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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Feb 04. 2021

어? 여기가 아닌가 벼 ! 아내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날밤 눈물의 아귀찜


올해는 눈이 참 많이 내린다. 작은 눈발이 바람을 타고 솔솔 흩날린다. 지하철역 앞이다.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춰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다.

역에서 집까지는 도보로 20분 정도 걸린다. 버스를 타면 5분이 채 안 되는 거리다.

멀리서 아내가 오는 모습이 보인다. 손을 흔드니 아내도 신호한다.

" 눈 오네~  우리 걸어갈까? "
" 눈 오는 겨울밤, 낭만 있네. 그렇지? "
" 응, 그래. 연애할 때 생각나. "

가로등 불빛에 하얀 눈이 폴폴 내린다.

"참 오랜만이다. 우리 처음 만난 날도 오늘처럼
눈이 내렸지. 버스가 밀려서 내가 조금 늦게 도착했었어. 벌써 20년이 흘렀네. "

" 그랬네. 호호. "


'서걱서걱' 눈밟는 소리가 좋다. 신호등 앞에 도착하자 아내가 내게 묻는다.

" 오늘 저녁은 뭘 먹지? "

아내가 전업 주부였다면 조금이나마 수월 할

텐데 맞벌이 부부인 아내와 나는 매일 같은 고민을 한다.

사실 아내는 반찬을 만들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서비스직 특성상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하고 평일 딱 하루가 쉬는 날이다. 가끔 마른반찬이나 멸치 볶음 정도는 만들지만 거의 대부분은 동네 반찬가게에서 사 먹는다. 오히려 그게 훨씬 편하고 경제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반찬가게에서 사 오는 깍두기, 오징어 젓갈, 생선 조림 등등도 먹다 보면 입맛이 익숙해져 질릴 때가 있다.

"있잖아.. 음..  오늘은 꽃게찜 먹을까? "
" 그럴까.. 가만있어보자. 지난번에 맛있게 먹었던 집 있잖아. 그 집 상호가 뭐였지? "
"미.. 뭐였더라~  아! 맞다. 미림 해물탕. "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니 전화번호가 나왔다. 잠시 후 아내의 아쉬운 표정이 밤공기를 가른다.

" 마침, 오늘이 쉬는 날이네. "
" 화요일인데도 쉬는 날 이래? "
" 어떻게 하지? "
" 어... 그러면 아귀찜은 어때? "
" 그래, 그것도 괜찮겠다. "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시 검색을 했다.

" 우리 가끔 가는 집 이름이 무슨 아귀찜이지? "
" 거기? 마산 아귀찜 아니야? ''

'톡톡~'  검색. 마산 아귀찜.

" 혹시 모르니까 위치 잘 확인하고. "
" 응, 맞아. 익숙한 간판이 맞네. "

" 여보세요. 집으로 가는 길에 찾아갈게요. "
" 네.. 네.. 아귀찜 중자로 할게요. "

어차피 집에 가는 길목이니까 배달료도 아낄 겸 예약 주문을 하고 찾아서 가기로 했다. 아귀를 먹고 감칠맛 나는 콩나물에 밥 비벼 먹을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신났다.

"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얼추 다됐을 거야. "

눈발이 아까보다 굵어졌다. 아귀찜 집에

도착했다. ' 그러나 이게 웬일이래. '

간판을 보고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순간 불길한 기운이 엄습해 오면서 나폴레옹이 부하들을 이끌고 산 정상에서 이야기했다던 그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 어? 여기가 아닌가 벼 ! "  

" 띠리~링.. "  아내는 아까 예약한 그 집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조금 아까 전화했던 사람인데요. 혹시 거기 위치가 어딘가요? 네? "

절망적인 아내의 눈빛에 나도 덩달아 가슴이 철렁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우리가 원래 주문하려던 집은  ' 마산 해물탕 '이었으나 검색을 해서 나온 집은 ' 마산 아귀찜 ' 집이었던 거다.

해물탕 가게는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지만 아귀찜 집은 우리 아파트를 지나 20분 정도를  더 걸어가야 했다.

" 저~  혹시 배달되죠? "
" 아니요, 배달은 안됩니다. 지금 막 들어가서 요리중인데요. "

배달도 취소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 주문하기 전에 위치를 잘 확인했었어야 하는데 주소도 비슷하고 해서 대충 봤던 걸 어디 가서 하소연하랴.' '우리 잘못인 걸... '

바람이 '휘~잉 ' 불며 눈 내리는 밤거리를 걷던 두 연인의 낭만을 가져가 버렸다.

눈발이 아까보다 거세졌다. 아내 보고 먼저 집에 가있으라 했지만 아내가 ' 이 아픔을 나눠야

한다 ' 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랬다. 우리는 그날 저녁 점점 거세게 흩나리는 눈보라를 뚫고 '살짝살짝'  미끄러져가며
20분을 더 걸어 마산 아귀찜 가게에 도착했다. 집에서 전화가 왔다. ' 왜 안 오느냐고.. 배고프다고.. '

' 에고~ 에고..'  그날 밤 우리는 눈물의 아귀찜을 먹었다. 좀 덜 맵게 해 달라는 주문도 깜빡해서 진짜 매웠다.

' 이그.. 이그..' 나폴레옹 선생님, 참.. 이럴 때 쓰라고 유명한 명언을 남기셨군요.

" 어? 여기가 아닌가 벼 ! "

*이미지 출처 :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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