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의 백색 소음이 잦아든 것은, 선명한 초록의 상추 잎 사이로 낯선 갈색의 소용돌이가 불쑥 솟아오른 찰나였다. 저녁 찬거리를 다듬던 아내의 손길이 멈춘 곳. 흐르는 물줄기에 놓인 그 작은 존재는, 마트의 인공적인 조명 아래에 있던 채소가 실은 치열하게 살아 숨 쉬던 ‘영토’였음을 알리는 고요한 전령이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껍질에 닿자 굳게 닫혔던 막이 열리고 투명한 살점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느릿하게 뻗어 나오는 더듬이가 공기의 결을 읽어내는 순간, 주방의 소음은 아득해지고 나의 시선은 그 작은 생명의 보폭에 고정되었다. 비닐 포장지라는 인공의 수의(壽衣)를 입고 우리 집 식탁까지 실려 온 이 작은 망명자는, 죽음 같은 정적 속에서도 자기만의 맥박을 완강하게 지켜내고 있었다.
우리는 마트의 매대 위에서 티끌 하나 없이 매끄러운 채소를 골라내며 안심하곤 한다. 그 결벽증적인 깨끗함이 실은 수차례의 화학적 세례와 생명이 살 수 없는 토양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외면한 채 말이다. 구멍 난 잎사귀와 기어간 점액질의 흔적은 불결함의 징표가 아니라, 그 채소가 누군가의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 대지의 일원이었음을 증명하는 훈장 같은 것이었다. 달팽이는 환경의 미세한 균열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지표 생물’이다. 화학 물질에 취약한 투과성 피부를 가진 이가 상추 잎에 붙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 채소가 재배된 땅이 아직은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최소한의 보루임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생태적 보증서와 같다.
"아빠, 얘 좀 봐! 진짜 귀여워. 우리 집에서 같이 살면 안 돼? 내가 예쁜 집도 만들어 줄게."
아이는 이미 달팽이를 자신의 세계 안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녀석을 위해 플라스틱 통을 찾고 구멍을 뚫으려는 분주한 손길은 분명 애정이었으나, 나는 그 순수한 열정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인간의 사랑은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자유를 구속하는 명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영아, 만약 누군가 가영이를 너무 사랑해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과자를 잔뜩 줄 테니 평생 이 작은 상자 안에서만 살라고 하면 어떨까?"
아이는 들고 있던 플라스틱 통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통 안의 좁은 바닥과 자신의 넓은 방을 번갈아 보는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음… 심심할 것 같아. 친구들도 보고 싶고, 엄마랑 아빠도 못 보잖아."
"맞아. 이 친구에게도 돌아가야 할 숲과 가족이 있지 않겠니. 우리가 상추를 주는 건 즐겁겠지만, 달팽이에게 이곳은 창문 하나 없는 차가운 감옥이 될지도 몰라. 진짜 사랑은 그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는 거란다. 그게 우리가 이 작은 생명에게 지켜줘야 할 예의거든."
아이는 한참 동안 달팽이의 느릿한 움직임을 관찰했다. 투명한 살점이 꿈틀거릴 때마다 아이의 표정도 미세하게 흔들렸다. 소유하고 싶은 원초적인 갈망과 놓아주어야 한다는 이성이 아이의 작은 마음속에서 소리 없이 다투는 듯했다. 플라스틱 통을 쥔 아이의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소유욕이 연민으로 전이되는 과정은 한 아이의 영혼이 성장하는 장엄한 의식과도 같았다. 결국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달팽이가 담긴 상추를 조심스레 들었다.
우리는 아파트 화단, 그나마 흙내음이 짙고 이슬이 잘 맺히는 커다란 나무 아래로 향했다. 흙 위에 내려놓자 달팽이는 기다렸다는 듯 더듬이를 높이 치켜세웠다. 그 보폭은 지독히도 느렸다. 저 속도로 어느 세월에 화단의 깊은 그늘에 닿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문득, 단 1초의 멈춤도 용납하지 않는 도시의 속도전 속에 살던 나의 일상이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더 높은 층수, 더 빠른 속도를 향해 질주하느라 발밑에 짓눌리는 생명들의 신음조차 듣지 못하고 산다. 달팽이의 느린 뒷모습은 효율과 속도가 정의인 세상에서, 제 속도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저항인가를 조용히 웅변하고 있었다.
"아빠, 그럼 이건 선물로 줄래."
아이는 식탁 위에 남겨두었던 가장 싱싱한 상추 한 잎을 달팽이 곁에 소중히 놓아주었다. 먼 길 떠나는 친구에게 건네는 도시락 같았다. 아이의 눈에 고인 아쉬움이 생명을 지켜냈다는 충만한 뿌듯함으로 치환되는 찰나, 나는 보았다. 아이가 소유를 포기함으로써 더 큰 세계를 얻었음을.
인간의 욕망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우주를 종종 난도질한다. 환경 오염 역시 지구 본연의 모습을 인간의 편의에 맞춰 재단하려 했던 오만의 산물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이는 자신의 욕심을 한 뼘 덜어냄으로써 달팽이에게 온전한 우주를 되돌려주었다.
우리가 아이에게 남겨줄 가장 고귀한 유산은 화려한 아파트의 평수가 아니라, 작은 생명이 제 속도대로 기어갈 수 있는 '안전한 흙 한 줌' 이어야 함을, 멀어지는 달팽이의 느린 뒷모습이 묵묵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