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참으로 잘 살고 있다


인천대공원의 봄은 고요한 소란이다. 왕벚나무들이 일제히 꽃잎을 터뜨릴 때, 바람은 향기를 실어 나르기보다 하얀 숨결을 길 위에 뿌렸다. 아내와 나란히 걷는 이 길은 실로 오랜만이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봄볕 아래 서 있자니, 어깨 위로 속절없이 내려앉는 꽃잎들이 낯설었다. 화사한 계절은 늘 유리창 너머의 풍경화 같았다. 나는 대공원의 소란을 뒤로하고 시흥시로 넘어가는 길목,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고추장 추어탕 집으로 향했다. 꽃의 미학보다 속을 뜨겁게 데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차창 밖 시흥의 풍경은 낯설고도 익숙하다.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룬 시흥이지만, 내 기억 속의 오래전 이곳은 이름 그대로 '은빛 시내'가 흐르고 사방이 검은 갯벌과 논두렁이었던 투박한 땅이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 소래포구 너머로 펼쳐진 염전은 커다란 침묵의 땅이었다. 밀물이 들어오면 검은 갯벌이 번들거리며 생명의 활기를 뿜어냈고, 썰물이 나가면 소금기가 하얗게 내려앉아 대지를 소독했다.

논둑길을 걷다 보면 발밑에서 미꾸라지들이 검은 몸을 비틀며 진흙 속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 차가운 흙탕물을 휘저으면 손바닥에 닿던 그 미끈하고 검은 생명력. 도시화의 물결 속에 논둑은 사라지고 아스팔트가 깔렸지만, 이 식당만은 과거의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변해버린 풍경 속에서 변하지 않은 흙의 맛을 찾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이가 부리는 마지막 생존 본능일지도 모른다.

식당의 빛바랜 식탁 위로 소박한 찬들이 놓였다. 잘 익은 깍두기와 정갈한 우거지 나물, 그리고 갓 버무린 무생채. 무생채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사십 년 전 어머니의 부엌으로 시간이 되돌아갔다. 어머니의 부엌은 늘 포근한 온기로 가득했다. 어머니는 무 하나를 썰어도 땅의 기운을 그대로 머금은 보약을 짓듯 정성을 다하셨다. 갓 버무린 무생채 위에 통깨를 넉넉히 뿌려 내주시던 그 손길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 온기 있는 음식이 있었기에, 우리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의 뼈대를 세울 수 있었다.

이곳의 추어탕은 우리가 흔히 아는 걸쭉한 들깨 위주의 남도식과는 결이 다르다. 인천과 시흥 일대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 방식은,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얼큰한 국물에 소면과 수제비를 넉넉히 넣어 한소끔 끓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솥 안에서 미꾸라지들이 제 몸을 녹여 국물 속에 스며든다. 문득 진흙 바닥의 어둠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던 미꾸라지의 생을 생각한다. 미꾸라지는 물속 산소가 부족하면 수면 위로 수직으로 솟구쳐 '장호흡(腸呼吸)'을 한다. 바닥의 눅눅함을 견디다 못해 하늘의 공기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가라앉는 필사적인 몸짓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낮에는 생활의 멍에를 지고 묵묵히 움직였지만, 밤이 되면 책을 읽고 마음을 다지며 숨구멍을 찾았다. 현실의 인내가 진흙 바닥에서의 삶이었다면, 글을 쓰는 것은 내게 하늘의 공기를 마시게 해 준 수직의 장호흡이었다. 검은 미꾸라지가 붉은 국물 속에서 형체를 잃고 맛이 되어가듯, 나의 고단함도 글 속에서 하나의 사유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솥 안의 국물이 진해진다. 이곳의 추어탕은 된장의 관용 대신 고추장의 정공법을 택한다. 시래기나 들깻가루로 비린내를 덮는 대신, 매콤한 고추장 육수가 미꾸라지의 진한 맛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개운한 끝맛을 완성한다. 여기서 '칼칼함'은 미각적인 매운맛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서릿발 같은 깨달음이며, 삶에 덕지덕지 붙은 비겁한 변명과 군더더기를 단칼에 쳐내는 단호함이다. 고추장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 안일하게 살고 싶었던 나태함과 세상을 원망하던 옹졸함이 매운 기운에 씻겨 나간다.

역설적이게도 뜨겁고 칼칼한 시련의 터널을 통과한 후에야 내면에는 비로소 고요한 평온이 깃들기 시작했다. 붉은 국물 속에서 부드럽게 익은 소면과 쫄깃한 수제비를 건져 올려 입안에 넣는다. 매콤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장기 하나하나를 일깨운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이 땀은 배설이 아니다. 마음속에 엉겨 붙어 있던 비린 기억들, 타인에게 받은 상처와 스스로에게 주었던 실망감이 붉은 국물의 열기에 녹아 배출되는 정화의 의식이다.

식당 문을 열고 나오니 시흥의 밤공기가 이전보다 달콤하게 다가온다. 화려했던 대공원의 벚꽃은 어둠에 잠겼지만, 내 안에는 어머니의 부엌에서 시작되어 고추장 추어탕으로 이어지는 붉은 생명력이 뜨겁게 박동하고 있다. 삶은 여전히 진흙탕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붉은 국물로 허기를 채우고, 투박한 깍두기 한 점으로 생의 의지를 다졌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둠이 깊을수록 벚꽃의 잔상은 더욱 선명해지고, 잘 익은 고추장의 맛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오늘 나는, 참으로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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