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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니 Apr 29. 2024

행복이 너에게 오는 중

그 친구를 짓밟은 건 그녀도 나도 아닌, 상운이 자신이었다. 

                        - 두 방문객 中 -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결국 나 자신이다. 대부분의 많은 일들이 스스로를 옥죄고 괴롭혀왔던 것이다. 어린 날의 나의 처지, 성인이 된 후에 나의 모습, 결혼을 하고 난 후 나의 상황. 남들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더 많이 힘들었다.      


 자주 가정 폭력이 일어나는 집에서도 행복한 적은 제법 있었다. 다만,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불행한 상황은 많은 행복한 감정을 집어 삼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아버지의 술주정과 어머니의 신세한탄, 그러니까 잠깐씩 행복한 장면이 있었을 뿐 우울하고 불안한 장면의 분량이 많았으므로 부모님의 성실함을 보았어도 못 본 듯 했다. 


 아버지는 난리를 피우고도 어김없이 새벽이 되면 출근을 하셨다. 덤프트럭부터 버스까지 40년이 넘는 세월 운전을 하셨던 아버지가 지각을 하거나 노는 일을 본 적이 없다. 고주망태인 아버지가 운전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사셨다는 게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그 당시에는 가능한 일이었다.       


 전쟁 같은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오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신세한탄을 쏟아내며 하루를 시작하셨다. 그 분노를 받아먹는 동시에 아침밥을 먹었다. 우리 남매에게 아침밥과 도시락을 싸주시고 집 근처 일터로 출근하셨다. 퇴근 후 어머니의 모습은 아침과 크게 다를 게 없었지만 저녁에 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침과는 딴판이었다. 거하게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침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뻐꾸기가 등장하는 시계를 힐끔거릴 시간이면 골목 입구에서부터 들려올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며 우리의 귀는 모두 긴장했다.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의처증과 집착, 폭력은 알코올이 계속 될수록 더욱 강화되어 가족 모두를 좀먹게 했다. 그럴수록 우리 남매를 향해 쏟아내는 어머니의 분노는 우리를 불안하고 외롭게 했다. 그렇게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잘 못 엮어진 인생이라는 생각과 이것은 풀 수 없는 영원한 숙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과거 환경 탓과 자책으로 이어져 슬퍼했다. 그 누구의 아픔과 불행보다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가두었다. 재미있었고 밝았지만 그러는 와중에 불쑥 슬펐다. 최소한 내가 가정을 이루고 나의 자녀를 낳아 키우기 전까지 그런 마음이었다.     


 친구들이 각자 어렵고 힘들다는 이야기에 공감하기란 내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상황에 비하면 너무 작은 일들이어서 그 정도로 힘들어하는 그들을 이해하기는커녕 배부른 소리 한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어머니가 우리 남매에게 그랬듯, 나 또한 내 상황이 내 문제가 제일 큰 문제라고 한탄했다. 제일 불쌍하고 힘든 사람을 자처한다는 생각을 하며 머리가 띵했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도 각자 자신이 겪은 경험 안에서 모두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야 그들의 고난에 포장한 공감이 진심을 담을 줄 아는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생각의 변화는 자주 일어났다. 깨닫고 느끼면서 마음가짐 또한 변해가는 사이 이전과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비교적 뜻대로 잘 자라주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있다면 그 나름의 감사함과 뿌듯함이 있을 테지만, 유독 아프고 힘든 자식은 부모를 성장시켜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뭐가 감사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끝이 어딘지 모를 지하세상으로 고꾸라지는 경험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경험을 제법 자주했다. 그러는 사이 꽤 많이 깨닫기도 했으니 마냥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부딪히고 깨지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일은 내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가 설명한 죽음의 5단계에 분노를 적용했다. 1단계 부정, 2단계 분노, 3단계 타협, 4단계 우울, 5단계 수용이다. 이 감정과 자주 만날수록 마음가짐과 태도가 달라졌다. 어느 단계를 넘지 못하고 특정단계에서 멈추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도 나는 한 단계씩 열심히 넘어오고 말았다.         

 원망하는 마음과 치욕스런 마음이 뒤엉켰다. 세상에서 나만 홀로 외롭고 불쌍한 존재였다. 그 늪에 빠져 매일 더욱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 죽기 살기로 부정했다. 그럴 리 없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막다른 곳까지 끌려가 분노했다. 머릿속은 미쳐 날뛰었다. 그럴수록 나를 편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죽음이라는 생각을 제법 하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타협을 시도했지만 길지 않은 시간에 우울증에 깊이 가라앉았다.      


 좀처럼 의욕도 일지 않았고 미쳐 날뛸 힘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아이를 생각하며 나를 다잡는 일이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강하다는 모성애였겠지.     그냥 가라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구나. 지하세상에서도 나는 꾸준히 나를 일으키는 일을 하고 있었구나. 자연스럽게 내게 수용할 능력이 생긴 듯했다. 자연스럽게 지상에 발을 디딘 내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이전에 느꼈던 행복과는 다른 여유 있는 행복을 느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매일 나를 일으켰다. 투쟁하고 괴로워하는 과정, 실패하고 좌절하는 과정에서도 무엇 하나 쓸모없는 것은 없다. 무엇이든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꼭 그리 힘든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나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좌절했던 순간을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않는 날들이 많아진다. 마음을 바꾸면 생각이 달라진다. 생각이 달라졌는데 무엇을 본들 예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을까.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삶의 목표는 행복이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각자가 선택한 방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다가간다.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는 사람, 명예와 권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 빚을 지고서라도 즐기려는 사람, 내가 가진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사람 등 무엇이든 선택한다. 결국 이 선택은 행복을 향한 것이다. 어떠한 선택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할 수 있다.      


 무릎을 탁 치고 머릿속이 그 자리에서 정리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신이 났던 그 찰나를 기억한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 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뭐관데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한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말의 토씨 하나만 바꿔도 세상이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손바닥의 앞과 뒤는 한 몸이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뒤집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가장 먼 사이이기도 하다.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뒤집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걸 싶지만, 뒤집기 전엔 구하는 게 멀기만 하다." 

                                                     - 박완서 에세이 중에서 -


 내가 바뀌면 이 세상 행복하지 않을 일이 없다. 옥죄고 있는 모든 것을 털고 가볍게 일어나라. 생각하는 대로 무거워질 수도 가벼질 수도 있다. 


 나를 짓밟고 힘들게 하는 게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소중한 존재이며 작은 빛으로도 눈부시다. 그러니 이 글을 적어 내려가는 순간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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