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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Feb 09. 2021

애썼다. 지난 12년 세월 함께 해줘서 고맙다.

SM3.   


그를 소개한다. 이름은 SM3. 2008년 산이다. 12만 km를 달렸다. 시흥시에서 부산까지 대략 150번을 왕복한 셈이다. 12년 동안 크고 작은 대 소사를 함께 했으니 우리 집 식구다. 


마티즈를 타고 출. 퇴근할 때가 있었다. 외곽 순환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던 중 속도가 100Km에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기기판의 RPM이 치솟으며 굉음이 들려왔다.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활활 타오르던 촛불이 한 번의 입김으로 '후욱' 꺼지듯 엔진은 맥없이 정지됐다.


상상을 해보라.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잘 다리던 차량이 '푸~욱' 시동이 꺼지다니.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관성으로 달리던 자동차는 서서히 속도가 줄어든다. 놀란 가슴을 뒤로하고 백미러를 본다.


다행히 뒤따라 오는 차가 안 보인다. 갓길로 핸들을 돌리고 '휴우 ~'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긴급출동 레커차를 불러 정비소에 갔다. 엔진에 문제가 있는 차량이고 리콜 대상이라 했다. 대형 사고가 날 뻔한 차를 다시 운전하려니 겁이 났다.
마티즈를 팔고  SM3를 샀다.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핸들을 잡을 때부터 느낌이 달랐다. 진득한 무게감이라 해야 할까. 시야도 넓어 편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길을 나서던 날 나는 동네 한 바퀴를 시운전하며 은근히 어깨를 으슥했다. 주말이면 콧노래를 부르며 '씽~씽~'고속도로를 그와 함께했다.


그러나 세월에 장사가 없다더니 이제 그는 청년기를 거쳐 노년기로 접어들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괜찮았지만 몸집이 커진 아이들에게 이제 그의 좁은 뒷 좌석은 불편하다.


시내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요즘 새로 나온 신형 차들과 같이 있는 그가 싫을 때도 있었다. 단지 오래됐다는 이유로  남들과 비교하며 미워하기도 했다.


행여나 그가 들으면 서운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서 긁혔는지 모를 상처 투성이인 그를 보면서 새 자동차로 바꾸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여러 해동안 그의 도움을 받기만 한 나는 오랜 세월 우리 식구의 발을 대신해 준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

모든 생물에는 살아 있음을 뜻하는 (生) 날:생 자를 쓴다. 생명이 없는 무생물인 기계에 불과하지만 오랜 시간 발에 느끼는 익숙한 감각이 있다. 그는 내 몸의 일부 같기도 하다.


그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한 해 두 해 자라는 과정을 지켜봤고, 여름휴가철 속초, 포항, 경주, 여수를 함께 다녀왔으며 우리 부부의 결혼 20주년 여행을 함께했다. 언젠가는 떠날 날이 오겠지만 그와의 추억은 우리 네 식구에게 지나 온 삶의 여정으로 남을 것이다.


오래됨은 노련함이다. 그만큼 잘했다. 단 한 번의 고장과 사고 없이 지난 세월 잘 달려왔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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