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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Mar 05. 2021

드럼은 쟤가 쳤는데 내가 왜 지칠까?

- B와 드러머 -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두둥' 거린다. 드럼의 울림과 마침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B와 함께 영화를 봤다. 5년 전 직장인 밴드를 하며 B를 만났다. B는 드럼을 담당했고 나는 기타를 연주했다. 학창 시절 밴드에서 드럼을 쳤던 B는 역시 박자감과 리듬감이 뛰어났다.


"드럼은 밴드의 심장이자 영혼. 맥박이 멈추면 그 밴드는 죽어버린 거나 다름없다. 드럼 없는 밴드는 사공 없는 배다."


- 드럼 라인 -


B는 사실 학창 시절 드럼을 처음 배울 때 '박치' 였다고 한다. 박치란 박자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을 말한다. 그랬던 B가 박치를 극복한 이유가 있다.


타고난 성격 탓도 있지만 B는 늘 혼자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가항력이란 말이 있다. B에게 주어진 현실이 그랬다.


 B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 가장이 됐다. 초등학교 1학년, 친구들은 교문 앞으로 마중 나온 엄마 품에 안겼다. 비가 내리면 엄마들은 우산을 가져와 친구들을 기다렸다. B는 우산도 없이 온몸이 '홀딱'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B는 왜소하고 어딘가 의기소침해 보였다. 그런 B에게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 벌어졌다. 친구들이 시비를 걸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B는 아빠가 없다'며 놀리기까지 했다.


B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동네 골목에서 싸움이 붙었다. 덩치 큰 친구가 B를 때렸다. 체구가 작은 B는 맞고 또 맞았다. 코피가 났다. B는 계속 맞았고 친구는 계속 때렸다.


맷집이란 게 있다. '매를 맞아도 견디는 힘'이다. B는 끝까지 버텼다. 결국 이 싸움의 승자는 B가 됐다. 때리다 때리다 지친 덩치는 숨을 '헉헉' 거렸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가 골인 지점을 통과하면 온몸에 힘이 풀리듯 나가떨어졌다.


만신창이가 된 B는 코피를 훔쳤다. 덩치를 한쪽 발로 밟으며 말했다. '' 또 때려봐. 이 새끼야. "

B는 자신도 어디에서 그런 '깡' 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덩치와 그의 무리들은 B의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B는 학교 '음악 밴드'에서 연주를 하고 싶었다. 드러머가 치는 스틱이 공중에서 서너 바퀴 돌았다. 내리치는 드럼의 울림소리가 멋있었다. '둥둥~ 두둥둥' B는 음악 학원에 다녔다.


일정한 템포로 박자를 맞추라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박치란 말을 들었다. B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어린 시절 '깡'이 생각났다. 연습을 하고 또 했다. 메트로놈을 켜 놓고 될 때까지 드럼을 쳤다.


어렵고 힘든 일지언정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감' 이란 게 생기기 마련이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은 고비가 올 때 돌아서지 않는다면 결국 해낸다. B는 박치를 극복했다. 고교 밴드의 리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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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머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있다. 뉴올리언스 태생인 조나단 모펫이다. 그는 30년 넘게 세계적인 팝 스타들이 서로 모셔갈 만큼 실력이 좋았다. 마이클 잭슨 'Smooth Criminal'의 드럼 파트는 칼박의 정석이다. 유튜브에 그의 연주가 있다.

https://youtu.be/bRM2Gn9nU7Q

4분의 4박자는 한 마디 안에 4분 음표가 4개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대중음악은 거의 이박자를 기본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이 들을 때 가장 편안한 영역인 듯하다. 박자를 가지고 노는 그의 연주를 한참 넊 놓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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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주인공 드러머가 연주를 할 수 없도록 만든 함정이 있었다. 그는 다시 돌아와 드럼을 연주했다. 신들린 듯한 드럼 소리가 극장 안을 숨이 막히도록 만들었다. 침을 '꼴깍' 넘겼다. 땀으로 범벅이 된 드럼과 드러머가 한 몸이 됐다. 예술의 광기가 느껴진다. 전율이 올라온다. 영상에 취해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드러머를 소재로 만든 영화의 제목은 2014년 작 '위 플래시'다. whiplash의 뜻은 '채찍질'이다.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인 데이미언 셔젤은 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 29살이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 재즈 드러머가 되고 싶었던 그는 혹독한 스승에게 지도를 받았다.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드럼을 그만뒀다. 이때의 상황이 위플래시의 모티브가 됐다. 감독 스스로가 경험을 했고 연주자의 입장에서 잘 표현된 영상이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쉼 없이 일정한 박자와 템포로 연주하는 드러머의 열정이 눈에 선하다. 영화의 후기 댓글이 재밌다.


"드럼은 쟤가 쳤는데 내가 왜 지칠까?"


B와 함께한 영화 한 편의 울림이 마음에 남는다. 인생 영화 다섯 편을 꼽으라 하면 그 안에 들어 올 정도다. 오랜만에 만난 그가 '영화' 한 편 보러 가자 했을 때 '남자끼리 뭔 영화냐 ' 싶었다.


새삼 B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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