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곳에 있던 그녀가 없었다.

붕어빵 장수 이야기

by 임세규

붕어빵 장수.


작은 딸아이가 공원 앞에서 떨어진 씨앗을

주웠다. 제 언니가 학교에서 가져온 작은 화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심었다. 둘째 녀석은 물을 주고 베란다에 햇빛이 들면 옮겨줬다. 애지중지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하자 화분에 새싹이 돋아났다.


이름 모를 씨앗의 발아에 거실 한 자리에 있는 화분이 익숙해졌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제가 자라던 흙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새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었고 거실 한편에 있던 화분도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조그만 생명이 잠시 머물렀던 자리가 마음에 걸렸다.

비가 내린 후의 11월은 춥다. '핫팩'을 미리 데워 주머니에 넣는다. 카톡을 한다. 7시 44분 열차. 도착했음. 지하철 입구에서 아내를 반긴다. ''손 이리 줘봐.'' 아내의 한 손을 잡고 점퍼 왼쪽 주머니에 넣는다.

''내 심장이 여기 있네.'' 그녀가 까르르 웃는다.
''아! 따뜻하다. 퇴근길에 만난 아내와 반찬가게에 들러 사거리 신호등 앞에 선다. '' 붕어빵이네.'' ''한 봉지 사갈까? '' 찬 바람에 붕어빵의 열기가 식을까 봐 옷 품에 넣는다.

오래전 금천 우체국 앞 사거리가 떠올랐다. 신호등 건너 홈플러스와 이마트가 생긴 거리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막 퇴근을 하려다 큰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 오실 때, 붕어빵 사 가지고 오세요.'' ''그래, 알았다. 얼른 갈게.'' 사거리 앞 횡단보도 건너편에 붕어빵 장수가 있었다. ''한 봉지 주세요.''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 하나 더 드릴게요. '' 파란 마스크 위로 친절한 웃음이 가득한 그녀가 붕어빵 하나를 덤으로 넣었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자전거를 타고 출, 퇴근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붕어빵이 식을 까 봐 품에 넣고 페달을 힘껏 밟았다. 집으로 가는 길, 하늘에 흰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집 앞 엘리베이터까지 7분 걸렸다. 아내와 큰 아이가 나보다 붕어빵을 더 반겼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반을 가르자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저녁 8시 퇴근시간, 우체국 앞 건널목 맞은편에 있는 그녀가 보였다. 늘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목소리와 말씨 등을 보아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처음 그녀가 주는 붕어빵을 기다릴 때 눈가의 촉촉함이 아내를 보는 것 같았다. 가끔씩 한번 붕어빵을 샀다. 그때마다 그녀는 한 개를 더 넣어 주었다. 아내는 붕어빵을 사갈 때마다 ''하나 더 넣어줬네.'' 하면서 ''이거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 남는 게 있나.. 추운 날씨에 붕어빵을 파는 그녀를 안쓰러워했다.

파란 신호등을 건너면 항상 있어야 할 붕어빵 장수가 보이지 않았다. '휑' 하니 찬 바람이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처음에는 '오늘 쉬는 날이군.' 가볍게 생각을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그녀는 붕어빵을 팔지 않았다. 가지런히 접어 놓은 포장마차가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날은 그녀가 붕어빵을 팔던 곳에서 '호호'

불어가며 종이컵 속의 뜨거운 국물을 마시는

사람들을 봤다. 어묵장수가 붕어빵 자리를 대신했다. 저녁을 먹고 TV를 켰다. 화면에 금천 우체국 사거리가 보였다. 늘 다니는 곳이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순간 깜짝 놀랐다. 그녀가 붕어빵을 팔고 있었다. 다큐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그녀였다. 그녀가 살아온 삶을 볼 수 있었다.

마스크를 벗은 그녀는 갸름한 미인형 얼굴이었다. 나이는 아내와 같은 나이였고 사는 곳은 우체국 뒤쪽 독산동이었다. 남편과 사별한 후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화면 속 그녀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반찬을 만들었다. 유치원에 다녀온 딸과 아들은 엄마 품에 안겼다.

밥상에 앉은 그녀가 딸에게 물었다. ''만약에 엄마가 집에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음.. 동생 잘 챙기고 씩씩하게 유치원에 다녀야 해요.'' 딸이 말했다. 그녀의 딸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담담했다. 식사를 마친 아이는 밥그릇을 싱크대로 옮겼다. 남동생을 부르더니 작은 손으로 구석구석 세수를 시켰다. 아마 그녀가 조금씩 가르쳤겠구나 싶었다.

그녀는 위암 말기 환자였다. 복수가 차오른

그녀는 고통스러워했고 남겨질 아이들을 걱정했다. 마지막 장면의 영정 사진 밑에 자막이 떴다. 0년 0월 0일. 사망.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큰 딸과 같은 나이었던 그녀의 딸도 18살이 되었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그 아이는 그렇게 씩씩하게 잘 살고 있을까.

어머니 집에 가다가 금천 우체국 앞 사거리를 지나간다. 짧은 삶 속에 붕어빵을 팔았던 횡단보도 건너 그녀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또 다른 붕어빵 장수가 분주히 빵을 만들고 있다.


눈이 오려나 보다. 하늘빛이 회색이다. 그녀가 건네준 붕어빵 한 봉지를 품에 넣고 식을세라 힘껏 자전거 페달을 밟은 그날처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말그릇이 큰 사람은 다른 무언가를 본다.