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모는 이런거야?
“저번에 애들 먹는 것 보고 이번에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지.”
박장대소했다.
조금은 무뚝뚝한 듯 조용한 성향의 내 친구는 행동에는 거침이 없다. 딱 내 큰아이 나이인 중2 열다섯 살에 만나 베프였던 우리는 거의 30년이 지나는 세월동안 변함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는 변함이 없다. 나는 아이를 낳고 기르며 조금은 소극적이고 겁도 생겼다. 뭐든지 조심하는 생활을 한다.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당연한것일테다.
지난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 나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내 친구를 만났다.
나는 오빠가 한 명 있다.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이모’라는 말을 어색해했고 또한 ‘이모’라는 말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런 이모를 만나러 간다니 선뜻 따라 나서는 것이다.
친구와 두 달 전 만났을 때, 내 아이들이 얼마만큼의 대단한 식성을 가졌는지를 파악하고 미리 메뉴를 골라 오기까지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메뉴는 진작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정해둔 상태였다. 그 메뉴의 사이즈를 생각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두 달 전에도 너무 많은 것을 받기만 한터라 이번에는 멀리까지 와 준 친구에게 내가 꼭 대접을 하겠노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이미 마음을 굳히고 출동한 것이다.
친구가 실행력을 이미 시동 걸었다면 이번에도 내 계획은 틀렸다.
그래 다음번을 확실히 못 박아 두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대게, 랍스타, 회 등을 배터지게 사주고 싶다고 했다. 그간 아이들과 노량진까지 나갔다가 돌아올 일이 힘들어 멀리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친구는 별 다른 내색 없이 내가 사는 동네까지 멀리 와주었던 것이다.
다음 번 만남에 내게 대접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안 나간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게 다음 만남의 장소는 노량진이 되었다.
“나는 조카들도 없고 자식이 없잖아. 그러니 해 줄 수 있는 거야.”
친구는 그렇게 쿨하게 말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쉬운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안다.
힘들게 일하고 번 귀한 돈을 친구의 자식에게 이것저것 재지 않고 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부담되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내 친구는 이렇다. 그랬지 우린 그랬어. 조건 없이 나누는 그런 친구였지. 너와 내가 나눠 끼던 새끼반지처럼.
내가, 내 삶이 달라지고 내 상황이 변한 것이지 너는 그대로였다.
“너무 과해. 애한테 무슨 이렇게 비싼 옷을 사줘. 안 돼!”
2호가 갖고 싶어 했던 축구화를 고르도록 해놓고 1호를 데리고 옆 매장으로 가서 패딩을 골라버렸다. 내가 너무 과하다고 투덜대자 “1호는 이제 성인 사이즈이고 오래도록 입을 수 있으니 좋은 거 사줘도 되잖아” 되레 멋쩍게 말하는 친구에게 미안했다. 마음 그대로를 받으면 될 텐데. 분명 우리는 그런 사이였는데 친구는 그대로인데 내가 변해버린걸까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부담감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을 하고 메시지에 눌러 담았다. “고마워. 덕분에 1호가 겨울을 따듯하게 잘 보낼 거야. 2호는 축구화를 옆에 두고 잤단다.” 더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다. 그저 그 시절 우리가 그랬듯 변한 건 없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다른 생각은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설명하지마라
친구라면 설명할 필요가 없고,
적이라면 어차피 당신을 믿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 엘버트 허버드 -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