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벗어놓은 생의 안감


“이 녀석아, 뒤집어 놓으면 때가 안 빨리거든!”


30년의 세월을 건너온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양말의 뒤집힌 안감을 하나하나 바로잡는다. 그것은 세탁의 효율을 따지는 가사 노동이 아니었다. 타인과 맞닿아 구겨지고 얼룩진 자식의 삶이 부디 말끔히 씻기기를 바라는, 부모의 본능적인 안간힘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맞벌이 부부에게 퇴근은 휴식의 시작이 아니라 ‘제2의 전쟁터’로의 전입이다. 넥타이를 풀기도 전에 세탁기 종료 알람 소리가 먼저 나를 반긴다. 설거지통 앞에서 빨래통 앞으로 보직을 옮긴 이번 달, 내 지론인 ‘함께하는 가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산더미 같은 옷가지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여보, 조카네 집 가봤어? 건조기가 세상에... 이건 빨래의 혁명이라니까.”


저녁 식탁 위로 아내가 툭 던진 말에는 지친 기색과 미안함이 눅눅하게 배어 있었다. 요즘 아내의 최대 관심사는 건조기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수건의 감촉이 호텔 같다느니, 장마철 냄새 걱정이 없다느니 하는 조카의 후기는 아내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거실 한복판을 점령한 채 위태롭게 옷가지를 매단 건조대는, 마치 우리 부부가 견뎌내는 고단한 일상의 골격처럼 보였다.


빨래를 개다 보면 가족의 성장이 손끝에 잡힌다. 고2 선영이의 옷은 아내의 것과 뒤섞여 구분이 모호하다. “이거 엄마 거야, 내 거야?” 소리치며 옷을 낚아채 가는 딸들의 소란은 대견하면서도 묘한 서글픔을 남긴다. 조만간 막내 가영이까지 가세하면 우리 집 건조대는 세 여자의 시간이 겹쳐진 화려한 전장이 될 것이다. 그럴 때면 슬쩍 모든 옷을 아내의 서랍장으로 밀어 넣으리라 마음먹는다. 딸들의 원성쯤은 “엄마랑 자매 같고 좋네!”라는 능청스러운 농담으로 퉁치면 그만이다.


“에이, 아빠도 양말 뒤집어 벗었네! 여기 봐, 시커멓잖아!”


옆에서 수건 귀를 맞추며 1000원짜리 용돈 벌이에 열중하던 가영이가 내 양말을 치켜든다. 아뿔싸, 들켰다. 아이들에게 똑바로 벗으라 호통치던 나 역시, 생의 무게에 눌려 양말을 허물처럼 뒤집어 던져두었던 모양이다. “크크크, 아빠가 미안... 이건 비밀로 하자.” 멋쩍은 웃음이 터진다.


뒤집힌 양말은 제 몸의 얼룩을 씻어내지 못한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은가. 속마음만 보여주려 애쓰다 정작 세상과 부대끼며 묻혀온 겉면의 흉터를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은 변했다. 기업들은 ‘빨래 없는 세상’을 호언장담하고, 버튼 하나면 숲 속의 바람을 불러와 옷을 말려주는 기계가 거실의 상석을 차지한다. 아마 조만간 우리 집 다용도실에도 그 육중한 ‘혁명군’이 자리를 잡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계가 물기를 말려줄 순 있어도, 삐뚤빼뚤하게 쌓인 수건 탑을 보며 가영이가 누리는 저 천 원짜리 용돈의 온기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시커먼 때가 남은 딸아이의 양말을 하나하나 다시 뒤집는다. 삼십 년 전 어머니가 내게 건넸던 그 사랑의 잔소리는 이제 내 손끝을 타고 아이들에게로 흐른다. 비록 기계가 물기를 말려줄 순 있어도, 뒤집힌 삶을 바로잡아 주려던 어머니의 그 따뜻한 눈길까지 복제할 수는 없기에. 나는 오늘도 우리 가족의 하루를 정성껏 펴서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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