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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태어나서 그 녀석 이름은 설이 랍니다.

설이 이야기

by 임세규


쾌활하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던 녀석이 오늘은 시큰둥하다. 제 집 쿠션에 몸을 말아 누워 고개를 묻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어디 아픈가...

가족들도 설이 눈치를 슬금슬금 본다. 설이는 서울 누이네 집에서 살다가 잠시 우리 집에 맡겨진 고양이다. 설날에 태어났다고 해서 설이라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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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가 태어난 날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갔네~ ''

우체국 관사에서 살았던 누이의 집에 며칠 전부터 고양이 한 마리가 들락날락했다. 옥탑에 지은 옛날식 집이라 고양이가 숨어 지내기 좋은 장소였다.


추운 겨울 따뜻하게 지낼 곳을 찾은 고양이에게 누이는 잠자리와 먹이를 줬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 이 있어 인기척이 나면 고양이는 재빨리 숨었다.

밤새 눈이 '소복소복' 내린 아침이었다. 누이는 밤새 잠은 잘 잤는지 멀리서 고양이의 보금자리를 바라봤다. 뭔가 꿈틀거리는데 이불을 들춰보니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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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쩌나."

몹시 추웠는지 새끼 고양이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일단 방 안으로 데려왔다. 제 어미가 오면 다시 그 자리에 놓으려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새끼가 태어난 후 어미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린 고양이, 그것도 태서 난지 얼마 되지 않은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다. 조카들과 누이는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새끼 고양이 키우기.'

그렇게 졸지에 누이는 새끼 고양이의 엄마가 됐다.

일정한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우리는 도둑고양이라 부른다. 표준어다. 국립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에도 나와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기르거나 돌보지 않는 고양이라 한다. 어미 도둑고양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새끼에 대한 모성애를 그리 쉽게 버릴 수 있나. 혹시 차에 치여 로드킬을 당했나.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저들이 나보다 잘 키워주겠지.' 확신하며 돌아섰을까.


아무튼 새끼 고양이를 낳은 날 어미가 돌아오지 않은 건 풀리지 않는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자식을 학대하고 버리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설이의 어미도 새끼를 버린 비정한 엄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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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가 태어난 지 10년 째다. 누이가 설이를 우리 집에 맞기던 첫날 녀석은 밤새도록 울어댔다. 다행히 이틀째 되는 날 안정을 되찾았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한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제 식구들의 냄새마저 없으니 많이 불안했을 거다. 사람도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있듯 설이도 똑같았으리라.

설이는 제 어미를 누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먹고, 자는 본능만 있을까. 가끔 뭔가 생각하는 듯한 설이의 모습을 본다. 인간의 영역에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이란 게 그들 세계에서도 있는 듯하다.

"설이야~ 힘내고 이틀 밤만 잘 지내자."

"엄마가 설이 데리러 올 때 네가 좋아하는 통조림 사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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