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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이 Mar 06. 2022

아빠와 콧물 떨어진 백숙

집밥

     

 백숙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을 해서 시어머님은 백숙을 자주 하셨다. 백숙이라고 할 수 없는 폐계 닭에 마늘만 듬뿍 넣어서 삶은 닭이다. 알을 낳다가 낳다가 알을 낳지 못해 싸게 파는 닭을 삶아 먹는 것이다. 난 그 삶은 닭이 질겨서 좋아하지 않는다.

시어머님은 넌 왜케 음식을 깨작깨작 하게 먹느냐고 타박 아닌 타박을 하셨다. 난 할머니랑 살아서 밥을 촉촉하게 먹는 습관이 들어서 질긴 음식은 싫어한다.

내가 질긴 닭을 싫어하는 것에 비해 남편은 어머니가 해 준 닭을 우걱우걱 잘도 뜯어먹는다. 우걱우걱 뜯어먹는 남편이 시어머니는 엄청 이뻐서 닭다리에 몸통을 아들의 그릇에 놓아주기 정신없다.     


     

 힘들 때마다 외할머니가 꿈속에 나타나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백숙을 가마솥에 삶아서 나에게 “갱숙아 어여 먹어” 하면서 준다. 꿈속에서 뜨거운 백숙을 먹고 나면 나빴던 일들이 술술 풀린다. 할머니는 남편과 내가 사이가 나쁠 때마다 꿈속에 나와서 힘든 나를 다독여 주고 뜨끈한 백숙을 먹여 준다. 그날은 이유도 없이 기분이 좋아지고 힘든 일들이 술술 풀린다. “할머니 요즘도 나 힘든데 한 번씩 나와서 얼굴을 봬 줘요. 중학교 때 할머니랑 살면서 소리소리 지르고 대들어서 미안해요.” 지금 계시면 내가 뜨끈한 밥 해줄텐테...     



가끔 할머니가 해 준 부드러운 아욱국이 생각이 나서 집에서 끓여도 먹어 봤지만, 그 부드러운 맛이 안 난다. 아욱을 쌀뜬 물에 박박 문질러 부드럽게 해서 된장 풀어서 끓였던 아욱국은 지금도 생각나는 구수 함이다. 식당을 찾아가서 먹어도 그 맛은 나지 않는다. 어른들의 손맛은 따라갈 수가 없다.     



 오빠와 나는 다섯 살 차이가 난다. 우리 집에는 엄마가 없는 시간이 많았다. 친엄마는 아빠의 도박과 바람기 때문에 집을 나가셨고, 새엄마가 들어와서 나를 잘 보살피고 여동생 둘을 낳고 잘 키웠다. 난 없는 살림에 새엄마가 일하러 갈 때 동생을 보느냐고 학교를 못 갈 때가 있었다. 며칠 학교를 빠졌다 가면 선생님의 나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뭐하러 나왔냐, 애기 나 보지” 선생님도 결석을 너무 많이 하는 학생이 안타까워서 한 말이었겠지만,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는 수치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새엄마도 어느 날인가 집에서 떠났다. 그때는 슬픈 것도 몰랐었다. 같이 떠난 동생들이 가끔 그리울 뿐이다.    


  

 아빠는 술을 좋아하신다. 술을 드시지 않으면 말수가 적은 분이라고 기억한다. 아빠는 지금 나의 나이 49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어른들이 늘 아홉수가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미신 아닌 미신을 말씀하셨는데, 우리 아빠가 아홉수에 돌아가셨다. 

지금 내 나이 한창 젊은 나이인데, 너무 빨리 가셨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커갈 때 아빠 생각이 났다. 우리 아빠가 있었으면 엄청 잘해줬을 것인데,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아빠는 동네에서 술 안 먹으면 법 없어도 잘 살 사람인데 하는 소리를 어릴 때 많이 들었다. 술을 먹고 고집부리고 소리가 커지는 사람들은 세상에 용기가 없는 사람들 같다. 술 먹는 아빠가 그리 싫었는데, 내가 가끔 혼 술을 즐기고 사람들과 만나서 술자리를 좋아한다. 그래도 요즘은 안주가 좋아서 속은 버리지 않는다. 배고파서 막걸리를 마신다는 아빠, 안주는 김치 꽁다리 지금 같으면 근사한 술상을 차려 줬을 것이다.        


  

 아빠가 노란 쌔면 봉투를 들고 들어오는 날은 아빠가 멀리 객지에서 돌아오는 날이나 월급을 받아올 때이다. 그 노란 쌔면 봉투에는 샌비 과자(옛날 과자)가 한아름 들어있다. 지금도 옛날 과자를 볼 때는 울 아빠가 생각난다.          



 아빠는 두 남매의 영양 보충을 위해서 닭을 삶아주었다. 요즘처럼 약재와 인삼이나 황기를 넣어서 삶은 닭이 아니라 마늘만 듬뿍 넣어서 삶은 닭이다. 그때 닭은 엄청 컸던 기억이 난다. 노란 양푼 그릇에 닭 한 마리가 위풍당당하게 누워있었다. 

닭다리는 내 몫이 아니었다. 다리 하나는 오빠 밥그릇 위에 놓아져 있고 다리 하나는 아빠 몫이다. 나를 챙겨줬던 기억은 없다. 월급날 오빠는 오천 원 나는 오백 원을 줬을 정도로 남녀 차별도 있었고, 어린 나에게 돈은 사치였고 우리 형편에 용돈은 어울리지 않았다.     



한 참 닭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오빠가 먹는 것을 멈추었다. 왜 그런지는 몰랐고 난 정신없이 퍼걱 살을 맛있게 소금 넣어서 간이 딱 맞은 기름 둥둥 뜬 닭 국물을 맛있게 먹었다. 그 시절 고기 먹는 날은 우리 집에서 흔한 날이 아니기 때문에 있을 때 맛있게 먹고 많이 먹어둔다. 아빠는 먹는 것을 멈춘 오빠가 안타까워서 왜 안 먹는지 더 먹으라고 성화를 했지만, 내 기억으로는 오빠가 더 먹지는 않았다.     



“오빠 왜 닭고기 안 먹었어?”

“아빠 콧물이 닭에 떨어졌는데, 넌 잘 먹더라”

참 내 오빠는 콧물이 떨어져서 그 맛있는 닭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배가 덜 고팠구먼, 난 콧물 떨어진 것을 봤어도 그 부분만 빼고 잘 먹었을 것 같다.     



명절에도 닭을 삶아놓았다. 닭 머리까지 있는 닭을 삶아놓았다. 닭 머리가 떨어지지 않게 이쑤시개로 잘 고정시켜서 접시에 담아놓았다. 그 모습이 보기 좋지는 않았다. 닭을 먹고 나서 남은 닭은 미역국을 끓여 먹는다. 닭과 미역이 만나서 폭폭 끓여서 미역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여서 먹으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는 미역국 맛이 일품이다.     


     

난 백숙을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 세 아이에게는 백숙을 가끔 해 준다. 애들 아빠가 닭을 좋아해서 그런지 우리 집 아이들도 백숙을 좋아한다. 가끔 연한 닭을 사거나 토종닭을 사서 약재 넣고 폭폭 끓여서 큰 접시에 보기 좋게 놓는다. 난 눈으로 먹는 음식 맛도 중요하게 생각해서 세팅을 잘해 놓는다. 장갑 끼고 쭉쭉 찢어서 아이들 앞접시에 놓아주면 김치에 닭고기를 싸서 맛있게 먹는다. 닭 비린내가 싫어서 김치에 먹던 엄마를 닮았는지 아이들은 소금보다 김치에 닭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아이들에게 백숙을 해 줄 때마다 콧물 떨어진 아빠의 백숙이 생각난다. 그리운 아빠 내가 그 백숙 먹고 잘 자랐어요.     



큰 닭을 삶아서 먹다 보면 세 아이라도 닭고기가 남는다. 퍼걱 살 쪽이 남으면 쭉쭉 찢어서 잘 불린 미역에 닭을 넣고 미역국을 끓여준다. 옛날 생각이 나서 끓여준 닭 미역국은 아이들 입맛에도 맛있다고 우리 엄마 최고 엄지 척을 해 준다.

그리운 아빠를 생각해서 삶은 백숙과 닭 미역국을 아이들이 고맙게도 잘 먹어줘서 고맙다. 난 직장맘이다. 평일에는 아이들에게 특별하게 좋은 음식을 해 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주말이면 아이들에게 백숙 같은 특식을 해 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셋이라서 외식은 가끔이다. 늘 외식하기에는 가게에 부담이 크다.  


   

주말 한 상 근사하게 차려놓고 엄마는 뿌듯해서 사진부터 찍는다. 아이들은 엄마 사진 찍을 때까지 기다려 주다가 엄마의 정성을 아는지 맛있게 먹어준다.

고맙다 애들아, 엄마도 우리 아빠처럼, 우리 할머니처럼 정성을 다해서 너희에게 음식을 만들어 줄게, 맛있게 먹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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