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냉장고는 밤새도록 낮은 저음으로 웅얼거린다.
그 일정한 기계음이 고인 정적 속으로 한 남자가 들어선다. 도로 위에서 날카로운 굉음이 멈춘 지 불과 몇 분 뒤다. 남자의 시선은 생수가 아닌 주류 코너에 가 닿는다. 차가운 형광등 아래서 그는 익숙한 소주 한 병을 집어 든다. 뚜껑을 따는 손길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그가 숨 가쁘게 들이킨 것은 목마름을 달래기 위한 액체가 아니다. 방금 전 아스팔트 위에 새긴 자신의 비겁한 흔적을 지우기 위한 ‘화학적 세탁’이다. 사고 후의 술로 사고 전의 술을 덮어버리는 기묘한 연산법. 법의 눈을 가리기 위해 스스로 더 깊은 취기를 선택하는 이 희한한 연극은, 이제 우리 사회의 서글픈 풍경이 되었다.
수사 기관이 사용하는 위드마크(Widmark) 공식은 인간의 정직함을 전제로 설계된 합리성의 결정체다. $C_t = C_0 - \beta t$.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혈관 속 알코올이 어떻게 잦아드는지를 쫓는 이 수식은, 본래 과학의 언어로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나 인간의 악의는 이 명료한 수학적 질서를 손쉽게 오염시킨다.
사고 후 들이킨 소주 한 병은 수식의 기점($C_0$) 을 강제로 수정한다. 계산기는 먹통이 되고, 과학은 무력해진다. 내가 이십여 년간 공직의 길을 걸으며 마주했던 수많은 서류 뭉치 속에서도 숫자는 늘 진실을 증명하는 도구였다. 예산의 지표나 통계의 수치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그 숫자를 다루는 ‘마음’을 잃었을 때, 숫자는 언제든 흉기가 되거나 비겁한 방패가 되었다. 가장 정교한 수식도 인간의 기만 앞에서는 한낱 무력한 낙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목도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문득 조선의 밤을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 속 관리들은 술로 허물을 저질렀을 때, 법의 처벌보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먼저 고백했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술을 권하면서도 ‘불취무귀(不취무귀)’라 했다.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그 말은, 취기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라는 말이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는 믿음 아래, 홀로 있을 때조차 스스로를 삼가는 ‘신독(愼獨)’이 그들의 뼈대였다. 그 시절의 법전은 투박했을지언정 인간의 양심을 향한 시선만큼은 살아 있었다.
600년이 흐른 지금, 수사 기법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법을 대하는 인간의 영혼은 어쩐지 더 비겁해진 듯하다. 수치심(羞恥心)은 목숨보다 무거웠던 가치였으나, 이제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 조작 가능한 수치(數値)로 전락해 버렸다. 부끄러움을 숫자로 덮으려는 영리한 계산기들이 도로 위를 활보한다.
이들의 비겁함을 나무라다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나는 과연 내 삶의 스키드 마크 앞에서 단 한 번도 도망치려 하지 않았던가. 타인의 술 타기 수법에 공분하면서도, 정작 삶의 사소한 과오들 앞에서 나 역시 적당한 변명과 핑계라는 술을 들이켜 진실을 흐리지는 않았던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태를 탓하기 전에, 내 안의 신독은 안녕한지를 묻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비겁한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비겁함이 ‘영리함’으로 칭송받고, 정직함이 ‘미련함’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은 설 자리를 잃는다. 법의 문자가 빽빽해지는 것은 우리 가슴속 양심의 문장들이 그만큼 흐릿해졌다는 서글픈 증거다. 법이라는 차가운 장치가 뜨거운 양심의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 시대, 우리는 과연 다음 세대에게 ‘정직의 무게’를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술은 시간이 흐르면 깨기 마련이다. 타오르던 취기가 가시고 나면 차가운 새벽과 함께 어김없이 진실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는 법의 처벌은 잠시 미뤘을지 모르나, 자신의 영혼으로부터는 영원히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비겁함의 숙취는 판결문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빈 술병이 쓰레기통에 무심히 던져진다. 웅얼거리던 냉장고 소리만이 정적을 메우고 있다.
내일 아침 거울 속에서 그는 어떤 얼굴을 마주하게 될까. 술 냄새는 사라지겠지만, 거울 속에 남은 비겁함의 악취는 그리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거울 앞에 서본다. 지우고 싶은 수치(數値)가 아니라, 지울 수 없는 수치(羞恥)를 아는 인간으로 남고 싶기에. 웅얼거리는 냉장고 너머로, 다시 정직한 새벽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