신이 뿔테는 별로고 실처럼 생긴 금테를 써야 어울리지라고 생각하며 실 테를 하나둘씩 착용해 봤다. 마음에 들었다. 괜스레 더 뿌듯해진 자기 자신을 억누르며 자리에 앉고 삼십 분 정도가 지났다.

“상훈 씨, 밥 먹으러 갑시다.”

“네? 지금 10시 반인데 점심을 벌써 먹나요?”

“우리 안경원은 점심때 슬쩍 지나가면서 들리는 사람이 많고, 오후 되면서 대학생들 공강시간에 많이 찾아와.”

“네, 가겠습니다. 잠시만요”

20살 때 자기가 처음으로 돈을 모아서 산 명품 비니를 쓰며, 점심 먹으러 나섰다. 한적한 돈까스집이었다. 이름은 소도. 돈까스는 원래 일본음식이지만, 한국남자의 심금을 울리는 일명 ‘소울푸드’이다. 마치 여자들에게 ‘떡볶이, 마라탕’ 포지션이 남자들에겐 돈까스이지 않은가. 들어가자마자 사모님이 일어나면서

“어이구, 오랜만이네!”

라고 해진과 승현을 반갑게 맞이했다. 사장님은 흥미롭다는 듯이 단골손님들 뒤에 쭈뼛쭈뼛 서 있는 상훈을 바라보았다.

“새 직원 드디어 뽑았구나. ”

“점장님은 생선까스 하나, 나는 등심 하나, 상훈 씨는?”

“전 치즈로 하겠습니다.”


주문을 받은 노부부의 미소를 보며 상훈은 그들이 일하는 것을 봤다. 노부부의 노련한 행동들에 상훈은 존경심이 들었다. 그는 많은 가게들이 없어졌다 다시 생기는 대학가 상권에서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버티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버티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즐기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버티는 건가?’

승현은 해진에게 말한다.

“점장님, 주식 어떠세요? 저 지금 죽겠어요.”

“왜? 좀 잃었어?”

“솔직히 많이 잃은 거는 아닌데, 500만 원 넣고 한 10만 원 잃었는데, 이게 너무 속이 타고 긴장되네요.”

“니가 하루 종일 계속 들여다보느라 그래. 그냥 나처럼 눈 딱 감고 있어.”

“대단하다 점장님도. 상훈 씨는 주식에 대해서 좀 아나?”

“저는 아직 잘 모릅니다. 돈을 아직 벌어본 적이 없어서요.”

“그래? 그래도 한번 해보는 게 좋지. 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가 꽃이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식이 꽃이라고 생각해.”

“아하, 한번 알아볼게요.”

상훈은 적극적으로 알아듣고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상훈은 긴장을 많이 해서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버거운 사회생활 첫날이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괜찮은 척만 했다.


노부부가 만든 돈까스가 나왔다. 금빛의 돈까스, 그 안에 가득 들어있는 치즈가 하얗고 이뻤다. 돈까스는 언제나 옳지라고 상훈은 생각했다.

‘여기 돈까스면 절대 안 질리겠다. 맨날 먹자고 해야지.’

같은 식탁에 앉은 승현과 해진도 각각 이렇게 생각했다.

‘내일도 점장님이 여기 오자고 하면 어떻게 하지. 너무 물리는데 이젠’

‘사실은 부대찌개 먹고 싶었는데 신입 사원이 싫어할까 봐 돈까스 먹었네. 내일은 그냥 부대찌개 먹자고 살살 꼬셔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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