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진학 후 가영이가 첫 전국 모의고사를 치른 날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아이의 목소리는 직인이 찍히지 않은 빈 봉투처럼 힘이 없었다. "응, 왔니. 비가 오던데 옷은 괜찮고?"
"조금. 아빠, 나 그냥 들어갈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27년 동안 수만 통의 편지를 분류하며 배운 것이 있다면, 주소가 적히지 않은 마음에도 도착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서툰 위로는 때로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곤 했다. 나는 책 귀퉁이를 만지작거리며, 아이의 슬픔이 제 무게를 견디고 가라앉을 때까지 그저 그 자리에 놓아두었다.
불과 몇 년 전, 가영이의 세상은 정교한 우편 시스템처럼 명쾌했다. 중학교 시절 아이의 성적표는 거실의 가장 밝은 곳을 차지했다. 전 과목 평균 95점. 그 숫자는 아이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내게는 안도라는 이름의 닻이 되었다.
"아빠, 나 나중에 아빠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될 거야."
당시 아이는 정답지를 확인하듯 당당한 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렀다. 밤늦도록 식탁에서 문제집을 넘기던 소리는 경쾌한 마찰음이었다. 95점이라는 숫자가 아이의 미래를 지탱하는 안전장치라 믿었던 시절, 우리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산수의 세계에 살았다. 고등학교라는 정글이 오배송된 좌절을 예고 없이 들이밀기 전까지는 그랬다.
진학 후 첫 시험 결과는 혹독했다. 수학 점수는 유독 깊은 수렁으로 곤두박질쳤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아이의 울음 섞인 호흡은 지금도 내 가슴에 마른 흉터로 남아 있다.
"아빠, 왜 점수가 반토막이 났는지 모르겠어."
인생이 일차함수처럼 정직하게 흐르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노를 저어도 제자리를 맴도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열일곱의 아이는 몸으로 앓고 있었다. 나는 분류 기계의 빠른 속도를 견디지 못해 튕겨 나간 투박한 봉투들을 떠올렸다.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한 삶이 보내는 진통이었다.
삶은 점수판 너머에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숨을 쉬었다. 이제 고2가 된 가영이는 다른 과목은 평균 이상이지만 수학은 여전히 40점 근처를 배회한다. 그러나 아이는 다행히도 그늘에서 걸어 나왔다. 저녁 식탁에서 아내가 무심하게 말한다.
"가영아, 학원비가 조금 아깝네."
아이는 숟가락을 든 채 씩 웃는다.
"엄마, 수학 점수보다 친구 눈물 닦아주는 게 더 중요할 때가 있거든."
가영이는 비어있는 60점의 여백을 좌절이 아닌 유연함으로 스스로 채우고 있다. 숫자를 떼어내고 남은 '사람'이라는 나머지. 부족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얻게 되는 자유를 아이는 스스로 터득하고 있다.
나는 서재에서 빛바랜 종이 한 장을 꺼내 왔다. 나의 고교 시절 성적표였다. 거기엔 '수학 69'라는 숫자가 인장처럼 박혀 있었다.
"가영아, 아빠 최고 점수도 69점이었어. 겨우 낙제를 면했지."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배꼽을 잡는다.
"와, 진짜? 아빠 완전 반전이다!"
나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69점짜리 성적표를 내밀었을 때, 아버지는 내 어깨를 툭 치셨다.
"할아버지가 그러셨어. 수학은 69점이어도 좋은데, 사람 도리는 100점이어야 한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100점은 완벽한 인간이 되라는 독려가 아니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지 않고, 그 결핍의 공간으로 타인의 슬픔을 기꺼이 들여앉히는 마음의 크기를 의미했다.
"가영아, 69는 묘한 숫자야. 6과 9가 서로 머리를 맞댄 채 둥글게 몸을 말고 있지. 뒤집어도 본질이 변하지 않는 그 숫자처럼, 가영이 삶도 어떤 풍파에 뒤집힌들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40점인 오늘을 뒤집어 60점의 여백을 볼 줄 안다면, 너는 이미 아빠보다 높은 곳에 있는 거야."
27년의 공직 생활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정확한 시간에 배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물이 상하지 않게 끝까지 책임지고 운반하는 손길이라는 것을. 가영이는 지금 40점이라는 숫자를 들고서도 자신의 삶을 깨뜨리지 않고 성실히 운반하고 있다.
우체국은 오배송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분류하지만, 삶은 때로 길을 잃은 자리에서 예기치 못한 꽃을 피운다. 세상은 사람을 점수로 분류하나, 인생은 그 숫자가 담지 못한 ‘나머지’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 69점의 아빠가 문장을 써 내려가듯, 딸은 그보다 더 유연한 삶을 살아가며 제 인생의 주소를 찾아갈 것이다.
가영이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펼친다. 여전히 한숨이 섞이고 지우개 가루가 쌓이겠지만, 이제 아이의 어깨는 무겁지 않다. 아빠라는 69점의 동지와 할아버지가 남긴 사람 도리라는 지도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가장 든든한 공식이 되었을 터다. 거실 조명이 따뜻하게 반짝인다. 내일 아침 현관 앞에는 오늘보다 조금 더 다정한 하루가 우리의 이름 앞으로 정확히 배달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