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굴곡이 파란 가을 하늘로 '후' 날아갔다

30년 만의 사과

by 임세규


30년 만의 사과.



지하철 안내 방송이 '소사역'을 알렸다. 지긋이 눈을 감고 있다가 '엉덩이가 따뜻해서 내리기 싫다' 생각이 들 때였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 빛바랜 은색 안경 너머 그의 삶이 보였다면 건방진 오산일까.


아무렇게나 구겨진 모자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일용직 노동자의 눈. 아니, 어쩌면 삶에 달관한듯한 노련함의 눈을 본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얼굴에서 희로애락 (喜怒哀樂)의 상흔이 흘러갔다.


지난 9월 사촌 형과 함께 벌초를 하러 갔다. 선산을 관리하는 6촌 형님이 묻는다.

''요즘 8촌까지 모여서 벌초를 하는 집안이 있을까? 우리처럼 우애가 깊은 친족은 없을 거야.''

사촌 관계는 매우 가까운 사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왕래가 없다 보면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긴가민가' 지나칠 수도 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그날 이후 30년 만이다. 그는 어머니를 '작은 엄마'라 불렀다. 초등학교 1학년 즈음 나와 어머니, 누이, 셋은 단칸방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사우디로 돈을 벌러 나가셨다. 수고로움에 비해 적은 돈이었지만 어머니는 손이 닿는 대로 부업을 하셨다.

사촌 형은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서울로 올라왔다. 가난한 살림에서 '먹는 입' 하나 더는 것도 가족을 위한 도움이었다. 그는 공장을 다니며 각종 심부름을 하면서 근근이 생활했다.

그가 어머니를 찾아왔다. ''작은 엄마. 돈 좀.. 돈 좀.. '' 어머니는 힘들 때마다 찾아오는 조카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다만 얼마의 돈이라도 손에 꼭 쥐어 주셨다. 어린 나는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도 넉넉하지 않은데 어머니께 손을 벌리는 사촌 형이 싫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 그가 집에 있었다. 아버지의 월급날이 돌아오려면 며칠은 더 있어야 했다. 어머니는 난감했다. ''작은 엄마. 돈.. '' 나는 그가 너무 싫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베개를 잡고 그를 때렸다.

''왜? 왜 우리 엄마를 괴롭히는 거야. 왜? 왜?''
그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어린 내 주먹을 피하지도 않으며 맞고 있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을까? 그는 그날 이후 더 이상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대전에.. 전주에 있다네.'' 어쩌다 들려오는 그의 소식에 작은 죄책감이 들었다. ' 혹시 나 때문에 우리 집에 안 오는 걸까..'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가 귀국했다. 어머니는 5년을 '꼬박' 돈을 모아 우리 집을 장만
했다. 세를 살 적에는 마당에 공용 수돗가를 썼는데 더 이상 주인아저씨의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았다.

방학 때 시골 큰집에 가면 사촌 형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 그놈의 새끼, 집에는 몇 년째 오지도 않아."
큰 어머니는 아궁이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내게 볏짚을 태우며 말했다.

그는 기계 공장에서 기술을 배웠다. 돈도 제법 모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큰 집에서는 결혼을 반대했다. 그녀가 '술집'에 다녔다는 이유였다. 가장 힘들고 외롭던 시기에 만난 두 연인은 서로를 위로하며 보듬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결혼 반대가 지극히 당연한 거였다. 사촌 형은 집과의 인연을 끊은 듯했다. 조금씩 들려오는 그의 소식에 '알코올 중독'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는 군대를 제대했고, 결혼을 했다. 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를 만났다.

" 이야~ 네가 세규구나. 쬐깐한 때 보고, 이게 대체 얼마만이냐." 햇빛에 그을린 듯 까무잡잡한 그의 얼굴에 하얀 이가 살짝 드러났다. "결혼도 했고, 딸아이도 있는 걸요." "그랬구나. 그랬구나." 어렴풋이 생각나는 그의 열여섯, 소년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길거리에서 봤어도 모르고 지나갔겠다."

도시 생활이라는 게 그렇다. 그는 역곡동에 나는 소사동에 살고 있었다. 두어 정거장 거리의 가까운 거리였다.


이른 새벽 사촌 형의 차를 함께 타고 벌초를 하러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와 다시 만난 30년의 세월만큼 자동차는 빠르게 달렸다. 차 안에서 사촌 형과 많은 대화를 했다.

그는 그녀와 헤어진 후 오랜 시간 동안 방황을 했다. 노숙자, 알코올 중독자도 됐다. 다시 일어나 살아보려 하니 사기를 당했다. 가진 돈 '탈탈' 털어 라면 하나를 샀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친구들 다 가는 학교를 보내주지 않았던 부모를 원망도 해봤다.

사촌 형은 속칭 '막일'을 했다. 잡부에서 시작했고 일용직이지만 점점 기술도 쌓여 갔다. 인맥도 생겼다.
십장(공사 현장에서 일꾼을 지시하는 사람)이 됐다.
제법 큰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성실했고, 열심히 일했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위기'라며 힘들어
했던 IMF 시기도 비껴갔다. 전국을 돌며 일을 하다가 '땅'과 집도 사두었다. 큰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실 때 큰집에 경제적인 도움을 준 것도 그였다.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괜찮아. 지금은 실내 상가 건축만 하고 있어. 일이 재미있어. 경력이 오래돼서 돈 도 쏠쏠하게 벌지."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이 '농익은 그의 인생'과
잘 어울렸다. 내가 어릴 적 형에게 잘못했던 일을 사과했다. 열여섯 소년은 생면부지 서울로 올라와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공장 허드렛일을 하면서 어른들의 거친 입담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어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다. 엄마를 그냥 놔두라며 사촌 형에게 대든 내가 부끄럽다고 했다.

''응? 그런 일이 있었어? 간간히 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일이 생각나 마치 죄를 진 것 같았다.
30년이나 마음 한쪽에 그때의 일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정작 그는 까맣게 잊은 듯했다.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해준 걸까.


청양 선산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말끔히 단장해드렸다. 밤나무에 '쩍' 벌어진 밤송이 하나가 툭 떨어졌다. 사촌 형이 담배 한 모금을 내뿜자 그가 지나온 삶의 굴곡이 파란 가을 하늘로 '후' 하며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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