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형수는 선박의 중심을 잡기 위해 양쪽으로 채우는 바닷물이다. 이 물이 없다면 배는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마음에도 균형이 있다. 내게도 중심을 잡도록 도와준 선배가 있다.
구본천. 그의 이름이다. 선배를 만난 건 현장직에 있을 때였다. 우리는 매일 아침 각자 맡은 구역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그는 구로동 공구상가 담당이었다. 나는 국제 우편물을 배달했고, 그는 국내 우편물을 배송했다. 외국에서 오는 우편물은 개수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무거웠다.
전임자에게 구역을 인수인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양이 적은 대신 배달 지역이 넓어 공구상가 쪽 일을 빠르게 끝내야 했다.
A, B, C, D의 블록 안에 수많은 업체들이 있었다.주소마저 헷갈렸다. 가장 가까운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서 난처했다. 설상가상으로 비는 또 왜 그때 내리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본 천이 형이 멀리서 나를 보고 달려왔다.
'' 힘들지. 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고생 좀 했어. 시간이 많이 지체됐네. 다른 구역으로 가야 하지 않아? ''
선배는 자기 일처럼 내 일을 대신해줬다. 공구상가는 국내 우편물이 많은 지역이었다. 선배가 맡은 일도 힘들었다. 그는 내 것 까지 하느라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는 내가 적응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줬다. 정말 고마웠다. 일도 일이지만 '수고했어'라는 본 천이 형의 말 한마디에도 진심이 느껴져 항상 고마웠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일을 해야 한다. 직장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뭘까. 심리 상담사에 의하면 99%는 인간관계에 의한 갈등이라고 한다.
직장 동료 중 J가 있었다. 우체국의 아침은 출국하기 전에 각 담당별 지역분류가 먼저 이루어진다. 자기 담당 지역이 아닌 우편물은 동료에게 신속하게 전해 줘야 한다. J는 항상 늦게 전달을 해줬다. 그만큼 나는 출국 시간이 늦어졌다. 배달을 다녀온 후 다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있었다.
J가 그런 행동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를 유심히 지켜봤다. 자기 지역으로 분류된 우편물을 먼저 확인해야 했다. 담당 지역이 아닌 우편물을 우선 골라내야 하지만 그는 '딴청'을 부렸다. 바쁜 시간에 그는 여유롭게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화가 났다. 어쩜 저럴 수 있지.. 하지만 그 상황에서 그가 한 잘못을 말해봤자 서로 기분만 상했을 것 같았다. J에게 따져야 할지를 고민했다. J의 버릇을 고쳐 줘야 할 것 같았다. '이에는 이다.' 나는 J와 똑같은 방법을 쓰기로 했다. 비겁했지만 그도 내 마음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가 화를 냈다. J의 언성이 높아졌다. 지켜보던 선배가 왔다. '' 둘 다 진정하고 밖으로 나가자.'' 그는 나와 J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는 J의 입장과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말 그릇이 있다. 말 그릇이 큰 사람은 말의 이면에 숨어 있는 다른 무언가를 본다. 선배는 어느 한쪽의 말만 담지 않았다. 충분히 들어줬고 함부로 조언을 하지 않았다. 선배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성정(性情)을 차분이 이야기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강조했다.
J는 느긋한 성격이었고 나는 해야 할 일은 즉시 해야 하는 마음이 강했다.
나는 J 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의 다름을 인정하자 편해졌다. 그랬다. 본 천이 형은 서로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줬다. 말에 숨어 있는 사람을 먼저 봤다. J 가 싫어 한쪽으로 치우친 마음에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현재 선배는 구로 우체국에서 나는 국제 우편 물류센터에서 근무를 한다. 그와 다른 곳에서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그는 집배 실장이 됐다. 각종 민원과 우편 소통을 조율하는 자리다. '자기희생'이 있어야 가능한 자리다.
선배에게 표현하지 못한 말이 있다. 그 시절 형이 옆에 있어서 울타리처럼 든든했어요.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본천이 형, 고마워요.
[지은이 소개] 작가명: 임세규
2019. 서울시 지하철 시 공모전 당선. 2019. 오마이 뉴스 '하포리 가는 길' 선정. 2020. 푸른 문학 수필 부문 최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